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20세기 초, 외세의 침략으로 중국이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해가고 있을 때, 열강의 무술고수들을 통쾌하게 제압하여 중국인의 자존심을 살린 영웅이 둘 있다. 황비홍(1847~1925)과 곽원갑(1868~1910)이다. 이들의 활약상은 여러 번 영화화되었다.
실명(實名)의 영화제목 덕분인지 황비홍은 많이들 알고 있는데, 곽원갑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무인 곽원갑’(2006)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사실 ‘정무문(精武門)’이라는 이름이 붙은 영화는 모두 곽원갑과 관련된 것이다. 그가 근대적인 무술학교인 정무체육회를 설립했고, 그곳에서 문중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미종권(迷蹤拳)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들의 맥을 이어온 무술인으로서, 홍콩무술영화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영화배우 이소룡이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란 중국계 미국인으로, 여러 종류의 무술을 독창적으로 접목시켜 절권도를 창시한 무술계의 큰 별이자 당시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이소룡이 출연한 영화는 ‘당산대형’(1971년), ‘정무문’(1972년), ‘맹룡과강’(1972년), ‘용쟁호투’(1973년) 네 편이다. 그는 1973년 ‘사망유희’ 촬영 중 두통으로 쓰러져 33세에 눈을 감았다. 사인(死因)은 약물과용설, 마약설 등 다양한데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사망유희’는 대역을 써서 1978년에 완성했다. 그의 유작(遺作)이 되어버린 ‘사망유희’라는 영화제목이 왠지 거슬린다.
‘정무문(Fist of Fury)’은 각본과 감독을 맡은 나유가 홍콩에서 제작한, 이소룡에 의한 이소룡을 위한 이소룡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쌍절곤과 괴성 ‘아뵤~!’가 처음 등장한다. 그 당시엔 애송이(?)였던 성룡과 원표가 잠깐 엑스트라로 출연하지만 화면에서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영화는 중국 상하이에 있는 무예수련장 정무문의 창시자 곽원갑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온 수제자 진진(이소룡 扮)은 장례식장에서 울부짖으며 난동을 부리다가 며칠째 식음을 전폐하고 사부의 영정을 지키고 있다. 감기 때문에 갑자기 사망했다는 말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삼우제 날, 홍구무도장의 일본인 앞잡이인 통역관 호 씨가 동아병부(東亞病夫, 동아시아의 병든 족속)라고 쓰인 현판을 들고 찾아와 진진의 뺨을 때리며 시비를 걸다가 돌아간다. 다음날, 진진은 혼자 홍구무도장으로 찾아가 문도(門徒)들을 모두 쌍절곤으로 제압하고 일본인 사범마저 때려눕혀 화풀이를 한다. 무예고수인 일본인 관장은 출타 중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관장 스즈키(하시모토 리키 扮)는 부하들을 보내 정무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고, 그 자리에 없었던 진진을 3일내로 내놓지 않으면 일본영사관에 고발하여 정무문을 폐쇄하고 문도들도 모조리 체포하겠다고 통보한다. 진진은 자신의 섣부른 행동 때문에 정무문이 위태롭게 된 것을 알고 상하이를 떠나기로 한다.
그날 밤, 사부의 빈소를 지키던 진진은 우연히 주방에서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는데, 주방장과 집사가 홍구무도장의 사주를 받아 사부 곽원갑을 독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격분한 진진은 두 사람을 가차 없이 응징하여 그 시체를 전봇대에 매달아 놓고, 사부가 독살되었으며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사라진다.
사부의 묘지에서 노숙하던 진진은 그곳까지 찾아온 약혼녀(묘가수 扮)와 뜨거운 포옹을 하며 이번 일(?)이 끝나면 결혼해서 함께 멀리 떠나기로 약속한다. 인력거꾼으로 변장한 진진은 사부 독살에 직접 관여한 홍구무도장의 통역관 호 씨를 태우고 외곽으로 나가 처단하여 그 시체를 다시 전봇대에 매달아놓는다.
악에 받친 홍구무도장의 관장 스즈키는 정무문을 모두 때려 부수고 문도들을 다 죽이고 오라는 명을 내린다. 당시 상하이는 일본의 관할구역이었기 때문에 증거만 남기지 않으면 발뺌할 수 있었다. 홍구무도장의 문도들이 떼거리로 정무문으로 몰려오고, 그 시간 정무문의 간부들은 진진을 멀리 피신시키고자 진진의 약혼녀를 앞세우고 곽원갑의 묘지로 향하고 있었다.
한편, 진진은 혼자 홍구무도장으로 쳐들어간다. 먼저 일본도를 들고 덤비는 일본인 사범을 제압하고, 다음엔 괴력의 러시아 무술고수를 격투 끝에 때려눕힌다. 마지막으로 일본도를 빼든 관장 스즈키의 날카로운 공격을 쌍절곤으로 막아내고 혼신을 다한 발차기 한방으로 끝장을 낸다.
사부의 묘지에서 진진을 찾지 못한 정무문의 간부들이 돌아와 보니 동료들이 모두 살해되어 시체가 온 도장을 메우고 있다. 이때 경찰이 일본영사관 직원과 함께 들이닥쳐 진진을 내놓지 않으면 정무문을 폐쇄하겠다고 한다. 창문으로 들어와 이 모습을 지켜본 진진은 정무문을 지키기 위해 자수하고, 그가 경찰을 따라 정무문을 나서면서 영화가 끝난다.
성룡, 주성치, 이연걸, 견자단 등 기라성 같은 후배들이 모두 이소룡을 오마주하는 속편 혹은 리메이크 ‘정무문’을 찍었다. 혹자는 성룡이나 이연걸이 손동작이나 발동작 등 세기(細技)에서 이소룡보다 더 낫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소룡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상대방을 압도하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고,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뵤~’ 하며 괴성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무예고수들을 때려눕히는 장면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다. 이소룡이 경찰을 따라 정무문을 나설 때, 정문 앞에서는 많은 경찰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를 본 이소룡은 시니컬한 미소와 함께 ‘아우~’ 하고 괴성을 지르며 앞차기로 뛰어오른다. 그 순간 ‘탕탕탕-’ 하는 총소리가 나면서 화면이 멎는다.
이 장면,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그렇다.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열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1969년)의 마지막 장면과 흡사하다. 은행 강도인 두 주인공이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경찰들의 총부리 앞에서 동시에 뛰어오르고, 총소리가 나면서 영화가 끝나지 않는가.
‘정무문’은 이 영화보다 3년 후에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이 장면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