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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하나는 공장에 보내고 싶었던 친구

에세이(수필)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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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하나는 공장에 보내고 싶었던 친구

 

최용현(수필가)

 

   그 친구와 나는 일요일마다 함께 관악산을 오릅니다. 그 친구는 평범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 남들과 똑같이 살면 무슨 재미.’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한 마디로 개성이 강한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대학 4년을 함께 보낸 우리 과 친구 중에서 가장 먼저 취직을 했습니다. 4학년이던 198010월 취직시험에 처음으로 응시하여 합격, 111일부터 회사에 다녔지요. 그리고 3년이 지나 승진시험을 거쳐 대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승진한 지 두 달 만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3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백수가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이 그림딱지 놀음 같아서 싫다는 게 그만 둔 이유였습니다. 좀 더 보충 설명을 하자면 협력과 경쟁, 승진 등을 추구해야 하는 조직의 생리에 자신이 길들여져 가는 것이 싫다는 거였지요.

   그렇다고 그 친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거나, 생계대책을 세워놓고 사표를 낼만큼 치밀한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소시민이 그렇듯이 알뜰살뜰 저축하여 마련한 조그만 아파트 하나가 그의 전 재산이었지요. 그 외에는 가진 돈이 없었고.

   그렇게 시작한 백수생활, 매일 집안에 틀어 박혀서 책만 읽었대요. 평소에 읽고 싶었던 세계문학전집이나 삼국지, 열국지, 초한지 같은 중국고전, 세계사 전집이나 왕비열전, 3공화국 같은 전집류의 책을 월부로 구입해서 말이죠.

   부인이 생활전선에 나가야 했지요. 그에게는 2년 터울의 딸이 둘 있습니다. 그런 아빠를 둔 탓에 그 애들은 둘 다 유치원에도 못 갔지요. 딸의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두 번 다 엄마 대신 그 친구가 따라갔고요.

   그 친구의 재능을 아깝게 생각한 주위사람들이 몇 번 취직을 주선해 주었지만 그 친구가 거절을 했어요. 시험을 보고 당당히 들어가면 몰라도 그런 식으로는 안 들어간다는 거였지요. 그 고지식함은 정말 감탄할 만 했지요.

   그런 그가 장장 310개월간의 백수생활은 끝내고 1988년 봄에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되었어요. 물론 입사시험을 보고 당당히 합격을 해서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능력을 인정받아 과장으로 승진을 했어요. 이제 다시 탄탄대로에 들어선 거지요.

   한 동안 잘 다녔죠. 직장생활에서 그런대로 재미도 찾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3년이 넘자, 조금씩 싫증을 내기 시작하더니 또 그만두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4년을 갓 넘긴 1992년 봄에 사표를 내고 말았어요. 또 그 병(?)이 도진 거죠. 직장도 영업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사단법인이라 괜찮았다는데.

   그 동안 번 돈과 몇 푼 안 되는 퇴직금으로 비디오가게를 차렸어요. 물론 가게는 부인에게 맡겼죠. 그 친구는 매일 부인이 집에 올 때 갖고 오는 대여섯 개씩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세월을 보냈지요.

   이번에는 그리 오래 놀지 못했어요. 큰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친구도 이제 정신을 좀 차렸는지 이번에는 오라는 데는 무조건 갔어요. 잡지사, 출판사의 편집간부나 조그만 회사의 관리직 등.

   이곳저곳 다니다가 수가 틀어지면 그만두고 또 들어가고 해서 4, 5년 동안 일곱 군데의 직장을 전전했대요. 사장과 대판 싸우고 그만두었다가 얼마 후에 다시 그 회사에 들어가기도 했고, 6개월 동안 근무하고 월급을 한 푼도 못 받은 곳도 있었대요.

   그 친구는 실력도 있고 일도 잘 하는데 한번 수가 틀어지면 못 붙어 있는 게 문제였어요. 그렇게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하다보니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계획적인 생활설계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중 IMF시절이던 1998년이 되자, 큰애가 고 3, 작은애가 고 1에 올라갔어요. 그 친구는 두 딸을 불러놓고 말했답니다.

   “너희 둘을 대학에 보낼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리고 요즘 구로공단에는 일손이 모자란다(그 친구 집이 구로동입니다). 나라 경제도 어렵고 하니 너희 둘 중 공부 잘 하는 애는 대학에 보내고 나머지 하나는 공장에 보내야겠다. , 대학 중에서도 국립대인 S대와 S교대만 가능하다. 사립대는 안 된다. 그리고 학원 같은 데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마라.”

   이건 정말 그 친구의 솔직한 생각이었어요. 전에 한 친구가, 아무리 과외를 시키고 학원을 보내도 애가 공부를 못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자, ‘공부를 못하면 대학에 보낼 생각을 말고 아예 기술을 배우게 해서 취직을 시켜라.’고 평소 소신대로 충고를 했다가 욕을 먹는 것을 본 적도 있었으니까요.

   아빠의 성질을 모를 리 없는 두 딸, 공장에 안 가려고 열심히 공부했지요. 드디어 큰애가 수능시험을 봤는데 S대의 좀 처지는 과에 될 듯 말 듯한 점수였어요. 학교에서는 Y대에 특차로 넣으라고 했지만 S교대에 특차로 넣었어요. 장학생으로 합격했지요. 그 친구가 굳이 S교대로 보낸 건 졸업 후 취직생각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등록금이 싸기 때문이었어요.

   그러자 이번엔 작은딸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작은딸은 작년에 수능시험을 보았는데 390점이 넘었대요. 또 학교에서 Y대에 특차로 넣으라고 권했어요. 그 친구는 또 S교대에 넣으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개성이 강한 작은딸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서 결국 Y대 특차에 넣었어요. 작은딸은 지금 Y대 영문과에 다니고 있어요.

   결국 딸 하나를 공장에 보내려는 그 친구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요. 그런데 그 친구,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는 웬일인지 꽤 오래 다니고 있어요. 벌써 5년이 다 되어가니 말이죠. 지금 다니는 직장은 1997년 여름에 들어갔는데 괜찮은 직장이래요. 그때가 IMF 직전이었으니 운도 참 좋았지요. 그 친구 사주에 천복이 세 개나 있다더니 그게 사실인가 봐요.

   요즘 그 친구, 하기 싫은 직장생활 하느라 죽을 맛일 겁니다. 그 병(?)이 언제 또 도질까 걱정이 되어 지난 주 관악산에 오르면서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 대답이 이랬어요.

   “대학 들어간 작은딸이 졸업할 때까지는 참고 견뎌야지.”

   그 친구도 이제 철이 좀 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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