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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처가의 유형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2.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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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처가의 유형

 

최용현(수필가)

 

   옛날, 어떤 장수(將帥)가 황색 깃발과 청색 깃발을 양쪽 언덕에 세워놓고 휘하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자기 아내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황색깃발 밑에 서고,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청색깃발 밑에 서라.”

   그랬더니 모두 황색 깃발 밑에 우르르 몰려가서 서있는데, 단 한 명의 병사가 청색깃발 밑에 가서 서더란다. 그 장수가 청색깃발 밑에 서있는 병사에게 가서 정말로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병사가 이렇게 대답하더란다.

   “군대에 들어올 때 아내가 신신당부하기를, ‘남자들은 셋만 모이면 여색(女色)을 화제로 삼으니 남자 여럿이 모인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모인 황색깃발 밑으로 가지 않고.”

   결국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얘기다.

   이번엔 현대판 공처가 얘기다. 공처가로 유명한 한 남자가 어느 날 친구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어제 마누라와 대판 싸웠는데, 결국 마누라를 내 앞에 무릎 꿇게 했어!”

   한 친구가 못 믿겠다는 듯 반문했다.

   “, 그거 대단한 뉴스이군. 그런데 자네 부인이 무릎을 꿇고서 뭐라고 하던가?”

   “, 뭐라고 했느냐 하면 말이지, ‘어서 침대 밑에서 나오지 못해!’ 그랬지.”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러나 예전의 얘기와 요즘에 나온 얘기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예전의 얘기가 은유적이고 풍자적인데 비해 요즘의 얘기는 상당히 직설적이고 폭력적이다.

   공처가(恐妻家). 아내를 두려워하는 사람. 어미에 ()’자가 붙었으니 그 분야에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직장에서 허세를 부리고 괜히 부하들을 위압하려는 사람들 중에는 가정에서 아내에게 당하는 보상기전(補償機轉)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퇴근시간이 되어도 집에 들어갈 생각은 않고 애꿎은 부하들만 퇴근 못하게 들들 볶는 사람, 또 월급날 아내의 노기 어린 모습이 떠올라 굳이 꾸어서라도 월급봉투의 차액을 채워서 갖고 가는 사람, 아니면 부족한 액수만큼 수령액을 줄인 별도의 월급봉투를 만들어 갖고 가는 사람 등등. 이쯤 되면 공처가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공처가 얘기를 하면서 철인(哲人) 소크라테스와 악처로 유명한 그 아내 크산티페가 남긴 일화를 짚지 않고는 글 쓰는 사람의 예의가 아닐 것이다.

   하루는, 종일 바가지를 긁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화가 난 크산티페가 석상처럼 앉아있는 소크라테스의 머리 위에다 물 한 양동이를 들어부었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미동도 않은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천둥이 치고 나면 소나기가 오는 법!”

   철학자와 악처. 어쩌면 썩 잘 어울리는 배역이 아닌가. 생각하건대, 소크라테스의 아내도 처음부터 악처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도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양처가 되었을 지도.

   공처가와 유사하게 쓰이는 말에 애처가(愛妻家)가 있다.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주관과 객관이 다를 수 있는 데다 하나는 좀 악의적인 표현이고 하나는 좀 호의적인 표현일 뿐. 애처가와 공처가의 공통점은 남편이 자신의 양말과 아내의 양말을 빨래한다는 사실이고, 차이점은 애처가는 자신의 양말을 먼저 빨고 공처가는 아내의 양말을 먼저 빤다고 하던가.

   선인들이 공처가의 유형을 그 증세(?)에 따라 다음 7가지 유형으로 나눈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간단히 소개해 보면,

 

   1) 애처가(愛妻家) :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

   2) 호처가(好妻家) : 아내를 지극히 좋아하는 사람

   3) 공처가(恐妻家) : 아내에게 꼼짝 못하고 눌려 지내는 사람

   4) 종처가(從妻家) :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

   5) 진처가(震妻家) : 아내를 보면 벌벌 떠는 사람

   6) 경처가(驚妻家) : 아내를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사람

   7) 빙처가(氷妻家) : 아내를 보면 얼어버리는 사람(死妻家라고도 함)

 

  1) 2) 3) 4)는 흔히 볼 수 있는 남편의 여러 유형이다. 이 정도까지는 괜찮으리라. 보통의 4분법은 공처가의 유형으로 이 네 가지를 들고 있는데, 5) 6) 7)의 세 가지 유형은 증세가 좀 더 심한 경우이다. 이 경우는 약간 과장이 섞인 표현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 5) 6) 7) 정도의 증상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속히 병원에 가봐야 하리라.

   「배짱으로 삽시다라는 책을 저술하여 한 때 많은 공감과 갈채를 받았던 한 정신과 의사는 공처가를 열등감과 연결된 소신결핍증 환자라고 진단을 내리고 있었는데, 자신감을 찾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어렵게 설명할 것도 없다. 결혼생활은 현실이다. 그러므로 부부관계에도 주도권의 문제가 대두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처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편들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귀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술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여기서 전술적인 선택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선 대부분의 남편들이 직장에서 정력을 소진한 나머지 집에 와서는 아내와 다툴 여력이 없고, 또 부부싸움의 소재들은 애써 다툴 만한 가치가 없는 사소한 것들이므로 가족의 안녕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일부러 져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편이 집안의 하숙생으로 전락해 버린 현대사회에서 적어도 가사(家事)에 관한 한 어떤 남편도 종처가(從妻家) 신세를 면키는 어렵다. 그러니 아예 지는 척 하면서 집안일을 모두 아내에게 맡겨버리는 고등 처세술을 발휘하는 거다.

   생각해 보라. 집안일을 모두 아내에게 맡겨버리고 마음 편히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것은 얼마나 소신 있는 겸양이며 실용적인 노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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