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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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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최용현(수필가)

 

   유럽을 순방하고 있던 앤 공주(오드리 헵번 )는 로마를 방문하던 중, 왕실의 엄격한 규율과 꽉 찬 스케줄에 염증을 느껴 밤에 몰래 숙소를 빠져 나온다. 그러다가, 나오기 전에 맞은 수면제 주사 때문에 길거리 화단에서 잠이 든다.

   동료들과 포커를 하다가 밤늦게 귀가하던 신문기자 조(그레고리 펙 )는 길거리 화단에서 잠든 여인을 발견하고 실랑이 끝에 자신의 원룸으로 데려온다. 여인이 잠든 사이, 출근한 조는 앤 공주가 몸이 아파서 오늘의 공식일정을 취소한다.’는 신문 기사와 사진을 보고 그 여인이 앤 공주임을 알아챈다. 조는 특종을 잡을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친구인 사진기자 어빙에게 촬영준비를 하고 나오라고 전화를 한다.

   조의 집에서 나온 앤은 스페인 광장 옆 미용실에 들러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자유를 만끽한다. 몰래 앤을 미행하던 조는 우연을 가장하고 다시 앤을 만난다. 두 사람은 함께 길거리 카페에서 술도 마시고 신나게 스쿠터를 타고 다니면서 여러 가지 해프닝을 벌인다.

   이런 모습들은 늦게 합류한 어빙이 몰래 카메라에 담는다. 앤은 자상하고 멋진 조에게 마음이 끌리고, 특종을 위해 여러 이벤트를 시작했던 조 역시 순수하고 발랄한 앤에게 사랑을 느낀다. 서로 신분을 속이고 있지만.

   저녁에, 유람선으로 간 세 사람이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실종된 앤 공주를 찾아 나선 경호원들과 마주치게 되자 격투를 벌인다. 쫓고 쫓기는 중에 조가 물에 빠지자 앤도 물속으로 뛰어든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물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오들오들 떨면서 키스를 나눈다. 조의 집에서 옷을 말려 입은 앤은 조와 가슴 시린 이별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다음날, 앤 공주는 로마를 떠나기 전의 마지막 기자회견장에 모여든 기자들 틈에서 조와 어빙을 발견하고 놀란다. ‘유럽에서 순방한 도시들 중에서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앤 공주는 아무 망설임 없이 로마라고 답한다.

   앞줄에 선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앤 공주. 조와 어빙은 어제 찍은 특종사진들을 기사로 쓰지 않고 선물이라며 앤 공주에게 돌려준다. 앤 공주와 조는 로마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에 묻은 채 아쉬운 작별을 한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오드리 헵번은 특유의 청순하면서도 발랄한 매력으로 단숨에 전 세계 남성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신데렐라가 되었다. 빠져들 것 같은 맑고 커다란 눈, 한 뼘도 안 되어 보이는 가늘고 긴 목, 한 팔로 두르고도 남을 것 같은 가녀린 허리.

   이 영화의 성공요인을 분석해보면 재미있고 경쾌한 스토리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고,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남녀 주인공 못지않게 로마의 유명한 유적지들도 당당히 한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유적지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스페인 광장은 서울의 대학로처럼 젊음을 상징하는 로마의 아이콘으로, 전에 이곳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긴 머리를 싹둑 자른 오드리 헵번이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광장의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은 헵번스타일의 커트 머리와 함께 전 세계인의 뇌리에 또렷이 남아있는 유명한 장면이다.

   둘이서 신나게 스쿠터를 타고 달리던 스페인 광장 옆 거리에는 지금도 루이뷔통, 샤넬 등의 명품 숍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두 주인공 뒤로는 루이 12세가 고딕 풍으로 지은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이 보인다.

   스페인 광장 남쪽에 있는 트레비 분수는 교황이 주최한 경연대회의 우승자가 설계한 것으로, 개선문을 본떠 만든 조형물 앞에 반인반수의 해신(海神) 트리톤 한 쌍이 이끄는 전차를 탄 넵튠 상()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서있는 형상이다. 트레비(trevi)는 삼거리라는 뜻이고, 여기서 길이 세 갈래로 나눠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등을 돌리고 앉아서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하나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로 돌아오고, 두 개를 던져 넣으면 사랑이 결실을 맺으며, 세 개를 던져 넣으면 이혼을 한대나 어쩐대나. 그런 전설 덕분에 분수 안에는 매일 3,000유로(350만원) 가량의 동전이 쌓이는데, 이 돈은 로마의 빈민들을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진실의 입이 나오는 부분은 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장면이다. 해신 트리톤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입 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거짓말을 한 사람이 그 속에 손을 넣으면 트리톤이 손을 물어버린다는 전설이 있다.

   영화에서 조가 손을 집어넣었다가 물린 것처럼 소리를 질러 앤 공주를 놀라게 하는 장면 때문에, 이곳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구멍 입구가 다 닳아서 어디가 입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라는데, 그 입은 실은 신전의 하수구 구멍이란다. 그 외에, 콜로세움 안쪽의 모습과 갖가지 소원을 붙여놓은 벽도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에 나오는 오류 하나. 스페인 광장의 계단에서 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을 때 우연처럼 조가 나타나는 장면에서 뒤의 시계탑을 보면 240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좀 있으면 455분이 되었다가, 좀 더 있으면 350분이 된다. 요샛말로 옥에 티다.

   어쨌거나, 거장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1953년에 흑백필름으로 만든 로맨스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은 그가 1959년에 만든 스펙터클 대작 벤허와 함께 영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금자탑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영화의 한 복판에 유서 깊은 로마가 있는 한, 이 영화는 쉬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두 주인공의 젊은 모습 또한 영화팬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들이 함께 누볐던 1950년대 로마의 풍광과 함께 영원히 기록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15권짜리 로마인 이야기때문에 몇 달째 로마에 푹 빠져서 살고 있다. 오늘도 다짐을 한다. 정년퇴직을 하고 유럽여행을 가게 되면 제일 먼저 로마에 가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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