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장맛비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휴일이면 늘 가던 관악산에도 못가고 TV 앞에 앉아 어제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내 영화 취향을 잘 아는 작은 딸이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탄생 20주년을 기념하는 3D버전이 개봉되었다며 오후 표를 예매해주었다.
용산아이맥스 영화관을 찾아가, 극장에서 나눠주는 3D용 안경을 받아 자리를 찾아 앉았다. 관객은 대부분 초등학교 아이들, 그리고 함께 온 젊은 학부형들이었다. 아마도 우리 부부가 최고령 관객이었으리라. 이 영화는 하도 많이 봐서 다음 장면들을 속속 꿰고 있었지만 대형 3D화면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금방 영화 속에 빠져들었다.
사업가인 존 해몬드 회장(리처드 아텐보로 扮)은 호박석 속에 갇혀있는 모기의 피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하여 여러 가지 공룡들을 복원해냈다. 그리고 코스타리카의 한 섬에 공룡시대를 재현한 테마 파크 ‘쥬라기(올바른 표기는 쥐라기) 공원’을 건설하여 개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공룡을 운송하던 한 인부가 공룡에게 참변(慘變)을 당하자, 투자자들은 공원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해몬드 회장은 공룡 화석을 찾아다니던 공룡학자 그랜트 박사(샘 닐 扮)와 그의 연인이며 고식물학자인 새틀러 박사(로라 던 扮), 그리고 수학자인 말콤 박사(제프 골드블룸 扮)와 변호사 한 사람을 안전진단 투어에 초대한다.
헬리콥터에서 내려서 자동차를 타고 공원에 들어선 그랜트 박사 일행은 바로 눈앞에서 목의 길이가 9m에 달하는 거구의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나무 꼭대기에 달린 잎을 따먹기 위해 앞발을 들고 곧추서는 모습을 보고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다. 이때 존 윌리엄스의 테마곡 ‘Welcome to Jurassic Park’가 경쾌하고 웅장하게 흘러나온다.
이들 일행은 부화실에서 알에서 깨어나는 벨로시랩터를 보고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다양한 공룡들의 무분별한 번식에 따른 관리와 통제에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해몬드 회장은 이곳 공룡들은 염색체를 조절하여 암컷만 태어나기 때문에 자연번식을 막을 수 있고, 구역별로 나누어 사육하므로 활동영역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해몬드 회장의 손녀 렉스와 손자 티미가 도착하자, 그랜트 박사 일행은 이들과 함께 무인운전 자동차를 타고 공원 투어에 나선다. 이때 미리 돈을 받아 챙긴 시스템 엔지니어가 컴퓨터로 제어되는 공원의 보안시스템을 정지시키고 공룡의 수정란을 훔쳐서 도망친다. 해몬드 회장은 보안 시스템을 초기화면으로 돌려놓기 위해 공원의 전원 스위치를 내린다.
전기 울타리에 고압전류가 흐르지 않게 되자, 무시무시한 육식공룡 티-렉스(티라노사우루스)가 우리를 뛰쳐나와 공원을 활보한다. 그랜트 박사 일행과 아이들을 태운 자동차가 멈춰 서고, 지축을 흔드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거대한 체구의 티-렉스가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차 옆으로 다가온다.
티-렉스가 굉음을 토하며 아이들이 탄 자동차를 뒤집어엎고 타이어를 물어뜯는다. 티-렉스를 다른 쪽으로 유인하던 말콤 박사는 부상당해 쓰러지고, 혼자 화장실로 도망친 변호사는 티-렉스의 밥이 되고 만다. 흥분한 티-렉스가 아이들이 탄 차를 벼랑으로 밀쳐내지만, 두 아이는 그랜트 박사의 도움으로 아슬아슬하게 위기에서 벗어난다.
한편, 새틀러 박사는 교활하면서도 포악한 벨로시랩터의 서식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전원(電源)이 있는 건물까지 달려가 공원 각 부분의 전원 스위치를 모두 올리는데 성공한다. 그 시각, 그랜트 박사, 누나와 함께 전기 울타리를 넘던 티미는 막 들어오는 전기에 감전되어 튕겨 나가지만 다시 의식을 회복한다.
가까스로 공원 안내소에 찾아들어온 두 아이는 창문에서 벨로시랩터가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주방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영리한 벨로시랩터 두 마리가 갈고리 모양의 발톱으로 주방문을 열고 들어와 매서운 눈을 번뜩이며 두 아이를 추격하는데….
‘쥬라기 공원’은 마이클 크라이튼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흥행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가 1993년에 만든 영화이다. 첨단 CG기술로 공룡들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도록 완벽하게 부활시켜 시각효과상 등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아울러 전 세계에 공룡 붐을 일으키며 9억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이는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공룡의 복원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결론을 먼저 말하면 복제에 필요한 공룡의 난자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한다. 모기의 피에서 추출한 공룡의 DNA는 모기의 DNA에 오염되어 있으며, 오염되어 훼손된 DNA를 영화에서처럼 개구리의 DNA로 대체할 수는 없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이 영화에 나오는 공룡들은 대부분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들이기 때문에 영화의 제목은 ‘쥬라기 공원’이 아니라 ‘백악기 공원’으로 고쳐져야 한다. 어쨌거나 6천5백만 년 전에 멸종한 공룡을 인위적으로 복원하는 것은 자연 생태계의 질서를 거스르는 일로, 이는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영화의 메시지에는 변함이 없으리라.
여기서 ‘쥬라기 공원’이 내 취향과 수준에 꼭 맞는 영화라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아내, 두 아이와 함께 부천에 있는 극장에서 내리 두 번을 보았다. 그 후에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서너 번 더 보았고, TV에서 방영할 때 녹화해두었다가 또 몇 번을 더 보았다. 합쳐서 열 번쯤 봤을까?
1997년, 곧 속편이 나온다는 뉴스를 접하고 퇴근길에 매일 비디오 가게를 들른 덕분에 2편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는 일찌감치 보았다. 2편도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으로 1편에서 말콤 박사로 나오는 제프 골드블룸이 주연을 맡았다. 쥬라기 공원이 폐쇄된 후 이웃 섬에서 다시 살아난 공룡들과 이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흥행에는 그런대로 성공했지만 짜임새나 완성도에서 1편보다 많이 처지는 것 같았다. 3편은 스필버그의 작품이 아니라서 아예 보지도 않았는데, 역시 별로였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