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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과 도끼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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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과 도끼

 

최용현(수필가)

 

   옛날 북유럽 해안에 창궐하여 위세를 떨쳤던 해적 바이킹(viking)의 애환을 소재로 한 바이킹이라는 영화가 오래 전에 상영된 적이 있었다.

   요즘 잘 나가는 영화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인 커크 더글라스와, 뭇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왕년의 미남 배우 토니 커티스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에는 잔혹한 장면이 여러 군데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아마 이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러 있을 것이다.

   오랜 출정(?)을 나갔다가 돌아온 바이킹 두목(커크 더글라스 )이 그 동안 아내의 행실을 의심하여 이들의 관습대로 군중들 앞에서 자기 아내를 벽에다 묶어놓고 약 20m 쯤 떨어진 곳에서 아내를 향해 도끼를 던지는 장면이다.

   세 번을 던져서 한 번이라도 도끼가 아내의 얼굴이나 몸에 박히면 그 동안 부정(不貞)한 짓을 했다는 것이다. 도끼를 던질 때마다 이들은 괴성을 지르고 환호를 한다. 마치 도끼가 부정의 현장을 찍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장면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에서는 도끼가 모두 아내의 얼굴을 가까스로 비껴가서 벽에 꽂히기 때문에 결국 무죄로 결론이 난다.

   자기 아내의 정조를 의심하는 사람은 누구나 제 아내를 벽에다 세워놓고 이런 도끼재판을 할 수 있었다고 하니 당시의 바이킹족 여인들에게는 도끼가 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으리라.

   이런 도끼재판이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런 관습이 있었던 것만은 여러 문헌에서 확인이 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두목의 아내가 결국 무사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거꾸로 추론해 보면 이 도끼재판의 본말(本末)에 대해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다.

   우선 도끼를 던지는 사람이 무예로써 밥을 먹고사는 해적임을 염두에 둔다면 이들의 도끼 실력이 수준급일 거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도끼로 제 아내를 참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 아내가 다치지 않도록 도끼를 던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 아내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전적으로 던지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생각해보건대, 도끼재판은 도끼의 무시무시함을 빌어 장기출정으로 인해 생길지도 모르는 여인들의 부정에 미리 경각심을 주기 위해, 다시 말해 제 아내들을 단속하기 위해 일부러 겁주기 위한 용도로 고안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

   중세 십자군의 원정 때 기사(騎士)들이 자기 아내의 샅에 철띠를 두르게 하고 자물쇠를 채워놓는 정조대(貞操帶)를 고안해 낸 사실과 비교해 보면 이들이 하필 도끼를 택하게 된 데에는 이들의 직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조대 얘기가 나오니 어디서 본 소담(笑談) 하나가 생각이 난다.

   절세미인을 아내로 둔 어느 기사가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는데 자기 아내에게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많은지라 맘이 놓이질 않았다. 그래서 정조대를 아내에게 채우고 가장 신임하는 하인에게 그 열쇠를 맡겨 놓고 전장으로 떠났다. 그런데 떠난 지 불과 몇 시간도 채 안 되어 그 하인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리고는, ‘주인님, 열쇠가 맞지 않습니다.’ 하더란다. 믿을 놈이 어디 있다고.

   각설하고, 인간은 누구나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나름대로의 해결방법을 찾아내게 마련이다. 자신의 지혜로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신()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도 신의 이름만 빌릴 뿐이지 해결은 결국 인간 자신이 한다.

   미국의 국부(國父)로 추앙 받고 있는 조지 워싱턴은 어린 시절엔 형편없는 부랑아요 망나니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늘 걱정을 했는데, 고민을 하던 끝에 우선 아들에게 하느님의 존재를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이듬해 봄, 그의 아버지는 화단에다 채송화 씨를 ‘GEORGE WASHINGTON’이라는 글자 형태로 뿌렸다. 며칠 뒤 화단에 자신의 이름이 써진 싹이 돋아나자 눈이 휘둥그레진 아들을 보며,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널 사랑하고 또 너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에 화단에다 네 이름을 새겨 놓으신 거야.”

   그 때부터 조지 워싱턴이 새 사람으로 되어가더라는 것이다. 인간의 뒤에는 신이 있고, 또 신의 뒤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조선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에게도 이런 얘기가 야사에 전해져 온다. 고려 말,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나갔다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심했을 때 군사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고심을 한다. 회군은 곧 고려조정에 대한 반역이므로 하늘(신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리라)의 뜻이 아니고서는 군사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휘하 전 군사들을 집결시켜놓고 회군을 하려는 자신의 결심을 밝히고 동조해 줄 것을 설득하는데, 군사들이 망설이고 있자 한 가지 모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멀리 보이는 나뭇가지에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는 것을 가리키면서, ‘내가 이 활로 저 새를 쏘아 맞히면 나의 뜻은 곧 하늘의 뜻이다.’고 역설하는데 군사들이 !’ 하는 함성으로 동의를 해 주었다.

   상식적으로는 맞힐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에 있는 새. 그러나 그는 활을 쏘아 단 일격에 그 새를 떨어뜨린다. ‘!’ 하는 함성이 다시 천지를 진동하고, 그리하여 그는 군사들을 회군시켜 고려 조정을 뒤엎고 마침내 조선조를 창업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과연 하늘의 뜻이었는지는 범인(凡人)으로서는 알 수가 없으나, 그가 뛰어난 명궁(名弓)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이야기가 실화였는지 아니면 후세에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설사 이것이 지어낸 이야기라 하더라도 인간의 뒤에는 신이 있고, 또 신의 뒤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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