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1912년 4월 10일, 영국에서 출발하여 미국 뉴욕으로 처녀항해를 하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은 4월 15일 이른 새벽에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에서 200마일 떨어진 곳에서 북대서양의 빙산에 옆구리를 부딪쳤다.
사고 순간의 속력은 22.5노트였다. 레이더 없이 망원경과 육안 관찰에 의존하던 시절, 빙산과의 충돌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서양 횡단기록 갱신을 위해 최고속력으로 달렸던 것이다. 속도를 조금만 늦췄어도 빙산과의 충돌을 피할 수가 있었다.
구명보트가 턱없이 모자랐다. 구명보트가 배에 주렁주렁 달려있으면 미관상 보기 싫다는 이유로, 또 타이타닉은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다는 자만심 때문에 구명보트를 충분히 갖추지 않았던 것이다. 타이타닉의 구조에도 결함이 있었다. 타이타닉의 전면과 후면에는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격벽(隔璧)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측면에는 그런 격벽이 없었다. 그 때문에 옆구리에 난 조그만 구멍에도 순식간에 침수가 된 것이다.
타이타닉은 출발한 지 5일 만에, 빙산과 충돌한 지 2시간 40분 만에 거대한 선체가 두 동강이 난 채 침몰하였다. 승선인원 2,223명 중에서 구명보트를 타지 못한 1,517명이 북대서양의 차디찬 바다 속에 수장되었고 706명만이 살아남았다.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일어난 어이없는 참사였다.
제임스 카메룬이 1997년에 제작, 감독한 ‘타이타닉(Titanic)’은 이 엄청난 재난사고를 영화화한 것으로 20세기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1959년 작 ‘벤허’와 함께 아카데미상 11개 부문 수상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영화는 대형 화면으로 봐야 할 것 같아서, 아내와 함께 서울극장에서 봤고, 그 후에도 비디오와 TV로 여러 차례 보았다. 영화적 재미를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한 순간도 놓치기 아까운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타이타닉과 함께 수장되었다고 알려진 유명한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심해를 수색하는 장면에서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드디어 금고를 찾았는데 금고에서는 다이아몬드가 아닌, 다이아몬드를 목에 건 여인의 누드화가 나온다. TV에서 누드 그림을 본 한 할머니가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나요.’ 하고 전화를 해오면서, 수색대원들은 84년 전의 타이타닉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할머니는 몰락한 상류층 가문의 딸로서 대부호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해야 했던 비련의 여주인공 로즈(케이트 윈슬렛 扮)였다. 남자 주인공은 선술집에서 삼등석 표를 걸어놓고 벌인 포커 판에서 풀 하우스를 잡은 행운(?)으로 이 배를 타게 된 가난한 화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扮)이었고.
상류층의 위선과 가식, 그리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가혹한 처지에 숨막혀하던 로즈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은 없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청년 잭을 만나 마치 운명처럼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단 3일이었다.
첫째 날, 잭은 갑판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는 로즈를 재치 있게 설득하여 목숨을 구한다. 둘째 날, 로즈가 잭한테서 가래침 멀리 뱉는 법을 배우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저녁에 로즈는 잭을 초대하여 일등석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시 잭과 함께 빠져나와 삼등석에서 신나게 한밤의 파티를 즐긴다.
마지막 날인 셋째 날, 드디어 두 사람이 뱃머리에서 나란히 서고, 두 팔을 벌린 로즈가 ‘I’m flying’을 외치는,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날 잭은 로즈의 누드화를 그렸고 두 사람은 마차 안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을 나눈다.
그 무렵, 빙산에 부딪친 타이타닉은 급속도로 물이 차올라 결국 두 동강이 나서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두 사람도 바다 속으로 떨어진다. 잭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널빤지를 찾아내어 로즈를 그 위에 올라가게 한다.
“로즈, 당신은 살아서 애도 낳고, 오래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죽어야 해. 내 최고의 행운은 이 배를 탔다는 거, 그리고 당신을 만났다는 거야. 약속해줘,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로즈가 ‘약속할게요.’ 하고 대답을 한다. 온몸이 얼어붙은 잭은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고, 로즈는 살아남는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수색대원들은 타이타닉에 다이아몬드보다 더 소중한 사랑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함께 온 할머니의 손녀도 눈물을 흘린다. 수색대원들이 찾던 다이아몬드는 할머니가 가지고 있었다. 약혼자가 코트 주머니에 그 다이아몬드를 넣어두었는데, 그 코트를 로즈가 입고 있었던 것이다.
타이타닉을 얘기하면서 음악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으리라. 영화에는 타이타닉이 침몰할 당시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끝까지 대피하지 않고 연주를 하는데, 이는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해 밝혀진 실재했던 장면이라고 한다.
이 영화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은 간간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지만, 셀린 디옹이 부르는 노래는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온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순위에서 늘 10위 이내에 드는 곡이다.
Every night in my dreams I see you, I feel you, ……
(매일 밤 꿈속에서 그대를 보아요, 그대를 느껴요, …… )
타이타닉 사고 이후 84년을 더 살아온 로즈, 잭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난 그의 사진 한 장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는 부와 명예 따위를 추구하는 소위 상류층 인간들 속에서 의미 없는 말만 늘어놓다가 마감할 것이 뻔했던 내 인생을 송두리째 구해준 사람이다.”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삶’을 얘기하는 것이리라. 로즈가 살아온 101년의 세월에서 보면 그야말로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을 그 3일이 로즈의 인생 전체를 지배한 것을 보면 함께한 시간의 길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로즈는 타이타닉이 잠든 바다에 다이아몬드를 던져 넣는다. 그리고 잠을 자듯 편안하게 숨을 거둔다. 다시 젊은 시절의 로즈로 돌아가 타이타닉에서 잭을 만나는 꿈을 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