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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이야기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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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이야기

 

최용현(수필가)

 

   참새시리즈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그 대사(臺詞)가 자못 낭만적이었다.

   전깃줄에 참새 두 마리가 앉아 있었는데, 포수가 총을 쏘아서 한 마리는 맞아떨어지고 한 마리는 날아가 버렸다. 총에 맞은 참새가 떨어져 죽으면서 뭐라고 했을까?

   “내 몫까지 살아주.”

   “당신 재혼하지마.”

   그러나 참새이야기도 조금씩 진화를 거쳐 그 대사가 차츰 포악해졌다. 총에 맞은 참새가 떨어지면서 왈,

   “×, 나만 참새냐?”

   “×, 내가 자리 바꾸자고 했잖아!”

   그랬더니 날아가던 참새 왈,

   “저 새끼 아직 덜 죽었어!”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온 참새이야기는 그 양상이 좀 다르다. 참새 세 마리가 전깃줄에 앉아 있었다. 포수가 총을 쏘아 한 마리는 맞아서 떨어졌는데 두 마리는 날아가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왜 그랬을까?

   “둘 다 귀머거리겠지.”

   “든든한 빽(back)이 있겠지.”

   그러나 이건 정답이 아니다. 그 두 마리를 잡아서 해부를 해 보았더니 한 마리는 가슴속이 새까맣게 타 있었고, 한 마리는 머리속이 텅텅 비어 있더라고 한다.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에피소드는 그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이 이야기들은 참새시리즈의 고전에 속하는 것으로, 차츰 병들어 가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우화이다.

   위에 나오는 세 가지 이야기 중에서 물론 첫 번째 이야기가 듣기에 제일 거북하지 않다. ‘내 몫까지 살아 달라.’ ‘재혼하지 말라.’는 대사에서 삶의 원초적인 비애와 함께 애정 어린 투기(妬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참새시리즈의 원전(原典)은 휴머니티가 담긴 이런 모습이었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원전에서 험악하게 변이 되어 나타난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이다.

   두 번째의 경우는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 발악하는 모습으로, ‘나만 참새냐?’고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죄인인데 왜 나만 잡아가느냐?’ 하는 반항심의 표출이고, ‘자리 바꾸자.’고 하는 것은 너는 죽더라도 나는 살아야겠다는 이기심의 표출이다. 마지막 순간에도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지 않는 모습이다. 거부하는 새, 발악하는 새, 인간이 버린 휴머니즘.

   세 번째의 경우는 그 증세가 아주 심각하다. 옆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도 꼼짝 않는 참새. 그것은 세상사에 초연한 성자(聖者)의 모습인가.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양심도 이성도 팽개쳐버린 현대인의 이기적인 모습이요, 이웃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비정한 현주소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관심보다 더 잔인하고 무서운 것은 없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보도하고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도, 목청을 높여서 정부시책을 비판하는 야당도 국민의 무관심 앞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새, 머리가 비어있는 새는 바로 우리의 무관심한 모습이다.

   참새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온 텃새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참새를 의인작(依人雀), 빈작(賓雀) 등으로 의인화하여 친근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고, 참새와 관련된 속담도 유난히 많지 않은가 싶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참새가 죽어도 짹 한다.’

   ‘참새가 작아도 알만 잘 깐다.’

   흔히 듣는 우리나라 속담으로 모두 인간사(人間事)를 풍자하고 있다. 인간의 지척에서 살면서 인간의 애증(愛憎)을 함께 받으며 살아왔기에 그 많은 속담과 에피소드가 존재하는 것이리라. 참새는 원래 해충을 잡아먹으며 사는 익조(益鳥)였으나, 가을에 농작물을 해치는 바람에 인간의 미움을 받는 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요즘은 참새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변형이 되어 젊은이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다.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변이 된다 하더라도 모두 나름대로 사회상을 풍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예전에 나온 참새이야기들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메시지인데 비해, 최근에 나온 참새이야기들은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향하여 던져진 메시지가 많은 것이 특징인 것 같다. 지난 문민정부 시절에 회자(膾炙)되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본다.

   참새 열 마리가 전깃줄에 앉아 있었는데, 저 아래에서 포수가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포수를 발견한 참새가 소리를 질렀다.

   “마카 수구리!”

   그러자 모두 고개를 숙였는데 한 마리는 그 말을 못 알아듣고 그대로 앉아 있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좀 있다가 다시 그 포수가 살금살금 다가와 총을 겨누었다. 먼저 발견한 참새가 또 소리를 질렀다.

   “아까 맨추로!”

   그러자 모두 먼저처럼 고개를 수그렸는데 또 한 마리가 그 말을 못 알아듣고 그대로 있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알고 보니 고개를 숙여서 화를 면한 참새는 모두 경상도 출신이었고, 총에 맞은 참새는 둘 다 다른 지역 출신이었다고 한다. ‘마카 수구리는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 섞인 사투리로 모두다 고개를 숙여라.’는 뜻이다. ‘아까 맨추로아까처럼 하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여기서 참새 숫자가 두 마리에서 세 마리로, 다시 열 마리로 늘어난 것은 그만큼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복잡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는 경상도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고, 다른 지역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것이리라.

   요즘의 국민정부는 다시 지역 간 역전이 되어 문민정부의 반대쪽 지역에서 요직을 다 차지하고 있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는 참으로 변화무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에도 참새가 있는 모양이다. ‘햄릿에 이런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짐에도 특별한 섭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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