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수필가)
삼국지 최고의 영웅 조조(曹操), 자는 맹덕(孟德). 어릴 때부터 유난히 총명했다. 청년시절 한때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궁궐의 위병장교로 발탁되어 뛰어난 업무처리 솜씨를 보이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환관의 양아들로 들어간 아버지를 두고 있어 신분 콤플렉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보통 키에 약간 야윈 편이고, 가늘면서도 매서운 눈매와 얇은 입술, 성긴 수염을 지녔다. 관상가로 유명한 허자장이 ‘너는 치세에는 능신(能臣)이요, 난세에는 간웅(奸雄)이 될 것이다.’고 했는데, 조조가 아주 흡족해했다고 한다.
‘조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부터 짚어보자. 젊은 시절의 조조가 부친의 친구 집에 들렀다가 밤에 문밖에서 칼 가는 소리를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착각하여 식솔 여덟 명을 무참히 죽였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접대하기 위해 돼지를 잡으려던 것이었다.
그 길로 도망치던 조조, 술을 사오던 부친의 친구마저도 무참히 살해한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는 ‘내가 천하의 만민을 배반할지언정, 천하의 만민이 나를 배반하지는 못하게 할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조조가 간웅으로 낙인찍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화이다.
조조, 참으로 많은 재능을 한 몸에 지닌 인물이다. 그의 번뜩이는 재치로 쌓은 업적은 그의 결점과 악행을 덮고도 남을 만큼 크고 화려하다. 의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조조, 지휘관으로서 이런 아량도 보였다.
라이벌 원소를 격파한 조조는 원소의 집무실에서 이상한 서류뭉치 하나를 발견했다. 원소와 내통한 자신의 부하들이 보내온 편지를 모아놓은 다발이었다. 그런데, 조조는 ‘나도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몰라 한때 마음이 흔들렸는데.’하면서 그 편지다발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조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여 간웅으로 치부되었던 그의 명예는 많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조조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근거가 되는 여러 일화들 또한 곳곳에 남아있다.
조조는 무장들에게는 후했지만 문사들에게는 가혹했다. 조조가 전투에 패한 장수에게 혹독한 처벌을 내린 적은 없다. 마음에 드는 무장은 비록 적장이라도 흠모(?)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눈 밖에 난 문사는 가차 없이 죽였다. 공융 양수 최염 등이 그렇게 희생되었고, 자신의 장자방이라고 했던 순욱과 그의 조카 순유마저도 예외일 수 없었다.
조조는 사람의 목숨을 자주 수단시 했다. 남양의 군벌 원술이 스스로 황제에 오르자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정벌길에 올랐다. 전쟁이 길어지자 군량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조조는 군량책임자인 왕후를 불러 되[斗]를 작게 만들어 군량을 지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급식이 줄어들자, 불평하던 병사들이 조조를 욕하기 시작했고 곧 난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다급해진 조조, 급히 왕후를 불렀다.
“자네의 목이 필요한데…. 대신 자네의 처자식은 내가 잘 보살펴주겠네.”
조조는 왕후의 목을 베어 진중에 걸었다. 그의 목에는 이런 방문(榜文)이 붙어 있었다.
“이 자는 되를 줄여 병사들의 식량을 도적질했으므로 군율에 의하여 효수하노라.”
병사들은 ‘그럼 그렇지!’ 하며 죽은 왕후를 욕했고, 조조에 대한 불평은 사라졌다.
위기상황에서의 조조의 임기응변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일화이다. 이렇듯 조조는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목을 베는 경우도 허다했다.
어쨌거나,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군웅들 중에서 공손찬을 패망시킨 사람은 원소지만, 조조는 그 원소와 원술, 여포 등을 평정하고 강북을 제패하였다. 후일, 위(魏)를 이은 진(晋)에 의해 삼국이 통일되는데, 그 통일기반을 확립한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조조이다.
그는 평생 전쟁터를 누비면서 정치가, 군략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많은 군웅들을 그의 손으로 토벌하였다. 연의에서는 전투에 패한 조조의 참혹한 모습이 더러 나오지만, 그는 적벽대전 외에는 크게 패한 적이 없었다.
또 조조는 문필가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는데, 혹자는 그가 남긴 시문(詩文)만으로도 조조를 위인의 반열에 올리는데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그의 셋째아들 조식에게로 이어졌다.
조조의 유명한 시 중 하나인 단가행(短歌行: 짧은 노래를 하노라)의 자주 인용되는 앞부분만 소개한다.
對酒當歌(대주당가) 술잔을 앞에 두고 노래하노니
人生幾何(인생기하) 우리 인생 살아야 얼마나 사나
譬如朝露(비여조로) 비유컨대 인생은 아침이슬 같고
去日苦多(거일고다) 지난날 돌아보니 고생이 많았구나
慨當以慷(개당이강) 하염없이 슬퍼하고 탄식하여도
憂思難忘(우사난망) 마음속 근심은 떨쳐내기 어렵네
何以解憂(하이해우) 무엇으로 이 시름 풀 수 있을까
唯有杜康(유유두강) 오로지 술이 있을 뿐이로다
마지막 부분의 두강(杜康)은 처음 술을 빚었다고 알려진 전설 속의 인물이니 그냥 ‘술’이라 번역해도 무방하다. 영화 ‘적벽대전2’에서 조조가 술을 마시고 휘하 장수들 앞에서 읊조리던 바로 그 시이다. 모택동이 아주 좋아하던 시라고 한다.
사람은 죽을 때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조조는 자신의 묘를 만들 때 봉분(封墳) 72개를 함께 만들게 했다. 후세의 도굴이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그의 유언은 의외로 소박했다.
“천하는 아직 평정되지 못했다. 이런 시기에 예를 차린다고 거창하게 장례를 치르지 마라. 장례가 끝나거든 바로 탈상하고 일상 업무에 임하라. 입관할 때 금옥진보(金玉珍寶)는 함께 넣지 말고 철따라 갈아입을 옷이나 몇 벌 넣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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