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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2. 3. 1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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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蜜蜜)

 

최용현(수필가)

 

   ‘첨밀밀(甛蜜蜜)’은 꿀처럼 달콤하다는 뜻으로, 인도네시아 민요를 개사하여 1979년에 대만출신 가수 등려군이 불러 크게 히트한 노래의 제목이다. 태국출신으로 홍콩에서 활동하던 진가신 감독이 1996년에 동명의 영화를 연출하여 아시아권에서 흥행돌풍을 일으켰고, 이 영화는 대만의 금마장영화제 작품상 및 홍콩의 금상장영화제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86년 3월, 중국 본토 무석에서 열차를 타고 홍콩에 온 소군(여명 扮)은 광동어와 영어가 서툰 데다 숫기도 없는 청년이다. 고모가 운영하는 원룸에 기거하면서 배달 일을 하게 된 소군은 햄버거를 사먹으러 맥도날드에 갔다가 종업원 이요(장만옥 扮)를 알게 되고 그녀의 소개로 영어학원에 등록한다. 순박한 그에게 호감을 느낀 이요는 그가 태워주는 자전거의 뒷좌석에 앉아서 ‘첨밀밀’을 부른다.

 

      달콤해요, 당신의 미소는 얼마나 달콤한지

      봄바람에 피어난 한 송이 꽃 같아요.

      봄바람에 피어난 꽃 말이예요.

      어디, 어디선가 당신을 본 것 같아요.

      당신의 미소는 이렇게 낯이 익은데

      잠시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아아~ 꿈속이었어요.

      꿈에서 꿈속에서 당신을 보았어요.

      달콤해요, 더없이 달콤한 그 미소

      당신, 꿈에서 본 건 바로 당신이었어요.

 

   소군도 등려군의 열성팬인 것을 알게 되자, 자신감을 얻은 이요는 큰돈을 벌어 집을 살 욕심으로 그동안 번 돈을 모아 등려군의 노래 테이프를 파는 이동 노점상을 차린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큰 손해를 보고 정리한다.

   1987년 구정 전야, 소군의 원룸에서 저녁을 먹고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함께 설거지를 하던 두 사람은 갑자기 달아올라 사랑을 나눈다. 이요가 본토인 광주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군은 자신도 돈을 벌면 무석에 있는 약혼녀 소정을 데리고 와서 가정을 꾸릴 생각이라고 털어놓는다. 두 사람의 우정도 사랑도 아닌 미묘한 관계는 계속된다.

   소군은 소정에게 보낼 팔찌를 사러 가는데, 함께 간 이요에게도 똑같은 팔찌를 선물한다. 약혼녀 소정의 존재가 현실감으로 다가오자, 이요는 소군의 곁을 떠난다. 이요는 가진 돈을 전부 주식에 투자하지만 모두 까먹고 빚까지 지게 되자,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면서 만난 돈 많은 폭력조직의 보스와 사귀게 된다.

   1990년 겨울, 홍콩에서 소정과 결혼식을 올리는 소군은 축하하러 온 이요와 3년 만에 만나는데, 그녀의 조폭 애인과도 인사를 나눈다. 이요는 조폭 애인 덕분에 큰 부자가 되어있었다. 이요가 발레를 하는 소정에게 무용학원의 교사 자리를 마련해주자, 소정은 답례로 이요에게 손수 지은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그렇게 세 사람은 친하게 지낸다.

   어느 날, 소군과 이요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거리에서 등려군을 발견하는데, 소군이 뛰어가서 점퍼를 입은 채로 등에 사인을 받는다. 두 사람은 예전의 감성이 되살아나 진하게 키스를 하다가, 소군의 방으로 가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이요가 ‘매일 눈 뜰 때마다 당신을 보고 싶어.’ 하고 말한다. 두 사람은 각자의 관계를 정리하고 합치기로 한다.

   이요는 경찰을 피해 배를 타고 떠나려는 조폭 애인을 찾아가지만, 차마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와 함께 배를 타고 대만으로 간다. 소군은 홍콩에 왔을 때부터 이요와 사귀었다고 소정에게 고백하고 이혼을 한다. 소정이 떠나가고, 소군을 돌봐주던 고모도 세상을 떠나자, 의지할 곳이 없어진 소군은 새 삶을 찾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1993년 가을, 늘 쫓겨 다니는 조폭 애인을 따라 미국에 온 이요도 쫓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조폭 애인은 길거리에서 불량배의 총에 맞아 죽고, 비자가 만료된 이요는 강제추방을 집행하는 차에 태워져 공항으로 가고 있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소군을 발견한 이요는 잽싸게 차에서 내려 쫓아가지만 소군을 만나지는 못한다.

   1995년 5월, 뉴욕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는 이요와 뉴욕의 식당에서 부주방장으로 일하는 소군이 거리를 걷고 있는데,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오)이 흘러나온다. 한 전자대리점에 진열된 TV에서 나오는 등려군의 사망소식을 지켜보던 이요와 소군의 눈이 마주치면서 영화가 끝난다. ​

   ‘첨밀밀’은 홍콩드림을 꿈꾸는 소군과 이요가 만남과 이별, 재회를 반복하는 10년간의 행적을 군더더기 없이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군과 이요가 만날 때마다 등장하는 등려군은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한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아울러, 영화 곳곳에는 1997년 홍콩의 중국반환을 앞둔 불안한 정서가 표출되고 있다. AIDS 환자인 영어학원의 백인교사는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홍콩을 떠나는데, 이것은 영국령으로서의 홍콩의 남은 수명을 은유하는 것 같다. 또, 소군의 고모는 젊었을 때 ‘모정’(1955년)을 촬영하러 홍콩에 온 윌리엄 홀든과 반도호텔에서의 단 한 번의 식사데이트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데, 이것은 후일 중국령이 된 홍콩에서 옛 영국령 홍콩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유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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