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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튼 대전차 군단(Patton)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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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튼 대전차 군단(Patton)

 

최용현(수필가)

 

   “전쟁에서 죽는 놈은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불쌍하고 멍청한 상대편 놈을 죽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30년쯤 후에 제군들의 무릎에 앉은 손자가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뭘 했느냐?’고 물으면 제군들은 루이지애나에서 똥 치우고 있었다.’는 말은 안 해도 될 것이다.”

   거대한 성조기 앞 연단에 선 패튼 장군(조지 C. 스콧 )이 부하 장병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 맥아더 장군이 있었다면 유럽과 아프리카 전선에는 패튼 장군이 있었다. 연합군의 유럽전선에서의 승리는 패튼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Patton)’은 패튼 장군의 활약을 다룬 전기(傳記) 영화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아프리카와 유럽의 전황을 스펙터클 전투 시퀀스로 생생하게 재현해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상대가 미처 방어선을 구축하기 전에 거세게 몰아치는 패튼 장군 특유의 저돌적인 추진력과 독특한 카리스마, 돈키호테적인 성격이 영화 속에 잘 녹아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0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미국의 영웅 패튼을 훌륭하게 그려낸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반전주의자들로부터는 전쟁광을 미화시켰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하여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장장 3시간에 이르는 영화의 연출을 맡은 거장 프랭클린 J. 샤프너가 감독상을 받았고, 원작인 래디슬라스 파라고의 패튼 : 시련과 승리, 브래들리 장군의 한 군인의 이야기를 치밀하고 깔끔하게 각색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각본상을 받았다. 패튼 장군 역을 맡아 신들린 듯 열연한 조지 C. 스콧은 남우주연상으로 결정되었지만 배우들끼리 경쟁하는 것이 마뜩찮다며 수상을 거부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11, 패튼 장군은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던 북아프리카 카사블랑카를 4일 만에 탈환한 공로로 모로코 무공훈장을 받는다. 중장으로 진급한 패튼은 제2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2군 기갑병단이 튀니지의 카세린 요새에서 독일의 롬멜 장군에게 대패한 직후였다. 패튼은 친구이면서 합리적인 성품의 브래들리 소장(칼 말든 )을 부사령관으로 위촉한다.

   패튼은 이제부터 철모나 각반을 차지 않거나 복장이 불량하면 살가죽을 벗기겠다.’고 공표하여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는다. 맹훈련을 통해 병사들에게 전투의욕을 불어넣고 사기를 진작시킨 패튼은 19433, 튀니지의 엘 가타에서 사막의 여우로 불리던 롬멜의 전차부대를 격파하고 독일군을 북아프리카에서 완전히 몰아낸다.

   패튼은 롬멜, 이 멍청한 자식아! 네놈이 쓴 책을 읽었어.’하며 으쓱해한다. 롬멜이 쓴 전투에서의 탱크의 역할을 읽은 패튼이 이에 선제적(先制的)으로 대처하여 승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투 당시 롬멜이 디프테리아에 걸려 요양 차 귀국하여 베를린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실망한다.

   제7군 사령관에 임명된 패튼은 시실리를 탈환하는 영국 몽고메리 장군의 제8군을 측면 지원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몽고메리보다 먼저 메시나를 점령하지 말라.’는 최고사령부의 지시가 있었지만, 모든 공이 몽고메리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패튼이 독단적으로 진격명령을 내려 시실리의 팔레모는 물론 난공불락의 요새인 메시나까지 몽고메리보다 한발 먼저 점령해버린다.

   이 무렵, 패튼은 전투공포증에 걸린 나약한 병사를 겁쟁이라며 구타했는데, 이것이 보도되어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되자 제7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되고 만다. 이 때문에 패튼보다 웨스트포인트 6년 후배인 아이젠하워가 제2차 대전 중에 패튼을 추월하여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되었고, 나중에는 자신의 부사령관이던 브래들리마저도 패튼을 추월하게 된다.

   아이젠하워는 독일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패튼 장군을 지중해의 말타와 이집트의 카이로에 머무르게 하여 독일군으로 하여금 패튼이 그리스를 침공하려한다고 오판하게 만든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앞서 패튼이 프랑스의 칼레에 상륙할 것이라고 허위정보를 흘리는데, 이 정보에 속은 독일이 주력부대인 제15군을 칼레에 주둔시키게 된다.

   연합군의 성공적인 노르망디 상륙 직후 다시 제3군을 지휘하게 된 패튼은 기갑사단을 앞세우고 특유의 돌파력을 발휘하여 무모할 정도로 맹렬하게 프랑스 북부를 가로질러 독일로 향한다. 이때 그의 진격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선두 탱크가 연료 보급을 받지 못해 멈춰서는 바람에 독일군의 기습을 받아 참패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194412, 벨기에의 아르덴 삼림지대에서 독일군이 최후의 대반격을 시도할 때, 미군 75백 명이 포로로 잡히고 18천 명이 포위된다. 이때 구조를 자원한 패튼은 제3군 기갑부대를 이끌고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48시간 만에 160km를 진격하여 몰살당할 뻔했던 미군을 극적으로 구출해내고 독일군을 완전히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는다.

   전장에서의 눈부신 업적과는 달리, 패튼은 말실수 때문에 여러 번 구설수에 오르곤 한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워싱턴의 정치인들과 연합군 수뇌부 인사들이 러시아의 눈치를 보자, 패튼은 독일보다도 러시아가 더 위험한 존재라며 러시아는 언젠가 싸울 상대이니 지금 한번 붙어보자.’고 말한다. 이것이 또 문제가 되어 제3군 사령관에서 해임되면서 드디어 영욕으로 점철된 30여 년간의 군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패튼은 타고난 군인이었다. 그는 크리스천이면서도 윤회를 믿어, 자신이 전생에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 벌어진 한니발전쟁에도 참가했었고,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도 참가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말도 남겼다.

   “직업군인이 최후를 맞는 방법은 딱 한 가지야. 마지막 전쟁, 마지막 전투, 마지막 총알이지.”

   그러나 죽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영화에서는 브래들리 장군과 함께 걷다가 달구지에 치일 뻔한 사고로 그려지지만, 패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512, 독일에서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여 룩셈부르크의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장병묘소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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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튼 장군은 석연찮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고,  병원에서 정보기관 요원에게 암살되었는데, 그것은 대통령 출마를 꿈꾸던 육군참모총장 아이젠하워가 패튼 장군의 인기에 위협을 느껴서 저지른 것이라고 한다(MBC서프라이즈, 201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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