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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이 병신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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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이 병신

 

최용현(수필가)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갈 무렵, 초등학교 동창회를 고향에서 한다며 꼭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여자동창 재희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재희 땜에 동창회에는 도저히 못 나갈 것 같았다. 재희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캄캄해진다.

   100명이 조금 넘는 초등학교 동기생들은 입학에서부터 졸업할 때까지 6년 내내 남자는 1, 여자는 2반으로 편성되었다. 남녀가 같은 반에 편성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간혹 한쪽 담임선생님이 오시지 않았을 때 남녀 합반수업을 한 적은 있었지만.

   보통, 합반수업을 하면 다른 반은 남자반장이 앞에 나가서 설치는데, 우리 동기는 여자반장인 재희가 나가서 설쳤다. 재희가 앞에서 , 거기 조용히 해!’ 하고 한 마디 하면 남학생들은 모두 찍 소리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재희는 키가 컸고 얼굴도 촌 애 답지 않게 예쁜 데다 공부 또한 또래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잘 했다. 이듬해 입시에서 재희는 읍내 M여중에 당당히 수석으로 입학했다.

   일곱 살에 입학한 나는 부산에 있는 G중학교에 응시했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6학년을 한 번 더 다니다가 1년 후배들과 함께 읍내 M중학교에 들어갔다. 남학생들은 대부분 20리쯤 되는 등하교 길을 자전거로 통학했지만, 여학생들은 대부분 등교 때만 버스를 탔고, 하교 때는 차비를 아끼려고 신작로나 논둑길로 걸어 다녔다.

   우리 동네와 읍내의 중간쯤에 춘기다리라고 부르던 조그만 다리가 하나 있었다. 아침 등교 때는 그냥 통과했지만, 하교 때는 그 다리에서 잠깐씩 쉬곤 했다. 다리 난간에 자전거를 기대놓고 볼일(?)도 보고, 어떤 때는 다리 밑에 내려가서 그늘에 둘러앉아 장난을 치고 놀거나 단체로 본 영화 장면을 재연하기도 했다.

   2학년 초가을쯤,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소변이 몹시 마려웠는데 다리까지 가려고 꾹 참았다. 맨 먼저 춘기다리에 도착한 나는 자전거를 기대놓자마자 난간에 서서 다리 아래로 참았던 소변을 발사했다.

   시원하게 소변줄기를 뿜으며 고개를 드는 순간, 아뿔싸! M여중 교복을 입은 두 여학생이 바로 앞에서 논둑길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명은 재희였고, 또 한 명은 초등학교 1년 후배인 순옥이였다. 두 여학생도 깜짝 놀라 오던 걸음을 멈추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후다닥 바지를 수습하고 있는 힘을 다해 자전거 페달을 밟아 그 자리를 벗어났다. , 이 일을 어찌할꼬! 후배 순옥이는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앞으로 재희의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날부터 나는 등교 때나 하교 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둘만 보이면 무조건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고 그 자리를 통과했다.

   더 이상 재희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민하던 나는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읍내에 하숙을 시켜달라고 아버지를 조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드디어 읍내 선생님 댁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고, 마침 재희와 같은 동네에 사는 용재 선배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초등학교 1년 선배인 그도 중학입시에 떨어져 재수를 하는 바람에 우리 초등학교 동기들과 함께 M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읍내에서 하숙을 한지 한 달쯤 지났을까? 용재 선배가 20원을 주면서 라멩(?)을 사오라고 했다. 그때 주황색 봉지의 18원짜리 삼양라면을 처음 보았다. 조그만 물주전자에 면 덩어리와 스프를 넣고 우리 방 연탄불에 올려놓고 좀 있으니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게는 주전자 뚜껑에 조금 덜어서 주고 나머지는 용재 선배가 다 먹었다. 나는 뚜껑에 붙은 면발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떼어 먹었다. , 그 황홀한 맛.

   어느 날 밤, 하숙집 마당에서 용재야!’ 하고 부르는 여자의 음성이 들렸는데, 재희 목소리 같았다. 그러면 용재선배가 나갔다오곤 했는데, 어떤 때는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기도 했다. 용재 선배한테 물어보니 재희가 맞다고 한다. ,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고교입시를 앞두고 있던 재희도 우리 하숙집 부근에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용재 선배와 같은 방을 쓰고 있는 것을 알 텐데도 재희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용재 선배의 이름을 불렀다는 점이다. 둘이 한 동네에서 자라면서 친구처럼 지냈기 때문이리라. 나는 재희의 목소리가 들리면 괜히 주눅이 들었고, 혹시 재희가 우리 방문을 열면 어쩌나 싶어 온몸이 오그라들곤 했다.

   어느 날 밤, 기어코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문밖에서 용재야!’ 하는 재희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마침 그때 용재선배가 방에 없었다. 당연히 내가 방문을 열고 지금 용재 선배가 없다.’고 해야 하는데, 대답은커녕 방안에서 숨죽인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때, ‘원식아!’ 하는 재희의 목소리와 함께 우리 방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 순간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모기소리 만하게 -’ 하고 대답했다. 재희가 동기인데 말 놓지 뭐.’ 했다. 나는 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 하고 대답했다(어이구, 이 병신!). 그러자, 재희도 민망했는지 방문을 닫고 가버렸다.

   그 희한한 면담(?)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재희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후 재희는 마산에 있는 간호고등학교로 진학했다는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었고, 나는 1년 후에 부산으로 진학했기 때문에 다시 마주칠 일은 없었다. 듣자하니 재희는 얼마 전에 재미동포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갔다고 한다. 이번 동창회는 재희의 귀국날짜에 맞춘 거란다.

   아, 동창회에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모두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다른 친구들도 보고 싶은데, 재희와 마주칠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자신이 없다. 나는 며칠간 고민하다가 드디어 결심을 했다. 동창회에 나가서 재희를 만나면 내가 먼저 , 내가 왜 니만 보면 그렇게 쫄았는지 모르겠다. 이 가시나야! 하고 선수(先手)를 치겠다고.

   드디어 그날, 모임에서 재희를 보는 순간, 나는 선수를 치기는커녕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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