최용현(수필가)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실존했던 전설적인 총잡이 와이어트 어프와 닥 할리데이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황야의 결투’(1946년), ‘OK목장의 결투’(1957년), ‘툼스톤’(1993년), ‘와이어트 어프’(1994년)는 모두 이들 두 사람의 활약과 우정을 다룬 영화들이다.
1881년 10월 26일, 어프 가(家)와 클랜튼 가 사이에 OK목장에서 결투가 벌어졌고, 여기서 승리한 와이어트 어프와 그의 친구 닥 할리데이는 서부극의 전설이 된다. 이들의 행적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무법천지인 서부개척시대에 총잡이로서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대단한 속사(速射) 명사수였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지 스컬린의 단편소설 ‘더 킬러(The Killer)’를 영화화한 고전 서부극 ‘OK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는 ‘노인과 바다’(1958년), ‘황야의 7인’(1960년), ‘대탈주’(1963년) 등 주로 활력이 넘치는 남성 영화를 연출한 존 스터지스 감독의 ‘결투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이어서 ‘고스트 타운의 결투’(1958년)와 ‘건힐의 결투’(1959년)가 만들어져 3부작이 완성되었다.
‘OK목장의 결투’는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와 떠돌이 도박사 닥 할리데이의 닷지에서의 활약상을 다룬 전반부와, 와이어트의 동생 버질이 보안관으로 있는 툼스톤 지역에서의 어프 가와 클랜튼 가의 갈등과 대결을 다룬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황야를 배경으로 악당 셋이 말을 타고 오면서 영화 ‘하이 눈’(1952년)의 주제곡을 불렀던 프랭키 레인의 경쾌하면서도 장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이 곡은 서부영화 음악 중 손꼽히는 명곡이다. 귀를 기울여 봐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오케이 코랄~ 오케이 코랄~’ 뿐이지만.
술과 도박에 빠져있는 전직 치과의사 닥 할리데이(커크 더글러스 扮)는 자신을 죽이러 온 세 명의 악당 중 두목을 놀라운 단검 솜씨로 처치한다. 그 때문에 살인죄로 체포되어 감금되지만, 다른 지역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버터 랭커스터 扮)의 도움으로 도망치게 된다.
여러 번의 결투로 인한 살인전력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은 닥은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와이어트의 관할구역인 닷지로 오게 된다. 여기서도 쫓겨날 처지였으나 더 이상 총과 칼을 휴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겨우 체류허락을 받는다. 그는 애인 케이트 앞에서 악당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하지만 와이어트와의 약속 때문에 잘 참아낸다.
은행 강도들이 닷지로 왔을 때 닥은 조수가 부족한 와이어트를 도와 함께 강도를 처치한다. 또 악명 높은 샹하이 일당이 떼거리로 몰려와 난동을 부릴 때도 닥은 재치 있게 와이어트를 도와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다. 한편, 도박장에 나타난 미모의 여성 로라와 서로 사랑하게 된 와이어트는 로라를 위해 장래가 불안하고 위험한 보안관직을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와이어트는 툼스톤에서 보안관 일을 하고 있는 동생 버질로부터 도와달라는 전보를 받는다. 로라는 ‘날 사랑한다면 그런 위험한 곳에 가지마라.’며 결사적으로 막아서지만, 동생을 도와주려는 와이어트의 결심을 꺾지는 못한다. 와이어트가 떠나는 것을 본 닥도 그의 뒤를 따른다.
무대가 닷지에서 툼스톤으로 바뀌면서 영화는 후반부로 들어선다. 클랜튼 가 형제들은 보안관 한 명을 매수해놓고, 멕시코에서 소 1,000마리를 훔쳐서 툼스톤을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곳의 보안관 버질은 이들의 툼스톤 진입을 막기 위해 형제들에게 긴급지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클랜튼은 와이어트에게 거금을 주겠다고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자, 어느 날 밤 형을 돕기 위해 혼자 순찰을 도는 와이어트의 막내 동생을 참혹하게 난사(亂射)한다. 드디어 어프 가와 클랜튼 가 사이에 갈등의 뇌관이 터진 것이다. 클랜튼은 와이어트에게 OK목장에서 형제들끼리 결투를 하자고 제의한다.
클랜튼 가는 6형제에 매수한 보안관까지 7명이고, 이에 대항하는 어프 가는 4형제였으나 막내가 죽어 3형제뿐이다. 수적으로 불리한 어프 가의 처지를 알게 된 닥 할리데이는 부쩍 심해진 기침에도 불구하고 도우러 나선다. 친구를 위해 죽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드디어 서부개척사에서 가장 유명한 결투가 OK목장에서 벌어진다.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고 와이어트의 동생이 총에 맞아 부상을 입는다. 그러나 어프 가는 와이어트와 닥의 눈부신 활약으로 클랜튼 가 형제들을 모두 처치하고 승리한다. 와이어트는 로라를 찾아 떠나고, 닥은 다시 도박판에 들어서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실제 OK목장에서의 결투는 순식간에 끝났다고 전해지지만, 영화에서는 두 집안 형제들의 긴박감 있는 결투장면에 10여분을 할애하여 피날레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여러 서부영화에서 악당 역할로 명성을 날린 리 반 클리프가 초반에 등장하자마자 닥의 단검을 맞고 죽는 단역배우로 출연한 모습이나, 2010년에 세상을 떠난 명우 데니스 호퍼의 20대 초반 꽃미남 시절의 풋풋한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총을 가지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하는 와이어트 어프의 강렬한 카리스마도 돋보였고, 폐병에다 알콜중독자인 닥 할리데이의 솜씨도 볼만했다. 닥 역을 맡은 커크 더글러스가, ‘원초적 본능’(1992년)에서 샤론 스톤과 공연한 남자주인공 마이클 더글러스의 아버지임은 그 독특하게 생긴 턱만 봐도 알 수 있으리라.
이 영화를 서부영화의 걸작으로 꼽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그것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잘 짜인 스토리 라인에다, 보안관과 총잡이, 악당들의 구도가 서부영화의 성공 공식에 잘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보안관 와이어트가 총잡이에 대한 환상을 가진 클랜튼 가의 막내(데니스 호퍼 扮)에게 들려주는, 내일을 알 수 없는 총잡이의 운명적 체념이 담긴 메시지도 일조를 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을 강하다고 생각하는 총잡이 중에 35세를 넘기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 나보다 빠른 총잡이는 얼마든지 있고, 쏘면 쏠수록 적은 많아지는 법이지. 총잡이는 늘 두려움 속에서 살고, 돈도 여자도 친구도 없이 죽어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