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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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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최용현(수필가)

 

   그럴듯하게 유니폼을 차려입고 프로야구 구단의 모자까지 쓴 꼬마선수들이 동네 앞 공터를 메우고, 주택가 골목길 유리창이 가끔씩 박살이 나는 백구의 계절, 악동의 계절이다. 아무렴 어떠랴, 튼튼하게만 자란다면.

   뭇 스포츠 중에서 야구는 우리 국민들에게 유난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야구만이 가진 특성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공격과 수비의 분리, 합리적인 득점의 원리, 선수 개인의 기량이 부각되는 기록경기, 다양한 세기(細技)의 표출, 9회말 투아웃 이후에도 얼마든지 득점이 가능한 점 등을 들 수 있고, 연고지 관계와 같은 경기 외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는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모두 한 데 어우러져 고급 스포츠로서 다중(多衆)의 취향에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관중들을 경기에 흡인시키는 역할을 하는 홈런의 진가를 빼놓을 수는 없으리라. 타자가 친 공이 외야의 관중석 위로 떨어지면 아웃이 되는 게 아니고, 선행주자의 수에 따라 득점을 하도록 한 것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만루홈런은 선행주자가 반드시 셋 있어야만 가능한 다소 운명적인 포석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야구경기를 하는 나라보다 야구경기를 하지 않는 나라가 더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구경기의 이러한 여러 가지 파격적인 요소들 때문에 정식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도 있는 것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는 야구규칙 증에서 특히 도루(盜壘, steal)를 스포츠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야구는 영국의 국기(國技)인 크리켓(cricket)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창기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서 크리켓 경기가 보급되면서 차차 야구경기의 틀이 갖춰지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내야의 다이아몬드 모형과 9회전 경기방식이 정립되었고, 정식으로 베이스볼(baseball)이라는 이름도 붙여지게 되었다. 이렇게 야구는 미국에서 시작되어 주로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들에게 파급되었다.

   우리나라에 야구가 소개된 것은 1906, 한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기독교 청년회에 전파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 후 각급학교에 전파되었고 특히 일제강점기나 해방 후의 중학교(오늘날의 고등학교)간의 야구경기는 수많은 명승부전을 남겨 전국에 야구 붐을 일으켰다. 그 때문에 많은 야구 명문학교가 탄생했고 야구인구의 저변도 크게 확대되었다. 프로야구 열풍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하여 당초 시기상조라고 하던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 동안 무수한 스타들이 명멸(明滅)해갔고, 또 구단주가 여러 번 바뀌는 팀이 생기기도 하는 등 허다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동안 대부분의 구단이 한 번 이상 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전력도 거의 평준화되었다.

   특히 1992년에는 페넌트 레이스에서 3위를 차지했던 롯데가 예상을 뒤엎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이것은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포스트 시즌 최대의 이변으로 기록되었다. 매년 기량이 뛰어난 신인들과 FA선수들이 각 구단에 입단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섣불리 최종 우승팀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프로야구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푸짐한 화젯거리를 제공해 주고, 고향을 떠나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향토애를 불러일으켜 주는 꿈의 제전(祭典)이다. 4각 다이아몬드 위에서 펼쳐지는 한 게임 한 게임에서의 승부는 구단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소속팀 선수들의 영욕(榮辱)일 뿐 아니라 연고지 팬들의 일희일비(一喜一悲)가 된다.

   혹자는 프로야구가 우리나라의 가장 큰 골칫거리의 하나인 지역감정을 더욱 부채질한다고 지적한다. , 몇몇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데 억대의 돈이 들고, 또 선수들의 연봉이 동년배 샐러리맨들을 주눅들일 정도라는 점, 그리고 야구시즌만 되면 아이들이 지나치게 들떠있는 점 등을 들어 프로야구의 과열된 열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크게 심려할 것은 못 되리라. 우리 국민들이 생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야구를 즐기게 되었다는 사실은 곧 국민의 생활수준 내지는 의식수준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분야든 한 분야의 정상(頂上)은 당연히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하며 스포츠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가 제각기 전문분야별로 분화, 정립되어 있으면 어떠한 국가적 위기가 닥쳐와도 혼란이 오지 않는다. 사회분화, 그것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관건이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이 대통령후보로서 선거전의 막바지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최고의 자리에 서본 적이 있느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아무 스스럼없이,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존 웨인 옆에 서보았다.”

   정상의 영화배우와 대통령후보가 나란히 필적된 수 있는 나라, 선진대국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사회의 모든 역학구조가 권력의 정점으로 집중되어 있는 후진국의 경우, 권력의 구심(求心)에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회혼란이 뒤따르게 됨은 자명한 이치이다. 우리는 벌써 그러한 경험을 몇 차례 겪어 보지 않았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몇몇 인기 선수들이 대중들의 우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제 서서히 사회분화가 시작되고 있는 과정상의 일면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야구경기도 인생의 축소판에 다름이 아니다. 타자는 한 경기에 네 번 정도 타석에 들어서서 한 번만 안타를 치면 25푼의 타자가 되고, 열 번 타석에 들어서서 세 번만 안타를 치면 누구나 동경하는 3할 타자가 된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열 번 중에서 일곱 번 기회를 놓치더라도 세 번만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 강타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날이 열기를 더해 가는 프로야구 경기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것, 그리고 그 기회를 잘 살리면 이기게 되고, 못 살리면 지게 된다는 소박한 진리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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