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첫 화면부터 후끈한 정사장면이다. 허리를 리드미컬하게 상하로 움직이고 있던 금발의 여자가 아래에 있는 남자의 손목을 하나씩 침대 머리에 묶는다. 절정의 순간, 여자가 갑자기 숨겨둔 얼음송곳(ice pick)을 꺼내 남자의 목과 가슴을 미친 듯이 찔러댄다.
다음날 아침, 왕년의 록 가수가 벌거벗은 채 선혈이 낭자한 시체로 파출부에 의해 발견된다. 현장에 남아있는 것은 얼음송곳과 코카인, 그리고 어지러이 널린 정액…. 전날 밤에 이 남자와 함께 클럽에 갔던 여류소설가 캐서린(샤론 스톤 扮)이 용의자로 떠오르고, 형사 닉(마이클 더글러스 扮)과 동료형사 거스는 그녀가 살고 있는 해안별장을 찾아간다.
닉은 캐서린의 빼어난 미모와 도도하면서도 섹시한 자태에서 묘한 매력을 느끼는데, 캐서린의 작품 중에서 이번 살인사건과 똑같은 내용의 소설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녀를 연행하기 위해 다시 방문한다. 캐서린은 외출옷으로 갈아입는다며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뒷모습을 보여주며 짧은 원피스만 입고 나온다.
취조실에 들어온 캐서린은 위축되기는커녕 담배를 입에 문 채 다리를 꼬고 앉아 뇌쇄적인 관능미로 수사관들의 혼을 빼놓는다. 그리고 명문 버클리 대학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복수전공한 수석졸업자답게 능수능란하게 답변을 하고 거짓말탐지기까지 통과하여 혐의에서 벗어난다. 그러던 중 이 사건을 맡은 강력계 반장이 총상을 입고 죽은 채 발견되는데….
네덜란드의 폴 버호벤 감독은 1983년에 미스터리 스릴러 ‘포스 맨(The Fourth Man)’을 연출했는데, 이 영화가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그의 이름을 할리우드에 알리게 된다. 그의 할리우드 감독 데뷔작 ‘로보캅’(1987년)과 ‘토탈 리콜’(1990년)이 연이어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이제 거장(巨匠)의 반열에 올라선다.
자신감을 얻은 폴 버호벤은 ‘포스 맨’을 일부 수정하여 할리우드 버전으로 다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이다. ‘토탈 리콜’에서 어설프게 액션 연기를 하던 샤론 스톤을 이 영화에서 과감하게 섹시스타로 변신시켰는데 그것이 기막히게 적중했다. 1958년생인 샤론 스톤은 지금도 할리우드 최고의 섹스심벌로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남자 주인공 마이클 더글러스는 ‘OK목장의 결투’(1957년) ‘스팔타커스’(1960년)의 명우 커크 더글러스의 아들이다. 그의 가족은 부모와 형제, 아들이 모두 할리우드에서 밥을 먹고 사는 영화인들이다. 25세 연하의 미녀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와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잘 살더니 최근에 이혼설이 솔솔 나오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이 영화는 첫 화면부터 농염한 베드신으로 관객들을 숨죽이게 하고, 상대 남성을 얼음송곳으로 잔인하게 찔러 죽이는 금발여인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끝까지 이어가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섹스스릴러이다. 1992년 개봉 당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샤론 스톤의 취조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만큼 흥미진진하고 스릴이 넘친다. 하얀 원피스만(!) 입은 샤론 스톤이 다리를 번갈아가며 꼬면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취조하는 경찰관들뿐 아니라 관객들마저도 홀리게 한다. 당시, 샤론스톤의 음모(陰毛)가 보인다고 해서 화제가 됐는데, 정지화면으로 한 컷씩 돌려보면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자, 이제 록 가수를 죽인 금발의 여인을 찾아보자. 첫 번째 용의자는 캐서린이다. 경찰서에 연행하고도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돌려보냈지만, 닉은 캐서린을 범인으로 확신하고 그녀의 수상한 행적들을 조사하고 있다. 그녀의 대학시절 지도교수의 의문사, 거부(巨富)인 그녀의 부모를 앗아간 보트사고, 그녀의 약혼자였던 복서의 급사(急死) 등.
그런데, 캐서린은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자를 사랑하는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있다며, 닉이 예전에 실수로 관광객 2명을 쏘아죽인 기사 등 닉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 그 형사는 마지막에 죽을 거란다. 그래야 책이 잘 팔린다며.
두 번째 용의자는 캐서린과 레즈비언 관계에 있는 록시이다. 닉이 캐서린과 만나 세기적인(?) 섹스를 나눌 때, 숨어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록시는 질투에 눈이 멀어 자동차 사고로 위장하여 닉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닉이 거세게 추격하자, 록시가 몰던 자동차가 공사장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바람에 사망하고 만다. 특별한 전과는 없었다.
세 번째 용의자는 닉의 옛 애인이면서 범죄 심리를 담당하는 동료경찰 가너 박사(진 트리플혼 扮)이다. 흑발이지만 가끔 금발로 변신을 한다. 캐서린과는 버클리 대학의 동창으로 둘이서 동성애를 나눈 적도 있다. 닉과 캐서린의 깊은 관계를 눈치 챈 가너 박사는 ‘캐서린은 아주 사악하고 교활한 여우이니 조심하라.’고 닉에게 충고 겸 경고를 한다.
그러나 닉은 가너 박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 이름을 바꾸었고, 의문사한 남편을 죽인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거스와 함께 그녀의 동창을 만나러 간다. 먼저 엘리베이터를 탄 거스는 검은 망토를 걸치고 나타난 금발 괴한이 휘두르는 얼음송곳에 무참히 난자(亂刺) 당해 즉사하고 만다. 뒤따라간 닉은 현장에 나타난 가너 박사를 범인으로 오인하고 총을 쏘아 죽이는데….
바로 옆 계단에서 발견된 금발 가발과 망토, 그리고 피 묻은 얼음송곳, 또 가너 박사의 아파트를 수색해서 나온 캐서린의 책들과 서두의 록 가수 관련기사들, 38구경 리볼버 권총 등을 정밀 조사한 결과, 록 가수와 거스를 얼음송곳으로 찔러죽이고 강력계 반장을 쏜 범인이 모두 가너 박사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가장 아닐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이라는 범죄영화의 불문율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영화의 결말을 보자. 소설을 탈고한 캐서린이 닉의 집으로 찾아와 ‘내가 사랑하면 모두 다 죽어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요.’ 하면서 울먹인다. 두 사람은 다시 세기적인 섹스를 나누는데, 어느 순간 캐서린의 한 손이 침대 아래로 내려가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올라온다.
캐서린이 ‘이제 우리 어떻게 하죠?’ 하고 묻는다. 닉이 ‘밍크처럼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고 대답한다. 다시 둘의 2라운드(?)가 시작되고, 카메라는 캐서린의 한 손이 내려갔던 침대 아래로 향한다. 아, 거기에 있는 것은 얼음송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