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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바위 보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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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바위 보

 

최용현(수필가)

 

   연전(年前)에 박상규 씨가 사회를 보는 일요큰잔치라는 TV프로가 있었다. 일요일 오전 11시쯤에 시작되는 프로인데 간혹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별 생각 없이 보아오곤 했다.

   이 프로는 여남은 명의 연예인들이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서 시끌벅적하게 여러 가지 게임을 하고 마지막에 전적을 합산하여 우승팀을 정하고, 관례상 우승팀에서 최고수훈자를 MVP로 뽑는다. MVP에게는 해외여행 등의 특전이 주어진다. 요즘에는 안 나오는 걸 보면 아마 그 프로가 없어진 모양이다.

   한번은 여느 일요일처럼 늦은 아침을 먹고 TV를 켜니 한창 일요큰잔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날 출연자 중에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여자유도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결혼과 함께 은퇴한 김미정 선수와 한국 여자탁구의 간판스타로 군림하다 세계를 제패하고 은퇴한 현정화 선수였다.

   두 선수는 각각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날따라 치열한 백중세가 전개되어 212패로 모든 게임이 끝났다. 결국 청군과 백군의 MVP 후보인 김미정, 현정화 선수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MVP를 차지하고 그녀가 속한 팀이 우승팀이 되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두 선수가 대표로 나와 등을 대고 서서 한쪽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무엇을 내느냐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한참 뜸을 들이던 사회자의 힘찬 가위 바위 보구령과 함께 두 사람의 번쩍 든 손이 움직였다. 김미정은 보, 현정화는 가위를 내었다. 결국 가위를 낸 현정화가 승리하여 그녀가 속한 팀이 우승했고 그녀는 MVP가 되었다.

   나는 두 선수가 무엇을 낼 것인지 예측을 해보았고 희한하게도 그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묘한 희열을 느꼈다. 그래서 아직도 그 장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가위 바위 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손의 모양새로 이기고 짐을 아주 간편하고 명쾌하게 구별해 주는 승부방식이다. 만일, 두 가지만 있다면 승부는 너무 싱겁게 끝나고 말 것이고, 가위바위보 세 가지 외에 또 다른 모양의 요소가 더 있다면 이기고 짐의 관계가 너무 복잡해질 것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지략과 무용담을 모은 것은 열국지’, 항우와 유방의 결전을 그린 것은 초한지’, 위오촉 삼국의 흥망사를 다룬 것은 삼국지이다. 이들은 모두 중국 고대사를 다룬 뛰어난 병서요 경영지침서요 처세술의 교본으로 명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삼국지이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볼 수 있으나, 초한지는 줄거리가 너무 단순하고, 손자병법은 줄거리가 너무 복잡하지만, 삼국지는 단순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아서 일반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게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상() 다리도 세 개일 때가 가장 균형이 맞고 안정감이 있다. 두 개는 균형 잡기가 어렵고, 다리가 많으면 안정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세 개가 넘으면 지면에 닿지 않는 다리가 생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삼권분립은 아마 여기서 나온 것이리라.

   자, 그럼 다시 가위 바위 보로 돌아가 보자. 어떤 사람이 가위 바위 보를 했을 때 이길 확률은 대개 33.3%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무엇을 잘 내는지, 아니면 무엇을 잘 내지 않는지 알 수만 있다면 이길 확률은 50% 이상으로 높아진다.

   가위 바위 보에 대한 탐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탐구의 요체는 가위 바위 보를 할 때 내가 어떤 것을 내는가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어떤 것을 내는가에 대한 탐구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낼 것인지를 알면 이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는가.

   사람마다 습관적으로 잘 내는 것이 있고 잘 내지 않는 것이 있다. 대여섯 살짜리 어린 아이들은 대개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내고 그 중에서도 보를 가장 잘 낸다. 그것은 가위 바위 보에서 가장 힘주어 말하는 부분이 마지막 음절인 이기 때문에 그 강한 발음에 현혹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성별, 나이, 결혼유무 등 각자가 처한 여건과 상황에 따라 분명히 잘 내는 것이 있고 잘 내지 않는 것이 있다. 그에 대한 대강의 원칙을 밝히면, 가위는 여성의 것이고, 바위는 남성의 것, 보는 중립적인 것이다. 남자의 경우, 바위를 내는 빈도가 높고, 보는 중간, 가위의 빈도는 낮다. 특히 청년은 습관적으로 바위가 나온다. 남자 중에서도 깐깐한 성격의 타입은 가위를 내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여자의 경우, 바위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므로 여자가 내는 것은 가위 아니면 보이다. 가위를 내느냐 보를 내느냐 하는 것은 결혼여부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미혼여성은 가위를 내는 빈도가 높고 보를 내는 빈도는 낮다. 그러나 기혼여성은 보를 내는 빈도가 높고 가위를 내는 빈도는 낮다.

   이러한 현상을 어떤 심리학자가 이렇게 풀이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여자는 손 중에서 손등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별로 괘념치 않으나 손바닥 부분은 잠재적으로 자기의 알몸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가능한 한 손바닥 부분을 상대방에게 적게 보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혼여성이 가위를 잘 내는 것은 가위가 보에 비해 상대방에게 손바닥 면적을 덜 보이게 하기 때문이고, 기혼여성이 보를 잘 내는 것은 이제 보일 것은 다 보였으므로(?) 더 숨길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긍이 가는 분석이 아닌가.

   이상의 것을 요약해 보면 남자는 습관적으로 바위를 내며 가위는 잘 내지 않는다. 여자는 바위를 잘 내지 않으며, 미혼여성은 가위를 잘 내고 기혼여성은 보를 잘 낸다. 어린아이는 보를 잘 내고 그 다음으로 잘 내는 것이 바위이다. 이것만 염두에 두고 있어도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길 확률은 상당히 높아진다.

   서두의 일요큰잔치에서 미혼인 현정화가 가위를 내고, 기혼인 김미정이 보를 낸 것과 상기의 분석이 맞아떨어진 것은 기막힌 우연일 수도 있다. 우연도 필연의 산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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