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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화장과 패션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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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화장과 패션

 

최용현(수필가)

 

   알다가도 모를 것이 여자의 마음이다. 요즘은 여름만 되면 젊은 여자들이 너도나도 하얀 바지를 입고 다니지만 몇 년 전에만 해도 하얀 바지가 그리 흔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여름 갑자기 젊은 여자들이 너도나도 하얀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쭉쭉 빠진 여자가 하얀 바지를 입으면 참 청순해 뵈고 또 섹시해 뵌다.

   그 시절, 우리 옆 사무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본다. 팬티의 작은 꽃무늬가 선명하게 비치는 얇은 흰바지를 입고 출근한 여사원이 있었다. 얼굴도 반반한 데다 몸매도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어서 조그만 회사들이 덕지덕지 입주해 있는 이 빌딩 안에서 남자들의 눈요기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루 종일 사무실 안에서, 또 복도에서 온통 뜨거운 시선을 받던 이 아가씨, 처음에는 그런 대로 당당하더니 급기야는 손으로 앞을 가렸다, 뒤를 가렸다,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안절부절 못했다. 그럴 바엔 뭣 하러 그런 야한 옷을 입고 나왔는지.

   그 여자에겐 길고도 지루했을 하루가 지나가고, 이후 한동안 그 여자가 그 흰 바지를 입은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 그런데 어인 일인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 여자가 또다시 그 얇은 흰바지를 입고 우리 사무실 문을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여자란 아무리 연구를 해도 항상 새로운 존재이다.’

   톨스토이의 말이다. 이렇듯 아리송한 존재인 여자를 피상적이나마 알기 위해서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와 한계, 그리고 여자에게 있어서 특히 중요한 부분인 화장과 패션에 대한 기원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 지구상에는 언어와 풍속, 생김새가 각양각색인 60억이 넘는 인간이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 절반은 남자이고 나머지 절반은 여자이다. 조물주는 갖가지 유형의 인간을 창조해냈지만 남녀의 구별만은 또렷하고 선명하게 해놓았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남자가 할 수 없는 일은 아기를 낳고 젖을 먹이는 일이다. 또 남자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여자가 할 수 없는 일은 서서 소변을 보는 일이다.

   이것은 남녀의 신체적인 특징에서 오는 생래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임신과 육아기간을 감안해 보면 남녀의 어느 한쪽에 가정을 지키는 숙명을 지워야 하는데, 조물주는 여자 쪽을 선택하였다. 대신 남자에겐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임무를 부여하였고.

   또, 여자는 서서 소변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임신 못지않게 여자의 운명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게 되었다. 아무데서나(?) 바지 앞단추만 열면 소변을 볼 수 있는 것과, 소변을 보기 위해 속 하의(下衣)를 벗어 내려서 앉아야만 하는 것은 우선 장소의 선택에서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여자의 경우, 소변을 보는데 직접 관계가 없는 뒷부분까지 노출시켜야 한다는 것은 사방이 가려진 곳이 아니면 곤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쪽만, 그것도 전봇대 정도만큼만 가리면 별 문제가 없는 남자와는 우선 편의성과 기동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 전통적인 손빨래 방식과 자동세탁기 정도의 차이는 되리라. 남자는 적극적이고 여자는 소극적으로 운명이 정해진 근본적인 원인을, 나는 이 편의성과 기동력의 차이에서 찾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여자가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때에 따라 변신을 거듭해 온 것은 여자의 운명이 대체로 남자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온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 잘하는 것을 평생직장 얻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하지 않는가.

   여자가 화장을 하고 옷치장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것은 여자에게 있어서 외모는 일생을 좌우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장과 패션은 여자에게 있어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여성이 화장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문명의 시작과 때를 같이 한다.

   입술연지의 기원은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발상지인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화()의 근원은 여자의 입에서 나온다고 하여 여자가 성년이 되면 위험표시인 붉은 색을 입술에 칠하도록 한 데서 비롯된 것이 입술연지라고 한다.

   또, 매니큐어의 기원은 미혼여성과 기혼여성을 구별하기 위해서 결혼한 여성은 반드시 손톱에 붉은 물감을 칠하도록 하여 경계토록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위험과 경계의 표시인 붉은 색을 입술과 손톱에 칠해야 하는 비극을, 아름다움을 가꾸는 매력의 수단으로 발전시킨 것이 화장인 셈이다.

   패션의 기원은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비롯되었다. 남자 옷은 영국의 런던, 여자 옷은 프랑스의 파리가 본고장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자유와 평등, 박애의 사상이 파급되어 옷의 계급성 타파에 이론적 바탕이 되었고, 때를 맞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같은 옷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 패션의 시원이 되었다.

   우선 여성들에게서부터 변화가 왔다. 대중들이 귀부인들이나 상류층의 옷을 쉽게 모방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자존심이 상한 귀부인들이나 상류층 여인들이 다시 새로운 모드(mode)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대중들이 같은 옷을 사 입으므로 자꾸만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패션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상류층 여인들의 자존심과 대중들의 추적간의 함수관계에다, 상업주의의 결탁이 만들어낸 시류가 패션, 즉 유행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보가 유행을 만들고 똑똑한 여자가 그것을 입는다.’는 서양 속담은 유행의 속성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 것이리라.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자에 비해 이성보다는 감성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다. 앞에서 인용한 에피소드에서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얇은 바지를 입고 왔던 그 여자가, 너무 집중된 시선이 거북스러워 입지 않았다가 다시 그 시선이 그리워서(?) 입고 나오는 걸 봐도 그러하지 않는가.

   창부(娼婦)의 심성과 모성(母性), 그리고 뜨거운 감성을 함께 지닌 존재가 여자가 아닌가 싶다. 이 지상의 인류 중에서 반이 그런 알쏭달쏭한 여자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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