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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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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최용현(수필가)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보내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해

      뱃고동 소리도 울리지 마세요

      하루하루 바다만 바라보다 눈물지으며 힘없이 돌아오네

      남자는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아아아아

      이별의 눈물 보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남자는 다 그래

 

      매달리고 싶은 이별의 시간도 짧은 입맞춤으로 끝나면

      잘 가요 쓰린 마음 아무도 몰라주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주 가는 사람이 약속은 왜 해 눈 멀도록 바다만 지키게 하고

      사랑했었단 말은 하지도 마세요

      못 견디게 네가 좋다고 달콤하던 말 그대로 믿었나

      남자는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아아아아

      쓸쓸한 표정 짓고 돌아서선 웃어 버리는 남자는 다 그래

 

   심수봉이 부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가사를 대충 훑어만 봐도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남자의 바람기에 대해 질타하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여자의 입장에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항구에 들어가 잠시 머물고 가는 배를 남자에, 하염없이 배를 기다리는 항구를 여자에 비유했다. 이곳저곳 항구에 정박하는 배를,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다니는 남자에 비유한 것이다. 오래 사귀게 되면 남자는 곧 실증을 느끼고 새로운 여성을 만나려고 하는 반면, 여자는 점점 더 그 남자에게 안착하고 머무르려고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 노래에서 남자는 이별의 눈물 보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쓸쓸한 표정 짓고 돌아서면 웃어 버리는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여자는 어떤가? ‘하루하루 바다만 바라보다 눈물지으며 힘없이 돌아오는’ ‘아주 가는 사람의 약속을 믿고 눈멀도록 바다만 지켜보는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이 노래가사에 의하면,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되면 만날 때마다 남자는 자신의 욕구를 한 단계씩 채워 가는데 비해, 여자는 남자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으니 남자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뱃머리를 돌린다는 것이다. 남자를, 일단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면 머무르는 것보다는 새로운 여자를 택하는 존재로 규정짓고 있는 것이다.

   이 노래는, 요즘 신세대의 노래가사와는 판이하게 다른, 구시대의 여성상을 기준으로 만든 가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요즘에 쓸쓸한 표정 짓고 돌아서면 웃어버리는남자를 그냥 놔두고 눈멀도록 바다만 지켜보는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 노래가 남자를 싸잡아 바람둥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가사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는 것은 참으로 의아하다. 아마도 남자의 속성을 직설적으로 바람둥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의 어감은 상당히 외설적이다. 이 항구 저 항구를 들락거리는 에서 묘한 연상을 하게 되는 것은 필자의 과민함 탓일까? 이런 경우, 직설적 표현을 피해 적절한 은유로 포장함으로써 시비에서 비껴가는 것이다. 심증은 있으되,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얘기를 꺼낸 김에, 남자와 여자를 세대별로 불과 과일에 비유한 Y담을 소개해 본다. 직설적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위험수위의 내용을 과일이라는 은유를 사용하여 절묘하게 포장한 경우이다.

   여자를 과일에 비유한 것을 먼저 소개해 본다.

 

      10대는 호도, 까기도 어렵고 까봤자 먹을 것도 별로 없다.

      20대는 밤, 까기만 하면 그냥 먹어도 맛있고, 삶아 먹어도 맛있고, 구워 먹어도 맛있다.

      30대는 수박, 칼만 대면 쩍 벌어지고 단물도 줄줄 흐르니 과일 중 단연 최고이다.

         40대는 석류,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벌어진다. 대체로 맛이 있지만, 먹을 것이 별로 없거나 맛이 별로인 경우도 있다.

         50대는 홍시, 제 때에 따먹지 않으면 썩어서 떨어진다. 간혹 맛있는 것도 있지만, 시어서 맛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60대는 토마토, 과일도 아닌 것이 과일인 척 하고 있다.

       70대는 곶감, 수분도 거의 없고 질기기만 하다. 과일가게에선 아예 팔지도 않는다.

 

   이에 관해서는 몇 가지의 버전이 있는데, 10대에서 40대까지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50대에서 70대까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서로 바꿔서 얘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버전을 검토한 후 필자의 주관대로 넣었음을 밝혀둔다.

   이번엔 남자를 불에 비유한 것을 소개해 본다.

 

       10대는 성냥불, 슬쩍 긁기만 해도 활활 타오르지만 금방 꺼진다.

       20대는 장작불, 근처에만 가도 뜨겁고 화력도 강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30대는 연탄불, 은근히 강하고 보기보다 화력도 짱짱하다.

       40대는 화롯불, 죽은 것 같지만 뒤져보면 아직 벌겋게 살아있다.

       50대는 담뱃불, 힘껏 빨아 당겨야만 불이 붙는다.

       60대는 반딧불, 불도 아닌 것이 불인 척 한다.

       70대는 연탄재, 꺼졌다고 갖다버리고 보면 간혹 불씨가 남아있다.

 

   필자의 인품에 대한 치명적인 위해(危害)가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류의 글을 소개하는 것은, 그 은유의 기발함에 대한 경탄과 함께 음미하면 할수록 참으로 절묘한 비유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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