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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演技)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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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演技)

 

최용현(수필가)

 

   흔히 인생을 연기(演技)에다 비유하곤 한다. 삶 자체를 영화나 연극에서의 연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기도 하다. 저마다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배역(配役)을 충실히 연기해 내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러 가지 배역을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 직장에서의 직위나 직책도 그렇거니와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 또는 부모와 자식, 혹은 친구나 연인, 동호회나 동창 모임에서의 맡은 역할 등이 바로 그러한 배역이다.

   이러한 배역들을 조화시켜 잘 연기해내느냐 못 해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다. 주어진 배역을 모두 다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가치관과 성격에 따라서 비중을 두는 쪽이 저마다 달라지게 마련이다. 직장에서의 성공에 전력투구(全力投球)하는 사람, 가정의 행복에 충실하려는 사람, 친구간의 의리나 우정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사람.

   직장에서는 형편없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도 가정, 혹은 친구에게는 얼마든지 좋은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고, 또 그 역()도 성립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바람직한 이상형을 창출해 낼 수도 없겠거니와, 설사 어떤 모델을 창출해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이상형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느 경우든 극단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연기(演技)’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구경꾼 앞에서 기예(技藝)를 행동으로 보이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이를 구경꾼의 존재행동으로 보이는 것의 두 가지 개념요소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자.

   첫째, 연기는 구경꾼, 즉 관객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관객이 없는 연기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서의 관객이란 살아가면서 접하며 함께 호흡하는 모든 주위사람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둘째, 연기는 남에게 행동으로 보이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관객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하는 할리우드 액션은 인위적이라거나 작위적(作爲的)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므로 심하면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연기는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한다.

   군대사회를 상정해 보면 이런 예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특히 군기(軍紀)를 갓 익힌 신병의 제스처를 떠올려 보면 과잉연기(over action)의 어감이 선명하게 와 닿는다. 어떻게 보면 군대의 신병훈련이라는 것이 곧 군인을 만드는 연기훈련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 정신으로 보면 이런 과잉연기는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드라마나 연극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 있어서도 실제의 연기력과는 상관없이 아주 극적으로, 또 아주 기술적으로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은 화려한 각광을 받는다.

   강도가 침입했을 때를 가정해 보자. 기지(機智)를 발휘해서 힘(육체적인 힘) 들이지 않고 강도를 잡은 사람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난투극을 벌였거나 부상을 당하면서 고군분투하여 강도를 잡은 사람은 크게 주목을 받게 된다. 매스컴에서 큰 비중으로 보도를 하거나 용감한 시민상 같은 상을 받게 되는 경우도 물론 후자 중에서 나온다.

   전자의 경우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선행의 무게나 감투정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 선행을 연기하는 과정에 있어서 극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수가 높으면 능력을 인정받지만 두 수가 높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다.

   극본이 없는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경기에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던가, 세계 타이틀을 건 권투에서 네 번인가 다운 당했다가 일어나서 결국 통쾌한 KO로 상대방을 뉜 홍수환 선수의 45기의 신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홍수환 선수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연기를 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연출이 얼마나 우리 국민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던가.

   야구를 예로 들어보자. 가끔 수비 선수가 묘기를 연출해 내는 경우가 있다. 내야수가 몸을 날리며 볼을 잡아서 역동작으로 아슬아슬하게 1루에 송구하는 모습이나, 외야수가 전력 질주하여 슬라이딩하면서 볼을 잡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이런 묘기들을 모아서 진기명기(珍技名技)라 하여 TV에서 방영하는 것을 보면 야구의 진미가 압축되어 있어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이런 장면을 보러 야구장에 가는 것이고 또 이러한 선수에게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미기상(美技賞)이나 감투상(敢鬪賞)을 받는 선수도 물론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관찰해 보면 이렇게 아슬아슬하고 절묘한 연기를 하여 관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선수들 중에는 수비가 미숙해서 그렇게 된 경우가 더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내야수의 경우는 순발력이 부족해서 허겁지겁 볼을 잡다보니 결과적으로 그런 절묘하고 아슬아슬한 순간이 연출된 것이다. 외야수의 경우, 전력 질주하여 슬라이딩하면서 볼을 간신히 잡아내는 것은 당초 그 볼의 낙하지점을 잘못 판단하여 스타트가 늦어서 그렇게 된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물론 수비가 아주 미숙한 선수라면 아예 그 볼을 잡아내지도 못하겠지만.

   순발력이 뛰어난 내야수라면 타격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타구방향과 바운드의 강약을 파악하여 쉽게 볼을 잡아 처리할 것이고, 노련한 외야수라면 타구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스타트하여 미리 볼의 낙하지점에 가 있다가 쉽게 볼을 잡아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수는 볼을 너무 쉽게 잡았다는 이유로 관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극적인 장면을 좋아하는 관중들에게 멋진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선수들이 의식적으로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관중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연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실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더 각광 받는 것이 세상사의 정리(定理)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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