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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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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최용현(수필가)

 

   휴가를 나오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찾아 간 곳은 부산이었고, 그것은 부산에 사는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은 연재였고, 또 한 사람은 명종이었다. 휴가 나오면 찾아가겠다고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두 사람 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지난번 휴가 때 귀대하려고 고향마을 버스정류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저 앞 정류소에 투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서있었다. 우리 마을에는 저렇게 키가 큰 아가씨가 없는데, 누군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초등학교 후배 연재였다. 착한 심성이야 동네에서 정평이 나 있었지만,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어느새 세련된 외모와 늘씬한 몸매까지 갖춘 숙녀가 되어있었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휴가 오기 전에 받은 동네 친구의 편지에서 연재가 부산에 있는 초급대학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쓰여 있었던 것이. 군대 가기 전에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본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학생이 된 것이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연재 아니냐? 대학생이 되었구나. 부산에 가는 길이니?”

   “, 오빠. 휴가 나왔어요?”

   “, 그래. 휴가가 끝나 이제 귀대하는 길이야. 그래, 대학생활은 재미있니? 무슨 과()에 다니지?”

   나는 학교를 알고 있었으므로 과를 물어보았다. 가정학과라고 했다. 주말이라 집에 왔다가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란다. 우린 함께 버스를 타고 읍으로 나왔고,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고향 역에서 헤어졌다. 내가 먼저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탔고, 연재는 좀 있다가 부산으로 가는 열차를 탔으리라.

   다시 병영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날부터 연재가 내 머릿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낮에 교육을 받거나 참모부에서 일을 할 때도 그랬고, 밤에 불침번을 서거나 보초를 설 때도 고향 역에서의 연재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오늘 부대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휴가 나와요?’ 하고 묻던 모습과 고향 역에서 상경하는 기차에 오르는 내게 손을 흔들어 주던 모습, 3년 전 내가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갈 때 대문 앞에서 수줍게 미소 지으며 날 배웅하던 모습까지, 연재에 관련된 모든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군대란 참으로 묘한 곳이다. 전혀 생각이 나지 않던 아주 어릴 때의 기억까지도 되살려 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는 추석이 되면 아이들이 동네 뒷산 입구에 모여 큰 나뭇가지에 그네 줄을 매달아놓고 타곤 했는데, 내가 3학년 때인지 4학년 때인지 마침 그 자리에서 놀고 있던 연재랑 함께 그네를 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귀대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나는 연재의 학교 주소를 알아내어 학교로 편지를 썼다. 편지를 보낸 지 한 달쯤 지나 거의 포기할 때쯤 답장이 왔다. ‘휴가 때 고향에서의 만남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며, 부담 없는 정을 나누자.’고 씌어 있었다. 날아갈 듯 기뻤다.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오가는 편지가 쌓여가는 만큼 정도 깊어갔다.

   나는 첫 휴가만큼이나 이번 휴가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휴가를 나오자마자 부산으로 가서 연재가 다니는 학교에 찾아갔다. 학과 사무실에 도움을 청해서 어렵지 않게 연재를 만날 수 있었다. 연재는 남은 수업에 빠지고 나와 함께 해운대로 갔다.

   오랜만에 찾은, 봄날의 해운대 백사장은 온통 연인들의 무대였다. 햇살을 받은 바다는 찬란한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파도가 자꾸만 넘실대며 다가와 모래사장을 핥아내고 있었다. 우린 손잡고 백사장을 함께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재는 발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어린애처럼 마냥 즐거워했다.

   나는 처음으로 연재가 늘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소중한 감정을 가슴속에 담았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연재는 기거하고 있는 이모 집으로 향했고, 나는 명종이네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을 떠난 후 부산에서 하룻밤 묵을 일이 생기면 늘 대신동에 있는 명종이를 찾아가곤 했다. 내가 밤늦게라도 명종이 집에 찾아가면 그는 물론 그의 어머니도 아주 반갑게 맞아 주시곤 했다.

   명종이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급우였는데,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은 탓에 한쪽 다리를 좀 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은 개의치 않는 듯 매사에 구김살이 없었다. 그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그의 호탕한 웃음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는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고등학교 친구였다. 그는 울산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명종이가 군대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팬티 바람으로 눈 속에서 뒹굴며 기합 받던 일, 유격훈련 갔다가 산악구보 중에 대열에서 뒤처지는 바람에 한동안 탈영병으로 처리됐던 일, PX에서 도넛 12개를 사서 한꺼번에 먹고 점호에 늦어서 직사하게 얻어맞던 일 등을 가감 없이 해주었다.

   명종이는 내가 하는 군대 얘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밤이 깊어도 명종이의 웃음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나는 오늘 연재를 만나 해운대 백사장을 함께 걸었던 얘기도 했다. 명종이는 내 얘기를 다 듣고 나더니,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다며 내일 연재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난감했다. 연재를 소개시켜 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내일 다시 만나서 친구를 소개하는 것이 왠지 어색할 것 같았다. 나는 내일은 곤란하다며, 다음 기회에 소개시켜 주마고 했다. 그 순간 명종이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내 대답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그만 자자고 했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끊어졌고, 다음날 아침 그는 어젯밤과는 달리 쌀쌀한 태도로 나를 배웅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 뒤론 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귀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가 지체장애인이기 때문에 내가 연재를 소개시켜주지 않으려 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호탕한 웃음 뒤에 그런 콤플렉스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나는 명종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런 뜻이 전혀 없었으며 다음 휴가 때 꼭 소개시켜 주겠다고. 그러나 답장이 오지 않았다.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었다. 연재와는 그 후로도 만남이 지속되었지만 명종이와는 그것으로 영영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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