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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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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Leon)

 

최용현(수필가)

 

   1995,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이 할리우드 영화와 당당히 경쟁하기 위해 영어로 만든 레옹(Leon)’이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그리고 드라마, CF, 예능프로그램의 패러디 등에 폭발적으로 파급되어 레옹 신드롬을 일으키며 프랑스영화 최초로 관객 150만 명을 돌파했다.

   2013년 봄, ‘레옹이 다시 우리나라 극장가를 찾아왔다. 이번에 재개봉한 레옹은 전보다 20여분 늘어난 감독판(director’s cut)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화질도 깨끗해졌고 음질도 좋아졌다. 마틸다(나탈리 포트만 )가 킬러 수업을 받는 장면과, 레옹(장 르노 )2인조로 청부 일(?)을 하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또 심의과정에서 잘려나간 두 사람의 동침장면도 들어있어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가 보다 대담하고 선명하게 표출된다.

   뉴욕 이탈리아 타운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 동그랗고 까만 안경과 윗머리만 가리는 빵모자를 쓴 살인청부업자 레옹이 산다. 늘 운동으로 체력관리를 하고, 술 대신 우유를 마시며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고 있다. 만나는 사람은 청부내용을 전해주고 자신의 돈을 관리해주는 살인청부중계업자 뿐이고, 친구라곤 화분 하나가 유일하다. 이민 온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영어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어느 날, 레옹은 옆집 가족이 형사반장 스탠스(게리 올드만 )와 그의 부하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심부름을 갔다가 목숨을 구한 그 집의 12살 소녀 마틸다가 울며 레옹의 집 문을 두드리면서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된다. 직업적인 킬러와 악랄한 경찰, 어수룩한 중년남자와 발랑 까진 소녀, 뤽 베송다운 허를 찌르는 설정 아닌가.

   ‘몇 살 때 처음 사람을 죽였어요?’ 하고 마틸다가 묻자, 레옹이 열아홉 살이라고 하면서 당시 얘기를 들려준다.

   “사귀던 여자가 있었어. 집안이 아주 좋았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건달이라며 만나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도 몰래 자꾸 만나니까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총으로 쏘아 죽였어. 오발사고라고 우겨서 이틀 만에 풀려나더군. 그 남자를 쏴죽이고 이곳으로 도망쳐왔지. 그때가 열아홉 살이었어.”

   마틸다는 레옹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대신 자신의 가족들, 특히 어린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레옹에게 총 쏘는 법을 배우고 킬러수업도 받는다. 둘은 함께 체력훈련도 하고 장난도 치며 지내는데, 마틸다는 틈틈이 사랑한다고 들이대며 레옹을 당황하게 한다.

   스탠스의 거처를 알아낸 마틸다는 레옹에게 처리를 부탁한다. 그러나 레옹은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며 거절한다. 마틸다는 총을 빵 봉지에 숨기고 혼자 스탠스를 찾아갔다가, 스탠스에게 잡혀서 감금된다. 때마침 귀가한 레옹이 마틸다가 남긴 쪽지를 보고 찾아와 귀신 같은 솜씨로 스탠스의 부하들을 처치하고 마틸다를 구해낸다.

   우유를 사오는 마틸다를 미행하는 스탠스, 결국 레옹과 마틸다가 사는 곳은 스탠스의 부하들에게 완전히 포위된다. 선발대를 처치한 레옹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 환풍기를 뜯어낸 통로로 마틸다를 떠나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네 덕에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됐어. 사랑한다. 마틸다.”

   복도에서 스탠스와 마주친 레옹, 스탠스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레옹은 스탠스가 가까이 다가오자, 이건 마틸다의 선물이야!’라며 수류탄에서 뽑은 안전핀을 그의 손에 쥐어 준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레옹은 스탠스와 함께 산화(散花)한다.

   마틸다는 레옹의 당부대로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그리고 레옹과 함께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뿌리를 내리지 못하던 화분 속의 화초를 땅에 옮겨 심으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이민자들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레옹은 이민 1세대이고, 마틸다는 마약거래를 하며 밑바닥 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둔 이민 2세대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프랑스 이민의 실상과 문제점을 고발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뤽 베송은 1980년대 누벨 이마주를 이끈 젊은 기수의 한 사람으로, ‘그랑블루’(1988), ‘5원소’(1997), ‘잔 다르크’(1999) 등을 연출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연출 외에도 작가로서 각본을 쓰거나, 각색, 기획, 제작 등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레옹은 그가 장 르노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쓴 것이란다.

이 영화에 나오는 세 사람의 배우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

   레옹 역을 맡은 장 르노는 모로코에서 프랑스로 건너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어렵게 살아오다가 35세 때 뤽 베송 감독의 데뷔작 마지막 전투’(1983)에 발탁된 후 줄곧 그의 영화에 출연해왔다. ‘그랑블루비지터’(1993), ‘레옹으로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고, ‘미션 임파서블’(1996), ‘다빈치 코드’(2006) 등에서도 활약했다.

   형사반장 스탠스 역을 맡은 게리 올드만은 마틸다 가족의 학살에 앞서 마약 한 알을 입에 넣고 온몸을 한번 뒤틀고는 베토벤의 음악이 어쩌고 해가면서 총을 쏘는, 섬뜩하면서도 광기어린 악역 캐릭터를 선보인다. 이후 그는 불멸의 연인’(1994), ‘5원소’, ‘해리 포터시리즈 등에서도 열연하며 연기파 배우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마틸다 역으로 데뷔한 나탈리 포트만은 어리지만 뚜렷한 존재감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버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5개 언어를 구사하는 엄친딸이기도 하다. ‘스타워즈시리즈에서 공주와 여왕 역을 맡아 주목을 받더니, 2010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아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레옹의 마지막 장면, 마틸다가 학교 정원에서 여기가 좋겠어요, 아저씨.’ 하며 화초를 옮겨 심을 때 그래미상을 열 번 넘게 수상한 영국 출신 가수 스팅의 ‘Shape of my heart’가 엔딩 크레딧과 함께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이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크게 기여한 불후의 명곡 아닌가. 오랜만에 자막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느긋하게 앉아서 음미해보았다.

   가눌 수 없는 그리움과 연민이 가슴 뭉클하게 여울져왔다. 부산에서 자취하던 열아홉 살 시절에 한 집에서 살다가 꼭 마틸다의 나이에 수마(水魔)에 휩쓸려 하늘나라로 간, 마틸다만큼 예뻤던 한 소녀가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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