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요즘 젊은이들은 ‘에덴의 동쪽’을 송승헌과 연정훈이 나오는 드라마로, ‘제임스 딘’을 속옷 브랜드 이름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1955년에 나온 영화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고, 제임스 딘은 그 영화의 남자주인공 이름이다. 단 세 편의 영화만 남기고 24세에 요절해 전설이 된 배우.
신인배우 제임스 딘은 동료배우 폴 뉴먼의 소개로 만난 여배우 피어 안젤리에게 운명적으로 빠져들었고, 두 사람의 사랑은 불꽃처럼 타오른다. 그러나 그 사랑은 피어 안젤리의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 4개월 만에 깨지고 만다. 그리고 어머니의 강요로 그녀가 가수 빅 데이먼과 결혼을 하자, 제임스 딘은 우울증과 자괴감에 시달리며 자동차 레이스에 심취하게 된다.
제임스 딘은 데뷔작 ‘에덴의 동쪽’의 화려한 성공에 이어, ‘이유 없는 반항’(1955년)에서도 주연을 맡았고, 1956년에 개봉한 ‘자이언트’에도 출연하여 배우로서 탄탄대로에 들어선다. 그러나 그의 우울증은 입원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했고, 그가 목숨을 걸고 펼치는 광란의 레이스는 주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곤 했다.
1955년 9월 30일, 피어 안젤리의 남편 빅 데이먼이 촬영장으로 찾아와 ‘이제 내 아내를 잊어 달라.’고 하자, 제임스 딘은 ‘그녀를 행복하게 해 달라.’는 짤막한 한 마디를 남기고 애마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몰고 촬영장을 떠난다. 20분 뒤, LA 1번 해안도로를 시속 120km로 주행하던 제임스 딘은 픽업 트럭을 정면으로 들이받아 즉사, 24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가 죽은 후, 피어 안젤리는 히스테리 증세와 습관적인 자살 시도로 결국 이혼을 하게 되고, 3년 후 재혼을 하지만 마약에 찌들어 살다가 39세에 자살하고 만다(1971년). ‘내 사랑은 이미 포르쉐에서 죽었다.’는 말을 남기고.
영화 ‘에덴의 동쪽’은 노벨상 수상작가 존 스타인벡이 자신의 가족사를 다룬 동명(同名)의 소설에서 후반부의 한 시기만을 잘라내어 영화화한 것으로, 제1차 세계대전 무렵의 미국 캘리포니아 살리나스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아담의 두 아들 아론과 칼의 이야기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신이 동생 아벨을 편애한다고 생각한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고 에덴의 동쪽 놋 땅으로 도피하여 살았다는 구절에서 제목을 따왔다. 여기서 동쪽은 인간이 사는 곳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간은 모두 카인의 후예라고 할 수 있으리라.
성실하고 반듯한 형 아론(리차드 타바로스 扮)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범생(?)이지만, 동생 칼(제임스 딘 扮)은 매사에 불만이 가득한 말썽꾸러기이고 성격도 삐딱하다. 아담의 아내 케이트는 오래 전에 집을 나가 두 아들은 어머니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담은 신앙심이 두텁고 공부 잘하는 큰 아들 아론을 사랑하고, 비뚤어진 성격의 칼에게는 집 나간 아내의 부도덕한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고 미워한다. 그럴수록 칼의 반항심은 더욱 커간다. 사랑 받지 못하는 것만큼 쓰라린 아픔이 또 있으랴.
어느 날, 칼은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조 밴 플리트 扮)가 인근 도시에서 바(bar)를 경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으로 찾아가 어머니를 만난다. 그리고 화류계(花柳界)에서 성공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리움과 혐오감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낀다.
칼은 형의 애인 애브라(줄리 해리스 扮)와 놀이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 모습을 본 아론은 칼과 애브라 사이를 의심한다. 결국 형제가 치고받고 싸우게 되고, 애브라는 고지식한 아론보다 인간적인 따스함과 격정을 지닌 칼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린다.
한편, 아버지는 농사지은 양배추를 뉴욕으로 보내 판매하기로 하고, 상하지 않도록 얼음덩어리를 함께 넣어 열차에 실어 보낸다. 그런데, 도중에 눈사태를 만나 갑자기 열차가 멈춰 서고, 양배추가 모두 얼음과 함께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바람에 큰 손해를 본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칼은 조만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것을 예상하고 어머니에게 5천 달러를 얻어 그 돈으로 콩밭을 매점한다. 미국의 참전으로 콩 값이 폭등하자 큰돈을 번 칼은 그 돈을 아버지의 생일선물로 내놓는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기는커녕 전쟁을 이용해 번 돈이라고 심한 꾸중만 듣는다. 애브라와의 약혼을 생일선물로 발표한 형은 칭찬을 받고….
형 아론에게서도 심한 모욕을 받은 칼은 아론을 데리고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술집을 운영하는 생모의 모습을 본 아론은 뛰쳐나와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다가 바로 자원입대를 위해 열차를 탄다. 애지중지하던 큰아들의 갑작스런 탈선과 입대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만다.
결국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칼은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식물인간처럼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는 전담 간호사를 붙여둔다. 그런데 그 간호사는 좀 까칠하다. 칼이 작별인사를 하러 오자, 애브라는 아버지의 귀에 대고 간청한다. 칼이 육친의 정에 굶주려 있다며 무언가를 시켜보라고. 드디어 마음이 움직인 아버지, 손짓으로 칼을 불러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저 간호사를 쫓아내고 네가 날 간호해주렴.”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절묘한 앙상블로 이루어진 감미로운 테마 음악의 선율이 화면 곳곳에서 울려 퍼지며 애잔한 감동을 준다. 엘리아 카잔은 인간이 짊어진 원죄, 그 원초적 굴레는 사랑을 통해서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뛰어난 연출 솜씨로 잘 표현하여 이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칼 역을 맡은 제임스 딘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을 받지는 못했고, 어머니 역을 맡은 조 밴 플리트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제임스 딘은 고독한 반항아의 이미지로 단숨에 할리우드 최고의 청춘스타로 등극하게 되고, 1년 후 요절하여 세계인의 가슴 속에 청춘의 우상으로 남는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 live as if you’ll die today.’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