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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2. 4. 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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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Bicycle Thieves)

 

최용현(수필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인 이탈리아는 수도 로마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이 폐허를 딛고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지만,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나 대다수의 국민들이 궁핍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영화계도 제작 여건이 아주 열악하여 전문배우 기용이나 세트장 촬영, 인공조명 사용 등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이탈리아 영화계는 무명 배우나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하여 길거리 로케이션으로 노동자 및 하층민들의 삶을 롱테이크로 촬영하여 여과 없이 흑백영상에 담아 영화를 만들었다. 이러한 경향과 사조는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으로 불리며 전후(戰後) 약 10년 동안 이탈리아 영화계를 풍미했다.

   루이지 바르톨리니의 동명소설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이 흑백영화로 만든 ‘자전거 도둑’(1948년)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는 작품이다. 미국 아카데미위원회에서는 이 영화를 탁월한 외국어영화라며 1949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특별상인 명예상을 수여하였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은 1956년부터 시상이 시작되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부양해야하는 안토니오(람베르토 마지오라니 扮)는 오랜 실업자생활 끝에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며 벽보를 붙이는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 일에는 자전거가 꼭 있어야하는데, 그의 자전거는 전당포에 저당 잡혀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끼던 침대보 6장을 팔아서 자전거를 되찾아주었다.

   첫 출근을 한 안토니오가 벽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포스터를 붙이고 있을 때, 웬 청년이 그의 자전거를 타고 달아났다. 안토니오가 바로 쫓아갔으나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경찰서에 찾아가 ‘피데스 1935년 모델 자전거’ 도난신고를 했더니 접수만 하고 자전거는 본인이 찾으라고 한다.

   다음 날, 안토니오는 친구들, 10대 초반의 아들 브루노(엔조 스타이올라 扮)와 함께 자전거를 판매하는 중고시장을 뒤져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브루노와 함께 돌아다니던 안토니오는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를 피해 한 건물의 처마 밑에 서있었다. 그때, 도난당한 자전거와 비슷한 자전거를 탄 청년과 한 노인이 저쪽 공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토니오가 뛰어가자, 청년은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도망쳐버렸다.

   그 청년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노인을 찾아 나섰다. 가까스로 교회로 들어가는 노인을 발견한 안토니오는 따라 들어가 노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전거를 탄 청년의 이름과 사는 곳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자, 노인은 모른다며 계속 잡아뗐다. 그러다가 점점 언성이 높아져서 목회자로부터 주의를 받게 되고, 그 와중에 노인을 놓쳐버리고 만다.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 요기를 한 부자(父子)는 용하다는 점집에 들어가는데, ‘오늘 찾을 수도 있고,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다시 걷다가 자전거를 훔쳐간 도둑과 비슷한 인상의 청년을 발견하고 그의 뒤를 따라 한 빈민가로 들어섰다. 안토니오가 다가가서 자전거를 내놓으라고 하자, 그 청년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을 했다. 둘이서 실랑이를 벌이자, 동네 주민들이 모여들고 청년은 갑자기 간질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눈치 빠른 브루노가 근처에 있던 경찰을 모셔왔다. 안토니오는 경찰과 함께 그 청년의 아파트에 들어가 보는데, 아파트에는 자전거는커녕 자전거와 관련된 그 어떤 물품도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동네사람들이 모두 그 청년 편을 드는 데다, 확실한 목격자도 없는 상황이라 안토니오는 결국 그 동네에서 쫓겨난다.

   경기장 옆을 지나가던 안토니오는 어느 집 앞에 세워져있는 자전거를 보게 된다. 차비를 줘서 브루노를 먼저 보낸 안토니오는 잽싸게 그 자전거를 훔쳐 타고 달아나지만, 얼마 못가서 잡히고 만다. 사람들이 경찰에 넘기자고 했으나, 전차를 놓친 브루노가 다가와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보자, 자전거 주인은 안쓰러웠는지 안토니오를 그냥 보내준다.

   군중들과 함께 걸어가는 안토니오가 소리 없이 울먹이고, 그 옆을 브루노가 걸어간다. 흐르는 눈물은 금방 마르지만 가슴속의 먹먹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걸어가는 군중들을 카메라가 비추면서 영화가 끝난다.

   ‘자전거 도둑’의 원제목은 ‘Ladri di biciclette’이다. ladri는 이탈리아어 ladro(도둑)의 복수형이므로 ‘자전거 도둑들’이 정확한 번역이다. 여기서 도둑들은 안토니오의 자전거를 훔친 청년과 남의 자전거를 훔치게 된 안토니오를 함께 지칭하는 말이지만, 두 사람 말고도 자전거 도둑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하층민들을 통칭하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주인공 안토니오는 이탈리아의 철도제조회사의 노동자였으며, 안토니오의 아들로 나오는 브루노는 거리를 떠도는 부랑아였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이들을 캐스팅하여 빈곤계층의 삶을 있는 그대로 실감나게 연기하도록 잘 이끌어냈다. 이들이 연기한 영화 속의 역할과 이들이 처한 현실이 비슷하므로 어찌 보면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도 든다.

   이 영화를 감독한 비토리오 데 시카는 이탈리아 출신의 배우 겸 감독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1957년)’에서는 조연으로 출연하는 등 연기자로서도 꽤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이미 불후의 고전 반열에 오른 ‘자전거 도둑’을 비롯하여 ‘종착역(Terminal Station, 1953년)’, ‘해바라기(Sunflower, 1970년)’ 등을 연출한 명감독으로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요즈음, 아파트단지내의 자전거 거치대에 방치되어 있거나, 주택가의 근린공원 주변이나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자전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요즘사람들은 자전거가 예전에는 요긴한 생계수단이었고, 아울러 시골 학생들의 중요한 통학수단이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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