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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딸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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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딸

 

최용현(수필가)

 

   아들과 딸이라는 제목의 TV 주말연속극이 있었다. 6, 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어느 쌍둥이 남매를 주인공으로 하여 두 사람의 인생역정을 대조적으로 펼쳤는데, 이 시대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생활상을 실감 있게 그려내어 인기를 끌었다.

   부모의 과잉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있으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아들, 반면에 부모로부터 형편없는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혼자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쌍둥이 딸. 타이틀 화면이나 자막에서 여주인공의 얼굴과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극의 후반부에서 고시공부를 하는 아들의 추락과 함께, 설움 받는 여주인공인 작가 지망생 딸의 반격이 만만치 않으리라.

   이 드라마가 성() 차별의 모순점 부각을 통한 남녀평등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또 이드라마를 집필하고 있는 작가가 여자인 점에서 더욱 그러한 심증을 갖게 한다.

   이 드라마의 무대와 같은 시대, 91녀를 낳아 모두 훌륭하게 키운 한 어머니가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이 어머니가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운 사실 못지않게 자녀를 많이 낳은 사실도 톡톡히 한 몫을 했었다.

   불과 3,40년 전만 해도 아들은 많이 낳을수록 좋았고 딸은 아들을 낳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아들만 많이 낳는다면야 중간에 딸이 몇 명쯤 끼이는 것은 별 상관이 없었다. 홈런만 쳐준다면 파울볼(?) 몇 개 날리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둘만 낳자는 운동이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젊은 세대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실제 생산연령인 20대층과 30대층의 지배적인 의견도 둘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다. 요즘 갓 결혼하는 젊은 세대들 가운데는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만 낳겠다는 사람이 많아 걱정이 되고 있다.

   이들 젊은 세대들이 머지않아 우리사회의 중추(中樞) 세력이 될 것이고 보면 이제 둘 이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일부 생활형편이 넉넉한 중년층 이상이나,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 중에는 둘은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 낳을 기회는 두 번밖에 없다고 보면 아들이냐 딸이냐하는 문제가 큰 이슈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옛날 같으면 딸은 실패작이었으니 아들만 둘을 낳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테지만, 요즘엔 세상이 바뀌어 아들 하나 딸 하나낳아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한 정설(定說)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아들 낳을 확률과 딸 낳을 확률은 각각 50%이다. 가령 딸을 먼저 낳았을 경우, 그 다음에는 아들 낳을 확률이 더 높아지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아들과 딸, 어느 쪽이든 확률은 여전히 50%이다.

   50%의 확률이란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사실 이런 확률은 있으나마나이다. 하긴 세상에 확률 50% 아닌 것이 있는가? 복권 일등에 당첨될 확률도 50%이다. 왜냐하면 일등에 당첨되느냐 안 되느냐 둘 중에서 하나일 테니까.

   그건 그렇고, 둘만 낳는다는 전제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양상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세간(世間)의 젊은 층에서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는 학설(?)이 있으므로 소개해 볼까 한다.

   첫째, 아들만 둘 낳는 경우 : 50

   옛날 같으면 당연히 백점일 것이나 불행히도 세상이 바뀌어 50점이 되고 말았다. 든든해서 좋겠지만 집안 분위기는 좀 삭막해질 게다. 애들 다 키우려면 가전제품이나 가구 어느 하나 제대로 남아나는 게 없고, 로봇 탱크 총 겜보이 값도 꽤나 나갈 것이다. 후일 사위는 볼 수 없을 테니 장인, 장모 소리는 평생 못 들어 볼 것이고, 늙어서 딸네 집에도 가볼 수가 없다. 또한 이 집 안주인, 며느리 볼 때까지는 부엌신세 면키 어렵다.

   둘째, 딸만 둘 낳는 경우 : 0

   숫제 아이를 못 낳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이 0점이고, 둘씩이나 낳은 성의를 봐서 30점은 주자는 동정론도 있으나 소수설이다. 키울 때는 아기자기 하겠지만 키워서 늑대(?)들에게 다 줄 거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헛농사 짓는 것 같다. 앞으로는 딸이 비행기를 태워주는 세상이 온다고 하니 그 말에 기대를 걸어봐야 하리라.

  셋째, 아들 하나 딸 하나인 경우 : 80점 혹은 100

가장 이상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아들과 딸의 배열순서에 따라 오빠형과 누나형이 있는데 각각 점수가 다르다. 아들을 먼저 낳은 오빠형은 80점이고 딸을 먼저 낳은 누나형은 100점이다.

   오빠형보다 누나형이 우월하다는 것을 이론정연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다만 누나형을 지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과, 첫딸이 살림밑천이라는 관습적 견해, 그리고 누나가 남동생을 보살펴 주는 형()이 여러 가지로 좋을 것이라는 점 등으로 그렇게 추론(推論)할 뿐이다.

   이상에서 아들과 딸 낳을 확률과 그 배열순서에 따라 생기는 여러 전형을 점수로 희화(戱化)하여 보았다. 여기서 이 점수들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가령, 아들을 먼저 낳은 사람은 0점을 받을 걱정이 없으므로 우선 든든하리라.

   그러나 이 경우엔 100점 받기는 영영 불가능하다. 딸을 먼저 낳은 사람만이, 다시 산실(産室) 앞에서 0점과 100점이라는 극과 극의 기로에서 애태워 본 후에라야 100점의 짜릿한 스릴을 맛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리라. 탄탄한 중도(中道)를 걷는 사람 앞에는 50점이나 80점 정도의 무난한 고지(高地)만 놓여 있기 마련이다. 고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약과 좌절의 갈림길에서 분투해 본 사람만이 정상의 희열(ecstasy)을 맛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수렁으로 빠지는 길도 그만큼 더 가까울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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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즘은 딸 둘이 금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는 은메달, 아들 둘은 목메달(?)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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