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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와 가시(針)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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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와 가시(針)

 

최용현(수필가)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서로의 몸을 가까이 꼭 밀착시켜 보았다. 약간 따뜻해졌다. 그러나 상대방의 몸에 돋아난 가시() 때문에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서로 떨어졌다. 하지만 추워서 다시 서로 밀착했고, 또다시 떨어져야만 했고.

   고슴도치는 몸에 돋아난 가시 때문에, 서로 밀착해 있을 수도, 떨어져 있을 수도 없는 숙명적인 딜레마를 지니고 살아야 한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외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도록 하기 위한 조물주의 특별한 배려였을 게다. 스컹크가 고약한 냄새를 가짐으로써, 토끼가 큰 귀와 날쌘 다리를 가짐으로써 연약한 몸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처럼.

   ‘고슴도치에게서 가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점을 우리 인간의 삶과 연관 지어 몇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외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주어진 가시가 고슴도치 사이에서도 똑같은 가시로서 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본래의 목적이나 의도와는 관계없이 가시로서의 독자적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일단 외부로 표출된 의사는 본래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손을 떠나 출간된 작품이 작가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나, 법률 조문이 제정 당시의 취지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대적 변천과 사회상에 따라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고 해석, 적용되는 것이 그런 이치이다.

   중세 유럽의 일그러진 기사도(騎士道)를 고발하여 봉건사회의 모순을 일깨우고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쓴 세르반테스(M. Cervantes)의 소설 돈키호테가 본래의 집필 의도보다는 자기의 이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독특한 인간형의 창조쪽으로 문학적 가치를 더 인정받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가시가 스스로에게도 위해(危害)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죄인의 목을 자르는 도구인 단두대(斷頭臺)를 고안해낸 길로틴(Guillotine)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만든 도구의 손님이 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은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만든 밧줄이 자기 자신을 묶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원리를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There is no rule but has exceptions.).’는 서로 관련이 없는 서양 격언에 대입시키면서 묘한 지적(知的) 희열을 느낀 적이 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는 뜻이다. 모든 법칙에 예외가 있다면 당연히 이 법칙 자체에도 예외가 있어야 한다. 이 법칙 자체의 예외란 모든 법칙에 예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예외가 없는 법칙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다시 정리해 보면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은 예외 없는 법칙도 있다.’는 완전히 상반되는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유희가 아니냐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세 번째로, 고슴도치에게 가시가 없다고 가정해보는 경우이다. 모두(冒頭)의 이야기에서 만일 고슴도치에게 가시가 없었다면 이들은 우선 아무 어려움 없이 서로의 몸을 밀착시킬 수 있었을 것이고, 또 서로 떨어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밀착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겠느냐 하는 점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우선 애정의 존재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설사 애정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갑작스런 급속도의 밀착이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에서 회의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모닥불은 쉽게 타오르고 쉽게 꺼진다. 모닥불처럼 갑자기 뜨거워진 사랑은 쉽게 식고 쉽게 꺼져버린다. 그래서 그런 사랑은 뒷모습이 아름답지 못하다. 갑자기 뜨거워진 사랑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가시의 부재(不在)에서 찾는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가슴속에 가시 하나쯤은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밀착되었을 때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의 근거를 가시의 부재에서 찾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이 처음 이성에게 사랑을 느낄 때는 거의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상대방을 자신의 이상형으로 형상화시켜놓고, 상대방의 실체가 아닌 형상화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다.

   첫사랑의 대부분이 짝사랑인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형상화된 상상속의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때는 자신의 열정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 즉 가시가 없기 때문에 단시일 내에 정점을 향해 치닫기 마련이다. 그것이 상상 속의 사랑이건 현실에서의 사랑이건 마찬가지다.

   정점 뒤엔 내리막이 있을 뿐이다. 정상(頂上)에 넓은 평원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열정 속에 들어 있는 동안에는 상대방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다. 이때의 상대방은 하늘나라의 천사에 다름 아니다. 이때는 그 천사가 휴지 들고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고도 충격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연륜이 쌓이면 실체를 파악하는 안목과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세상의 때가 묻는다는 뜻이고, 제 마음속에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가지게 된다는 뜻도 된다. 상대방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게 되면 자신의 이상과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되고 자연히 열정이 식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첫사랑의 기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이상으로 형상화했던 상대방의 모습이, 처음 사랑에 눈뜬 자기 자신의 순수했던 모습과 함께 아름다운 영상으로 뇌리에 깊이 각인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시 없는 고슴도치란 있을 수 없다. 장미 또한 가시가 있음으로 해서 아름다움의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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