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벽돌 나르기’라는 노역이 있다. 혹독한 추위로 유명한 시베리아형무소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복역하는 지식인 죄수들, 이른바 양심수들에게 주로 부과했던 형벌이다. 이것은 이쪽에 쌓여진 벽돌을 저쪽으로 옮겨쌓고, 다음날은 옮겨쌓은 벽돌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 옮겨 쌓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는 작업이다.
이 일이 그렇게 가혹하고 무서운 것은 힘에 벅찬 중노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을 매일 반복함으로써 정신이 황폐되어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벽돌 나르기’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까지도 말살시키는 정신적 고문행위이다.
아무리 신경이 쇠가죽같이 무딘 사람이라도 이 작업을 몇 달간만 계속 하면 어떤 중노동이라도 좋으니 다른 노역을 시켜달라고 간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특히 자존심이 강한 양심수들은 이런 노역을 오래 시키면 거의 반미치광이가 되어버린단다. 요즘은 어떨는지 모르겠다. 러시아에도 한바탕 개혁 바람이 불었으니.
이 벽돌 나르기 형벌의 원형(原形)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의 바위’가 아닌가 싶다. 온갖 악행을 일삼던 시시포스가 마침내 신의 노여움을 사서 저승에 불려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도 잔꾀를 부려 ‘단 하루만 더 이승에서 살게 해주면 내일 저승으로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다시 이승세계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약속을 어기고 이승에서 그대로 눌러 산다. 그러다가 수(壽)를 다하고 죽게 되었는데, 저승에서는 그에 걸맞은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바위를 아래에서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일인데, 다 올리면 다시 바위를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해서 또다시 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인간에게 내려진 신의 형벌이라면 시베리아 형무소의 벽돌 나르기야말로 그 재판(再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형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리라.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존심을 지켜내는가 하는 문제를, 영화 ‘혹성탈출’(1968년)의 원작을 쓴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1958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데이비드 린), 남우주연상(알렉 기네스), 각색상(피에르 불)을 비롯하여, 경쾌한 리듬의 휘파람소리로 유명한 ‘콰이행진곡(Kwai March)’으로 받은 주제가상 등 7개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인도차이나반도 어느 전선에서 영국군의 한 부대가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이송되는 장면에서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포로로 잡혀온 영국군 대령 니콜슨(알렉 기네스 扮)은 전형적인 군인 기질의 완고한 지휘관이고, 일본군 포로수용소장 사이토 대좌(세슈 하야카와 扮)는 인간미가 있는 엄격한 지휘관이다. 영국군 포로들은 콰이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군용철교 건설작업에 동원되어 일본군의 철저한 감시 하에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장교에게까지 노동을 시키는 것은 따를 수 없다며 국제협정대로 처우해달라는 니콜슨 대령의 요구가 묵살되자, 영국군 포로들이 모두 태업(怠業)으로 맞서는 바람에 공사는 도무지 진척이 되지 않는다. 결국 포로들의 비협조로 인해 다리는 날림공사가 되어 자꾸만 무너지고 만다.
준공 예정일이 가까워오자 포로수용소장은 초조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니콜슨 대령은 ‘내가 건설작업을 지휘하고 새로 건설될 다리에 영국군의 이름을 새겨놓게 해준다면 기일 내에 틀림없이 튼튼한 다리를 건설하겠다.’고 포로수용소장에게 제의를 한다. 허락을 받은 대령은 동료 포로들을 설득한다.
“여러분, 우리가 건설해야 할 이 다리가 비록 일시적으로는 적을 이롭게 할지 모르나 길이 후세에 우리들의 이름을 빛나게 해줄 것입니다. 영국군의 명예를 걸고 멋지고 튼튼한 다리를 건설합시다.”
다시 공사가 시작되고 니콜슨 대령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마침내 튼튼한 다리가 완성된다. 영국군 포로들은 성취감에 도취되어 서로 얼싸안고 환성을 지른다. 그들은 교각에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자신들이 포로라는 사실도 잊은 채.
그렇다. 그것은 자존심이리라.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전장에서의 피아(彼我)나 승패를 초월한 것이리라. 이 다리는 일본군과 영국군이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대결을 벌이며 합작해서 만든 상징적인 구축물이다. 결과적으로는 일본군의 실리와 영국군의 자존심을 맞바꾼 셈이지만.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한 미국군 장교(실제로는 병장, 윌리엄 홀덴 扮)가 이 다리를 폭파하기 위해 영국군 특공대를 이끌고 이곳에 잠입해 온다. 다리의 개통식날 일본군의 군수물자를 실은 첫 열차가 이 다리를 통과할 때 폭파하려는 것이다.
일본군 열차와 영국군 특공대가 각각 반대방향에서 다리를 향해 다가오고, 영국군 포로들은 자신들이 만든 적군의 다리를 자발적으로 경비한다. 전쟁이 빚어낸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침내 특공대에 의해 교각 밑에 폭탄이 설치되고 열차는 ‘칙칙폭폭-’ 하며 달려온다. 첫 열차가 다가오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니콜슨 대령은 물이 빠진 강 아래에서 수상한 도화선(導火線)을 발견하고 따라가 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열차가 다리의 중간쯤에 왔을 때, 하늘을 찌르는 굉음과 함께 다리에는 커다란 불기둥이 솟구쳐 오른다.
열차와 다리가 한꺼번에 산산조각이 나서 창공으로 흩어진다. 관객들은 무너진 다리와 계곡으로 곤두박질치는 열차를 바라보며 전쟁의 참상을 다시 한 번 되새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기엔 적군도 아군도 없었다. 자욱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한 영국군 장교가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모두들 미쳤군, 미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