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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베의 연인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2. 4. 1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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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베의 연인(Bebo's Girl)

 

최용현(수필가)

 

   2주마다 한 번씩 기차를 타고 교도소에 있는 연인에게 면회를 가는 시골처녀 마라(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扮)의 회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마라가 부베(조지 차키리스 扮)라는 청년을 처음 만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7월 어느 날 이탈리아 북부의 빈촌(貧村) 마라의 집에 부베가 찾아오면서였다.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는 파르티잔(partizan)인 부베는 나치에게 처형된 동지 산테의 전사(戰死) 소식을 전하러 왔다가 집 앞에서 산테의 여동생을 만난 것이다.

   마라와 부베는 처음 본 순간 서로에게 끌렸고, 마라는 부베를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바지 무릎의 터진 곳을 꿰매어준다. 마라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부베는 떠날 때 배낭에서 낙하산 실크 원단을 꺼내 마라에게 주면서 옷으로 만들어 입으라고 한다.

   한 달쯤 지나서 부베가 두 번째 왔을 때, 마라는 그가 준 실크 원단으로 만든 블라우스를 입은 모습을 보여준다. 부베는 멋지네요. 하면서 마라의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 훌쩍 떠난다. 가을이 되자, 부베로부터 생필품을 담은 조그만 소포가 오더니, 그 후에는 매주 편지가 온다. 부베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없었다.

   1년이 지났을까. 불쑥 찾아온 부베는 마라의 의사도 묻지 않고 마라의 아버지에게서 마라와의 약혼 승낙을 받는다. 마라의 어머니는 파르티잔은 위험하다며 반대했지만, 파시스트를 혐오하는 마라의 아버지는 부베를 믿음직한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부베는 마라를 데리고 시내로 나가 뱀가죽 하이힐을 사준다. 마라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얼마 후에 다시 마라의 집으로 온 부베는 파르티잔인 친구가 파시스트 헌병대 준위에게 사살되자 보복으로 준위와 그의 아들을 죽였고, 그 때문에 헌병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부베는 마라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서 가족들에게 소개를 시켜주고, 함께 변두리 외진 곳으로 가서 몸을 숨긴다. 거기까지 헌병들이 추적해오자, 부베는 파르티잔과 사촌의 도움으로 국외탈출을 시도한다. 마라는 자고 나면 떠나야 하는 부베에게 ‘꼭 안아줘요.’ 하면서 처음으로 몸을 허락한다. 날이 밝아오자, 부베는 차를 타고 떠난다.

   친구 집에 기거하면서 다림질하는 일을 하던 마라는 인쇄소를 운영하는 스테파노라는 청년을 알게 되고, 그가 마련해준 인쇄소 일을 하면서 함께 영화구경도 하는 등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마라는 재력도 있고 매너까지 좋은 스테파노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자, 잠시 부베를 잊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한편, 마라 곁을 떠난 지 1년 만에 유고슬라비아에서 체포된 부베는 이탈리아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교도소로 찾아간 마라는 ‘보고 싶었어. 당신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버텼어.’ 하고 말하는 부베를 보고, 그의 연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마라는 청혼하는 스테파노에게 ‘이해해줘요. 저는 부베의 여자예요.’ 하면서 이별을 고한다.

   전에 부베는 버스에서 봉변을 당하는 파시스트 사제(司祭)를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사제가 법정에서 유리한 증언을 해준 덕분에 종신형을 면하고 징역 14년 선고를 받는다. 마라는 그가 출옥하면 그와 행복한 가정을 꾸릴 꿈을 꾸면서, 2주에 한 번씩 그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7년이 지난 어느 날, 부베를 보러 가던 마라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스테파노를 만난다. 2주마다 면회를 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스테파노는 ‘당신은 참 강한 여자예요.’ 하고 말하는데, 마라는 ‘부베는 더 강해요. 7년이나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어요. 7년 후면 저는 34살, 부베는 37살이 되는데, 그때도 아이를 낳을 수 있어요.’ 하고 말한다. 마라가 탄 기차가 출발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부베의 연인(La Ragazza di Bube)’을 이야기할 때, 두 연인이 만나거나 함께 있을 때마다 잔잔하게 흐르는 애잔하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의 주제곡 OST를 결코 빼놓을 수 없으리라. 이 영화에서 음악을 맡은 ‘카를로 루스티첼리’는 영화를 좋아하는 올드팬들에게 익숙한 ‘철도원’(1956년)의 주제곡과 ‘아모레 아모레 아모레 아모레 미오~’로 시작하는 ‘형사’(1959년)의 주제곡 ‘Sinno me moro(죽도록 사랑해서)’를 작곡한 사람이다.

   부베 역을 맡은 조지 차키리스는 뮤지컬 명작 ‘웨스트사이드 스토리’(1961년)로 아카데미 및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은 미국배우로 ‘부베의 연인’(1963년)이 그의 인생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마라 역을 맡아 순박하면서도 지조(志操)가 있는 강인한 여성상을 선보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CC)는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1956년 튀니지에서 열린 ‘이탈리아 영화제’의 미인대회에 출전하여 빼어난 미모와 까무잡잡한 피부, 168cm, 56kg의 몸매로 1등을 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형사’와 ‘가방을 든 여인’(1961년)에서 일약 여주인공을 맡아 단숨에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할리우드로 진출한 후에는 ‘4인의 프로페셔널’(1966년)과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년) 등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실바나 망가노와 소피아 로렌을 잇는 이탈리아 출신 여배우의 계보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마릴린 몬로(MM), 브리짓 바르도(BB)와 함께 섹스 심벌로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다.

   ‘부베의 연인’은 이탈리아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이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그린 흑백영화로, 우리나라에는 1965년에 개봉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그것은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사랑을 지켜내는 여주인공의 순애보와 감미로운 OST가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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