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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vs 사자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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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vs 사자

 

최용현(수필가)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황당하고 막연한 질문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문제이다.

   호랑이는 사자와 더불어 고양이과 최대의 동물이다. 용쟁호투(龍爭虎鬪)니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용과 호랑이의 격렬한 다툼을 표현하는 말인 바, 이때의 호랑이는 지상 맹수의 대표인 셈이다. 사자 또한 명실상부한 최고의 맹수로서 백수(百獸)의 제왕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호랑이와 사자 중에서 누가 최고의 맹수이며 누가 더 강자인가?

   중국 명()나라의 본초학자 이시진이라는 사람이 펴낸 약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호랑이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크기는 소만하고 생김새는 고양이 같고 진황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 이빨은 강철로 된 톱 같고, 발톱은 쇠갈고리 같다. 소를 공격하여 일격에 때려눕히고 입으로 물어갈 정도로 완력이 대단하다.

   백두산호랑이라 불리기도 하는 한국호랑이는 시베리아호랑이와 함께 호랑이 중에서 가장 큰 종으로 체고(體高) 95cm, 체장(體長) 3.5m에 이른다. 주로 밤에 활동하며 겨울철에는 행동범위가 더 넓다. 주로 멧돼지 사슴 파충류 등을 잡아먹고 살며, 때로는 인축(人畜)을 습격하기도 한다. 옛날이야기 속에서 호랑이는 산신령으로 통할만큼 영물(靈物)로 인식되어 왔으며, 조선시대 말기까지만 해도 우리의 금수강산에는 호랑이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사자는 어떤가. 사자(獅子)는 동물이름으로서는 특이하게도 개사슴변에 스승 사()’ 자와 아들 자()’ 자를 쓴다. ()는 공자(孔子)나 맹자(孟子)같은 성현들에게 붙이는 존칭인 바, 아마도 그 위풍과 용력이 백수의 제왕답게 뭇 짐승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붙은 칭호이리라.

   본초강목에서 묘사한 글을 보면, 사자의 생김새는 호랑이와 비슷하고 몸 전체가 연한 구리 빛과 황색을 띠고 있다. 이마는 무쇠처럼 단단하고 발톱은 쇠갈고리처럼 날카롭고 억새며, 쇠톱 같은 이빨은 코뿔소나 코끼리도 찢어 죽일 만큼 강인하다.

   한번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면 그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 같아서 주위의 온갖 동물들이 오금을 펴지 못한다. 수컷의 갈기털은 목과 등을 덮고 있어 위풍당당하며 주위를 압도한다. 체고 105cm, 체장 3m, 체중 250kg 정도로서 호랑이와 비슷하다.

   호랑이와 사자의 체격조건은 거의 같다. 호랑이는 사지가 약간 짧아 체고가 낮으나 체장이 길고 대신 몸놀림이 유연하다. 사자는 체장이 짧은 대신 체고가 높으며 수컷은 갈기털이 있어 가장 중요한 목 부분을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호랑이는 유라시아대륙의 깊은 산중에서 살며 야행성(夜行性)이다. 반면 사자는 아프리카, 서남아시아의 고원 등 열대 및 아열대지방에서 사는데 밤에는 자고 낮에 활동한다. 각기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지만 인도 중북부 지방에는 호랑이와 사자가 함께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인도에서 살고 있는 호랑이는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데 비해 사자는 거의 사라져서 극소수만이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결과를, 인도 중북부에서 호랑이와 사자가 만나 격전이 벌어졌는데, 여기서 호랑이는 승리하여 살아남았고 사자는 패배하여 서남아시아로, 다시 아프리카로 쫓겨 갔다고 풀이하는 견해가 있다. 호랑이와 사자의 주도권 싸움에서 호랑이가 이긴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에는 무리가 너무 많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웠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거니와 이들이 사는 구체적인 지역도 다르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산간의 삼림지역에서 살고 사자는 초원 지역에서 산다. 또 호랑이는 혼자 다니고 사자는 십여 마리씩 무리 지어 다닌다. 그러므로 설사 호랑이가 사자보다 강하다 할지라도 한 마리의 호랑이가 사자의 무리에게 덤벼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의 장교들은 휴가 때마다 호랑이와 사자사냥을 즐겼다. 한 사람이 적게는 수십 마리, 많게는 수백 마리까지 잡았다고 한다. ‘인도에서 사자를 사라지게 한 것은 호랑이가 아니다. 그것은 영국사관들의 사냥 때문이다.’고 당시의 한 영국사관이 최근에 실토한 바 있다. 초원에서 무리 지어 사는 사자는 깊은 산에서 외톨이로 사는 호랑이보다 사냥감으로는 더 안성맞춤이 아니었겠는가.

   본초강목에는 아주 흥미 있는 구절이 나온다. ‘사자는 호랑이나 표범을 잡아먹으며.’ 또 이런 구절도 있다. ‘사자가 죽으면 호랑이나 표범이라 할지라도 감히 그 고기를 먹지 못하며.’ 또 다른 중국 고전에도 사자가 나타나면 호랑이는 온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거나, 자빠져서 사지(四肢)를 허공으로 허우적거리며 벌벌 떨기도 한다.’는 구절이 있다.

   문헌상으로 보면 분명히 사자가 호랑이보다 한 수 위이며, 호랑이의 천적이 사자인 셈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호랑이의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만다. 생각하건대 홀로 다니는 호랑이가 사자 무리를 만났을 때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구절의 진위를 확실하게 규명해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간혹 동물원이나 서커스단에서 사자와 호랑이가 싸움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때와 조건,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한단다.

   맹수들이 만난다고 무조건 서로 으르렁대고 싸우는 것은 아니다. 먹이가 풍부한 경우 등 굳이 싸울 필요가 없을 때에는 서로 비껴가기도 하고 또 사이좋게 공존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아이들과 함께 용인 에버랜드에 갔을 때 울타리 안에 방목된 채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호랑이와 사자는 서로 싸우기는커녕 함께 어울려서 장난도 치고 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금수강산을 누비고 다니던 한국호랑이가 남한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렸듯이 지금은 호랑이와 사자 모두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호랑이와 사자 중에서 누가 더 강하며,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누가 더 오래 살아남아서 자신의 종족을 오래도록 번성시키느냐 하는 것이 더 절박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호랑이든 사자든 끝까지 살아남는 종()이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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