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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의 각축장인 형주의 준걸 ‘유표’

삼국지 인물열전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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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웅의 각축장인 형주의 준걸 유표

 

최용현(수필가)

 

   중원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형주는 옛날부터 인심 좋고 물자가 풍부하여 명현(名賢)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다. 자가 경승(景升)인 형주자사 유표(劉表)는 한실의 종친인데다 뛰어난 학식과 덕망까지 갖추고 있어 형주 주민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아왔다.

   유표는 사람사귀기를 좋아하여 늘 명사들과 어울렸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와 자주 어울리는 여덟 명사를 강하팔준(江夏八俊)’이라 불렀다. 이들은 중원을 뒤흔들고 있는 전란에도 아랑곳없이 풍류를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서서히 난세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독재자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전국의 제후들이 연합군을 구성했을 때 형주자사 유표는 애써 외면하며 연합군에 가담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합군의 맹주(盟主) 원소로부터 손견이 옥새를 훔쳐 강동으로 달아나고 있으니 형주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옥새를 뺏어라!’는 밀서가 왔다.

   옥새는 황제의 상징물이 아닌가. 한실의 종친인 유표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손견의 군사가 나타나자 길목을 지키고 있던 형주군이 공격을 감행했고, 두 군사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손견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공격해오자 유표 진영의 맹장 황조는 매복계를 써서 손견군을 유인, 손견을 무참히 참살했다. 형주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지만, 유표는 강동의 손 씨와는 원수가 되고 말았다.

   한편, 원술과 여포를 평정한 조조는 이제 시선을 형주로 돌렸다. 조조는 뛰어난 학문과 아울러 기행(奇行)으로 유명한 재사 예형을 형주로 보냈다. 그의 변설(辯舌)로 유표를 한번 떠보려는 속셈이었다. 유표는 예형을 강하에 있는 황조에게 보냈는데, 황조가 예형의 독설(毒舌)을 참지 못하고 죽이는 바람에 유표는 조조와도 원수가 되고 말았다.

   이 무렵, 조조에게 쫓기던 유비가 형주에 왔다. 유표는, 같은 한실의 종친인데다 조조의 남하를 저지하는 데 힘이 되어줄 것으로 판단, 유비를 받아들여 가까이 있는 신야에 머물게 했다. 유비는 조조가 하북의 원소를 치고 있는 사이, 비어있는 허도를 공략하자고 여러 번 조언을 했으나 유표는 번번이 묵살했다.

   유표에게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후사(後嗣) 문제였다. 두 아들 중 전처소생의 맏아들 유기는 심성이 어질고 착했으나 몸이 약했고, 후처 채 부인이 낳은 둘째아들 유종은 아직 어려서 세상물정을 몰랐다.

   그런데 유표는 젊은 채 부인의 치맛자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채 부인은 자기가 낳은 유종을 후사로 세우려고 남동생 채모와 함께 온갖 공작을 꾸미고 있었다. 유표가 고민을 토로하며 유비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고지식한 유비,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

   “옛날부터 맏이를 제치고 아우를 후사로 세우는 일은 국정을 어지럽히는 첫걸음이 되어왔습니다. 젊은 부인의 성화 때문에 아우를 후사로 세우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자고로 남의 후사문제에 대한 직설적인 충고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밖에서 이 말을 엿들은 채 부인은 채모를 불러 유비를 제거하라고 명했다. 눈치 없이 뱉은 말 한 마디 때문에 유비와 함께 맏아들 유기는 채모 일당으로부터 여러 번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어느 날, 유기가 유비를 찾아와 계모 채 씨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유비는 유기를 제갈량에게 보냈고, 제갈량은 춘추시대 진()나라의 신생과 중이 형제의 고사를 들려주며 밖으로 나가야 살 수 있다고 조언해주었다. 유기는 바로 아비 유표를 찾아가 강하를 지키겠다며 그곳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군사요충지인 강하를 지킬 마땅한 장수가 없어 고민하던 유표는, 기꺼운 마음으로 유기에게 군사 3천명을 주며 강하로 떠나게 했다. 결국 유기는 제갈량의 도움으로 계모의 독수(毒手)에서 벗어나게 된다.

   조조의 대군이 형주로 쳐들어온다는 첩보가 날아들자, 병상에 누워있던 유표는 유비를 불러 손을 꼭 잡으며 내가 죽거든 그대가 형주를 맡아서 다스려주게.’하며 간곡히 부탁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형주가 통째로 굴러 들어오게 되었지만, 유비는 의()가 아니라며 끝내 사양하고 물러났다.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쳐들어오자, 다급해진 유표는 맏아들 유기를 주인으로 삼고 뒤를 잘 보살펴주게.’하는 글을 유비에게 남겼다. 그리고 유언을 하기 위해 맏아들을 불러들였으나, 채부인 일당이 유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버렸기 때문에 유표는 맏아들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채부인 일당은 맏아들 유기와 유비에게는 부음조차 전하지 않고 가짜 유서를 만들어 이제 겨우 열네 살인 유종을 형주의 새 주인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조조로부터 유종을 형주의 주인으로 인정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너무도 간단히 조조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유종은 청주자사로 임명되었고, 임지로 가는 도중에 조조가 보낸 군사에 의해 어미 채 부인과 함께 피살되었다. 또 채모는 조조군의 수군도독을 맡았으나 주유의 거짓정보에 말려들어 조조의 의심을 받아 처형된다.

   강동의 손권과 힘을 합쳐서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유비는 제갈량을 앞세우고 재빠르게 움직여 유표의 큰아들 유기에게 돌려준다는 핑계로 형주를 선점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유기가 병사하자, 강동의 손권은 형주를 돌려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고, 이후 형주는 손권과 유비 사이에 골치 아픈 문제가 된다.

   형주는 뛰어난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곳이다. 유비가 수경선생 사마휘와 서서, 제갈량과 방통 같은 명현(名賢)들을 만난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 유표가 영웅의 기상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었더라면 이 기라성 같은 인재들의 도움을 받아 가히 천하제패를 꿈꾸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형주자사 유표는 물려받은 형주를 지키기에 급급할 뿐, 천하를 다툴만한 야심도 없었고 또 그럴 만한 그릇도 되지 못했다. 한 마디로 유표는 치세(治世)에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치세에 적합한 인물은 난세(亂世)가 되면 결점이 한꺼번에 노출되고 만다. 그는 난세에 군웅들의 각축장이면서 전략요충지인 형주의 임자로는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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