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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불가사의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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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불가사의

 

최용현(수필가)

 

   인간의 지혜로서는 풀 수 없는 이상야릇한 사물이나 현상을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하는데, 인류역사를 통틀어 가장 대표적인 불가사의 일곱 가지를 일컬어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7대 불가사의에 대한 정설이 없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선정된 고대 7대 불가사의도 있고, 중세 유물을 기준으로 한 중세 7대 불가사의도 있다.

   최근에 스위스의 한 민간단체에서 지구촌 설문조사를 통하여 선정한 신 7대 불가사의를 본적이 있는데, i)중국의 만리장성 ii)페루의 잉카유적지 마추픽추 iii)브라질의 그리스도상 iv)멕시코의 마야유적 v)로마의 콜로세움 vi)인도의 타지마할 vii)요르단의 고대도시 페트라를 꼽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빠져있다.

   우리나라에도 어느 대학에서 한국판 7대 불가사의를 정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중 여섯은 i)석굴암의 불상(佛像) ii)측우기 iii)팔만대장경 iv)봉덕사종 v)거북선 vi)첨성대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그 대학 캠퍼스의 명물이었다.

   각 고을마다 구전되어 오거나 문헌에 남아있는 자료들을 분석, 취합하여 전 국민이 공감하는 한국 7대 불가사의를 제정하면 어떨까?

   필자의 고향인 경남 밀양은 밀양아리랑, 아랑의 전설로 유명하고 임진왜란 때의 승장(僧將) 사명대사와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종조(宗祖)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태어난 고장이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불가사의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앞에서의 경우처럼 거대한 유적이나 유물이 아닌 기이한 현상을 꼽은 것이 특징이다.

   첫째, 사명대사 비석에 흐르는 땀이다. 사명대사가 태어난 곳에 세워진 표충비각(무안면 무안리) 안에 있는 비석은 국가에 큰 변란이 있을 때마다 땀이 흐른다. 한번 흘러내리기 시작하면 보통 몇 말씩 나오는데 그곳에 가면 비석에서 땀이 흐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 그 곳 앞마당에는 우산 모양으로 펼쳐진 수령 300년 된 향나무가 있어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둘째, 만어사의 쇳소리 나는 종석(鐘石)이다. 만어사(삼랑진읍 용전리) 앞 계곡에는 물고기들이 변한 것이라고 알려진 거대한 돌너덜 지대가 있는데, 이 돌들 중에는 두드리면 희한하게도 종소리처럼 경쾌한 쇳소리를 내는 돌이 많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종소리를 내는 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셋째, 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이다. 천연기념물 224호인 이 얼음골(산내면 남명리)은 삼복더위 때 돌 틈에 얼음이 얼고 바위틈에서 차가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신비스런 계곡이다. 최근에는 매스컴에서 많이 소개가 되어 해마다 휴가철이 되면 이곳을 찾는 인파가 줄을 잇고 있다.

   이상에서 소개한 세 가지가 밀양 3대 불가사의이다. 이 외에도 한겨울 눈 속을 뚫고 돋아난다는 영남루의 설중죽순(雪中竹筍)과 이 지역에 유별나게 많은 무봉사의 태극나방 등도 있으나, 여기서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살펴보다.

   첫 번째, 사명대사 비석의 땀은 나라에 흉사가 생길 조짐이 보이면 2, 3일 전부터 비석의 색깔이 거무스레하게 변하면서 땀을 쏟는데, 그 비석에서 흘러내리는 물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이다. 그 성분을 분석해 본 적도 없거니와 땀이 흐르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아무래도 고개가 갸우뚱해질 것 같다.

   두 번째, 만어사의 돌은 조선 세종 때 만어산 경석(磬石, 검고 단단한 돌)을 채굴하여 악기로 만들려 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곳의 돌을 두드리면 왜 이런 소리가 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과학자들이 해답을 찾아주어야 할 것 같다.

   전설에 의하면 만어사(萬魚寺)는 용왕의 아들을 따라나선 수만 마리의 물고기 떼가 돌로 변한 곳에 세운 절이다. 용왕의 아들은 이곳에서 높이 5m의 미륵바위로 변하여 미륵전 안에 안치되었는데, 잘 보면 바위에서 미륵불의 형상이 보인다고 한다. 이 미륵바위는 KBS ‘스펀지라는 프로에서 동전이 붙는 바위로 소개되어 유명해졌는데, 아들을 점지해주는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워낙 덩치가 커서 뒷부분은 전각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세 번째, 얼음골은 동의보감에서 허준의 스승 유의태 선생이 자신을 해부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곳으로 알려진 이래, 여름마다 신문이나 TV에 소개되고 있어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9천평 크기의 천연 에어컨인 이 얼음골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섭씨 30도를 웃도는 혹서(酷暑)에도 손을 담그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차갑다.

   이 얼음골의 신비에 대해서 학자들이 설명한 것을 보면, ‘이 계곡은 천황산의 북쪽 비탈에 위치하고 있어 일조량이 적기 때문에 여름철에도 지하수가 섭씨 23도 정도로 떨어져 있다. 또한 이곳의 지층 구조가 화성암과 안산암으로 중첩되어 있어 지하수가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암반 사이에서 흐르다가 찬 공기로 기화(氣化)되어 바위틈을 통해 분출되어 나오는 현상이다.’ 고 설명한 학자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설명한 학자도 있다.

   ‘여름에 기온이 올라가면 굴뚝의 연기가 땅으로 퍼지는 현상과 같은 이치로, 더운 바깥 공기가 돌 틈을 통해 땅 속으로 들어가서 암반 사이의 차가운 지하수와 함께 흐르면서 냉각이 되어 다시 돌 틈으로 분출되어 나오는 현상이다.’

   알듯말듯한 얘기이다. 필자가 갔을 때마다 이 얼음골에는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는데, 일조량이 적다는 말도 잘 납득이 되지 않을 뿐더러, 또 더운 공기가 땅속에 들어가서 다시 냉각되어 나온다는 설명도 왜 유독 이곳에만 그런 현상이 생기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얼음골에 가는 교통 안내를 덧붙인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서울산IC에서 빠져나와 24번 국도를 따라 밀양 쪽으로 가면 가지산터널을 지나자마자 얼음골 안내판이 나온다. 국도 연변의 산세도 수려하고 주변에 고사(古寺)나 폭포, ()가 많이 있어 문자 그대로 환상의 피서지이다.

   가을엔, 배낭을 둘러메고 영남 알프스에 오르거나 사자평에서 억새의 군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생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수놓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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