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장남과 차남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9:38

본문


장남과 차남

 

최용현(수필가)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정계, 재계 등 각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지도급 인사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한 형제분포 조사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차남이 가장 많았다. 차남 다음으로는 장남, 그 다음이 3, 4남의 순이었다. 어째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3, 4남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차남이 장남보다 더 성공하는가?

   이 문제를 규명하기에 앞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은 저마다 고유한 가계(家系)를 가지고 있고, 인간의 몸속에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피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내 몸 속에 고유한 성씨의 피가 얼마만큼 남아 있을까 하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의문일 것이다.

   우리 몸속의 피 중에서 자기 성씨 고유의 피가 50%는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계산을 해보면 이런 생각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00%의 순수피를 가진 어떤 성()씨 시조의 자녀는 부계 쪽 50%의 순수피를 물려받게 된다. 손자는 다시 50%50%25%, 3대로 내려가면 12.5%, 4대에는 6.25%, 5대에는 3.125%, 6대에는 1.5625%.

   100%의 순수피가 불과 6대만에 1.5625%만 남게 된다. 만약 어떤 성씨가 30대까지 내려갔다고 하면 이 30대손의 몸속에는 그 성씨의 순수피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를 거듭하는 동안 모계(母系) 쪽의 이질적인 피가 계속 50%씩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한 성씨의 고유한 피가 끊이지 않고 내려오는 것, 그리고 그 가계의 독특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는 것, 그런 것이 산술적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거겠지만.

   한 가계의 종적(縱的)인 혈통은 장자상속의 원칙에 따라 장남에게로 귀속된다. 왕위계승이거나 부업의 계승이거나 간에 이 원칙은 수천 년 동안 금과옥조처럼 신봉되어 왔다. 여기서 혈통의 횡적(橫的) 유대라 할 수 있는 형제 사이에 문제의 소지가 내포되어 있다. 장남보다 다른 동생이 더 적격자일 경우에 대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조의 왕위계승 제1원칙이 장자상속이었지만 실제로 왕위가 순탄하게 장남에게로 이어진 경우는 별로 없었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을 보자.

   태조 이성계는 차남이다. 정종(2)은 태조의 차남이고 태종(3)5남이다. 세종(4)은 태종의 3남이고, 문종(5)과 단종(6)은 세종의 장남과 장손이지만 세종의 차남인 세조(7)가 단종을 몰아내고 보위를 이었다. 예종(8)은 세조의 차남이고, 성종(9)은 예종의 장조카이다. 연산군(10)은 성종의 장자이지만, 중종(11)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이다.

   앞에 예시한 열 한 분의 왕들 중에서 장남은 불과 네 분(문종 단종 성종 연산군)뿐이다. 네 분 중에서도 병사한 문종과 성종 외에는 보위를 제대로 지켜낸 사람이 없었다. 장자상속이라는 원칙 때문에 왕위승계 때마다 얼마나 많은 무리수가 생겼던가. 형제 숙질간에 서로 죽이고 죽는 골육상잔이 얼마나 벌어졌던가.

   가계의 경우는 어떤가. 장남은 어릴 때부터 다른 동생들보다 대우를 달리 받는다. 집안의 대들보라는 이유로 모든 면에서 최우선적인 혜택을 받는다. 선택받은 몸이기 때문에 기죽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인 셈이다.

   이것이 장남의 진로에 맹점(盲點)이 되고 만다. 장남은 아무리 원대한 꿈을 가졌다고 해도 가계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러 형제들 중에서 장남만큼 가계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직업군인이나 외교관이 꿈이라 해도, 이민을 가거나 돈벌이가 보장된 해외취업을 하고자 해도, 또 멋있는 마도로스가 되고자 해도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이 장남이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하나의 원인은 될 수 있으나 근본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차남이 장남보다 더 성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차남에게는 형이라는 훌륭한 라이벌이 있기 때문이다. 차남은 어릴 때부터 형에게 기죽으면서 자신을 단련하게 된다. 이 점은 차남이 정신적으로 무장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된다. 특히 장남선호사상으로 인한 차별대우로 설움을 받고 자란 차남은 더욱 그러하다.

   자랄 때의 설움으로 치자면 딸의 경우엔 뼈에 사무칠 텐 데도,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어 출가한 딸이, 하늘처럼 받들어 키운 아들보다 더 효녀가 되는 경우를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장남에게는 가산의 대부분을 물려주고 최소한 지키기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장남의 진로에 한계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장남은 물려받은 가산을 지키는 수성(守成)의 인물로 키워지는데 비해, 차남은 맨손으로 세상에 내던져져서 스스로 가업을 일으켜야하는 창업(創業)의 인물로 키워지기 때문이다.

   만일 크게 실패한 사람을 뽑아 통계를 내보면 틀림없이 장남보다 차남이 더 많을 것이다. 흥망의 방향이 문제일 뿐, 차남에게는 그 가능성이 무한하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룹 총수나 사장 자리가 당연히 장남으로 이어지는 경우보다 차남, 3남에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누가 더 적임자냐 하는 관점에서 상속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태어난 순서가 중요한 것은 가계 안에서이다. 옛 속담의 형 만한 아우 없다.’란 말은 가계의 범위 내로 한정해서 적용해야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이니 다음 세대는 온통 장남뿐이고 기껏해야 차남으로 그칠 것이다. 이젠 딸도 당당히 가계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벌써, 딸도 호주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이제 장남 프리미엄시대, 아니 아들 프리미엄시대는 끝났다. 장남이든, 차남이든, 아들이든, 딸이든, 능력과 적성에 맞는 제 자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태인의 생활지침서인 탈무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두 아이의 머리를 비교하면 한 아이를 버리게 된다. 그러나 두 아이의 개성을 비교하면 두 아이를 다 살릴 수 있다.’

   혹시, 아직도 자녀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고, 잡은 고기를 큰아들에게 가득 물려주려고 하지는 않는가?*


'에세이 및 콩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로야구  (0) 2018.12.22
기자와 골키퍼  (0) 2018.12.22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  (0) 2018.12.22
호랑이 vs 사자  (0) 2018.12.22
승자와 패자  (0) 2018.12.2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