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량의 맹호 부자(父子) ‘마등과 마초’
최용현(수필가)
마등은 한의 복파장군 마원의 후손으로, 아버지로부터는 대대로 이어져 온 충의를 물려받았고 강족인 어머니로부터는 용맹을 물려받았다. 키가 여덟 자에 씩씩한 기상을 타고난 데다, 성품이 따뜻하고 너그러워 서량사람들의 우러름을 한 몸에 받았다.
일찍이 강족이 모반을 일으켰을 때, 그가 토벌대를 이끌고 진압하여 조정으로부터 정서장군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난세를 맞아 진서장군 한수와 의형제를 맺고 서량에서 막강한 군벌로 자리를 잡았다.
마등은 황제를 업신여기는 조정의 실력자 조조에게 의분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국구 동승이 주도하는 조조 제거음모에도 자진해서 가담했다. 그 모의가 발각되면서 동조자들은 거의 죽임을 당했으나 그는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조조는 마등을 제거하기 위해 남정장군이라는 벼슬을 내린 뒤, 손권을 친다는 핑계로 도성으로 불러들였다. 황제의 조서로 부르니 마등은 조조의 흉계가 있을 것임을 짐작하면서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 않으면 황명(皇命)을 어긴 죄를 뒤집어씌울 것이기 때문이다.
마등은 맏아들 마초에게 서량을 지키게 하고, 조카 마대와 함께 5천 군사를 이끌고 허도로 향했다. 그리고 허도의 성문 밖에서 군마를 멈추고 조조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때 조조는 문하시랑 황규를 마등에게 파견, 입궁하여 황제를 배알하라고 전했다. 마등이 성안으로 들어올 때 죽일 작정이었다. 그러나 문하시랑 황규는 마등이 한실에 대한 충의가 깊음을 알고 조조의 흉계를 마등에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조조가 서량군을 사열할 때 틈을 보아 함께 조조를 암살하기로 했다.
그러나 황규가 그 일을 애첩에게 얘기하는 바람에 애첩의 밀고로 밤사이에 조조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두 사람 모두 체포되었다. 마등은 옆에 묶여있는 황규를 쳐다보며 ‘저 더벅머리 선비 놈이 일을 그르치고 말았구나. 아,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하며 탄식했다.
결국 마등은 참수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마대는 곧바로 장사꾼으로 변장하여 서량으로 달려갔다. 비보(悲報)를 전해들은 마초는 쓰러져 통곡하며 이렇게 소리쳤다.
“조조, 이 역적 놈. 내 반드시 네 놈의 고기를 씹어 원수를 갚으리라!”
마초는 그의 아비를 쏙 빼닮아 기골이 장대하고 무용이 뛰어났으며 용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의 얼굴은 분을 바른 듯 희었고 입술은 연지를 칠한 듯 붉었으며 허리는 가늘고 날렵했다. 서량에서는 그의 용자(容姿)를 ‘금(錦)마초’ 혹은 ‘옥(玉)마초’라고 부르곤 했다.
그는 선친의 의형제인 한수와 함께 20만 대군을 일으켜 조조토벌에 나섰다. 그와 한수가 이끄는 서량군은 노도처럼 단숨에 장안을 휩쓸고 다시 파죽지세로 조조가 있는 허도를 향하여 진군했다.
급보를 받은 조조는 몸소 대군을 이끌고 서량군과 맞섰다. 마초는 양옆에 두 맹장 마대와 방덕을 세우고, 은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채 긴 창을 꼬나 잡고 말위에 앉아있었다. 마치 여포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영걸스런 위용을 보고 조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서량의 금마초라더니 정말 그렇구나!”
드디어 전투가 벌어졌다. 조조진영의 용장 우금과 장합 등이 마초에게 덤벼들었으나 역부족으로 쫓겨났다. 마초가 지휘하는 서량병이 파죽지세로 몰려오자, 조조는 붉은 전포도 벗어던져 버리고 긴 수염도 잘라버린 채 난군 속으로 간신히 도망쳤다. 하마터면 잡힐 뻔 했으나 허저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천하의 조조가 계속 당하고만 있겠는가. 조조는 드디어 계책을 써서 마초와 한수 사이를 이간시킨다. 마초와 한수가 서로 의심하여 자기편끼리 싸우고 있을 때 조조의 대군이 들이닥치니, 강맹을 자랑하던 마초의 군사는 마침내 패퇴한다. 마초는 간신히 마대, 방덕과 함께 농서 땅으로 도망친다.
이때 내린 영(令)을 보면 조조가 마초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초의 목을 베어오는 자에게는 천금의 상과 함께 만호후에 봉할 것이요, 마초를 사로잡아 오는 자에게는 대장군의 벼슬을 내리리라.”
마초는 패잔병을 이끌고 한중의 장로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거기서 마초는 유장을 도우러 온 유비군을 만나 일생일대의 호적수 장비와 격투를 벌이게 된다. 낮에 종일 싸우고도 승부가 나지 않자, 횃불을 밝혀놓고 밤에도 싸우지만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한다. 이 장면은 삼국지의 손꼽히는 명승부로 꼽히며 한 장의 삽화로 남아있다.
마초의 무용을 흠모한 제갈량은 지모를 펼쳐 그를 사로잡는다. 서량의 풍운아 마초는 결국 유비 진영의 장수가 되어 아비의 원수인 조조와 맞서게 된다. 후일 유비가 한중왕으로 등극할 때 마초는 관우 장비 조운 황충과 함께 촉의 5호(五虎) 대장군이 되어 조조군에 맞서 빛나는 무용을 떨친다. 그러다가 47세에 숨을 거둔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꽃답고 맵구나
충성과 정절로 뚜렷한 집안일세
삶을 바쳐 나라의 어려움을 풀려했고
죽음으로 황제의 은혜에 보답했네
피를 머금어 한 맹세
간사한 역적을 죽이리라는 의장(義狀) 아직도 남아있네
대대로 서량에서 녹을 받은 집안
복파장군 후예로 부끄럽지 않아라
이들 부자의 충절과 무용을 기린 시(詩)다. 줄을 잘 서야 살아남는 난세에, 한실에 대한 충의를 앞세워 천하의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죽임을 당한 마등, 그리고 선친의 유훈을 잊지 않고 끝까지 조조와 맞서 싸운 그의 아들 마초.
그 충절의 시시비비는 차치하고서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참으로 장한 맹호 부자(父子)가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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