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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에 대하여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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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에 대하여

 

최용현(수필가)

 

               붉은 입술은(丹脣)은 밖으로 낭랑하고

               하얀 이(皓齒)는 안으로 선연하구나

               맑고 고운 눈망울(明眸)을 내리깔고

               양볼에 오목한 보조개가 어여쁘구나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이 지은 낙신부(洛神賦)의 일부분으로, 그가 낙수(洛水)가에 서있을 때 홀연히 나타난 신녀(神女)의 모습을 보고 읊은 시이다.

   이 시에 나오는 단순(丹脣)은 붉은 입술을, 명모(明眸)는 맑고 깨끗한 눈동자를, 호치(皓齒)는 하얀 이를 뜻하는데, 보조개 등과 함께 모두 미인을 형용하는 말이다. 이 시에 얽힌 사연을 간단히 소개해 본다.

   조조가 원소를 격파했을 때 조조의 맏아들 조비가 제일 먼저 원소의 집에 들어갔다. 거기서 조비는 아직 스무 살도 채 안 된 원소의 둘째 며느리 견 씨 부인을 보고 그 뛰어난 미색에 혹하여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 후 조비는 견 씨를 아내로 맞았는데 조조도 견 씨를 보고 한눈에 그 미색에 사로잡혔다. 결국 조조는 견 씨를 맏아들에게 양보(?)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번 전투는 오로지 조비 그 놈을 위해서 한 것 같군!”

   그런데 조조의 셋째 아들인 조식도 형수가 된 견 씨를 보고 한눈에 반하여 사모하게 되었다. 후일 견 씨가 모함을 받아 죽자, 조식은 그녀가 생전에 아끼던 베개를 얻어 임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낙수가에서 죽은 견 씨가 선녀처럼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때의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읊은 시가 바로 낙신부이다. 조조 삼부자(三父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견 씨의 미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해 볼 수 있으리라.

   예부터 미인(美人)을 표현하는 수식어는 무수히 많다. 화용월태(花容月態)는 꽃과 같은 얼굴에 달과 같은 자태를, 설부(雪膚)는 눈처럼 곱고 흰 피부를, 아미(蛾眉)는 나방처럼 가늘게 굽어진 아름다운 눈썹을 말하는데, 모두 미인을 형용하는 말이다. 우리말의 샛별 같은 눈동자, 앵두 같은 입술, 초승달 같은 눈썹 등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미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ⅰ) 세 가지가 희다 : 피부, (),

   ⅱ) 세 가지가 검다 : 눈동자, 눈썹, 속눈썹

   ⅲ) 세 가지가 붉다 : 입술, , 젖꼭지

   ⅳ) 세 가지가 길다 : , 다리, 손가락

   ⅴ) 세 가지가 넓다 : 이마, 미간(眉間), 가슴(어깨)

   ⅵ) 세 가지가 가늘다 : 허리, 손목, 발목

   ⅶ) 세 가지가 풍만하다 : 입술, 젖가슴, 엉덩이

 

   이 모두를 다 갖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두를 갖추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으니 그런 사람이야말로 축복 받은 사람이 아니랴!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색향(色鄕)이라 하여 미인이 많이 나는 곳이 있었다. 그 중에서 평안북도의 강계, 평안남도의 평양, 경상남도의 진주가 특히 유명하여 이 셋을 조선 3대 색향이라고 불렀다. 세 곳 중에서 두 곳이 북쪽에 있는 걸 보면 미인은 북쪽에 많고, 그래서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세 곳에 공통점이 있다면 큰 강을 가까이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강계는 압록강, 평양은 대동강, 진주는 남강을 끼고 있다. 맑은 물가에 미인이 많이 탄생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공해와 폐수로 오염된 요즘의 강이 아니었을진대.

   조선시대 어느 신관 사또가 부임길에 명기(名妓) 황진이의 무덤 옆을 지나다가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어 묘에다 술 한 잔을 차려놓고 혼자서 술을 마셨다. 취기가 오르자 낭랑하게 시도 한 수 읊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웠는가

           홍안은 어디 가고 백골만 묻혔는고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그러나, 신관 사또의 이러한 행적이 곧 세상에 알려져 그는 관기(官紀) 문란죄로 파직되고 말았다. 공복(公僕)으로서는 문제가 될지언정 풍류를 아는 장부(丈夫)로서는 손색이 없는 행동이리라. 그의 시구처럼 꽃 같은 얼굴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백골이 되고 말지만 가인(佳人)이 남긴 향기는 두고두고 장부의 가슴을 흔드는 것인가.

   미인은 아름답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축복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여자는 누구나 자신이 아름답게 보이기를 원한다.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여자는 스스로 여자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여자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화장을 한다. 화장하는 여자가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거울 앞에서 온갖 정성을 쏟는 그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프랑스 속담에 아름다운 포도알이 가끔 저질 포도주가 된다.’는 말이 있다. 또 유태인 속담에는 미인이란 보는 것이지 결코 결혼할 것은 아니다.’ 라는 말도 있다. 미인에 대한 경구(警句)인 셈이다. 무어라 해도 미인이 더 낫고, 이왕이면 교양과 지성을 갖춘 미인이 더 낫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미인을 얻고 싶다면, 미인에게 절대로 아름답다고 말하지 말라. 미인에게 백 마디의 찬사를 보내는 것보다는 뺨을 한 대 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미인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칭찬하는 사람에게는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늘 들어왔던 말이기 때문이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The brave deserves the fair.’

   용자(勇者)가 미인을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인의 임자(?)가 용감한 사람이라는 말은 한 번 음미해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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