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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hair)에 대하여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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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hair)에 대하여

 

최용현(수필가)

 

   며칠 전에 막내 처제가 네 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탕 안에서 우연히 잘 아는 여승(女僧)을 만났다고 한다. 처제가 딸애보고 인사를 하라고 했더니,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더란다.

   그 때문에 탕 안에서는 때 아닌 폭소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아마도 이 아이는 머리털의 길이로 남녀를 구별해왔던 모양이다. 목욕탕 안에서라면 남녀의 식별이 또렷(?)할 텐데도 말이다.

   비단 어린이에게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머리(hair)가 단순한 머리카락의 집합체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해한 면을 더러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머리털에 관한 관념은 그러한 일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머리에 관한 관념을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짧은 머리가 단정한 용모를 대표한다는 점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머리를 짧게 깎으면 단정해 보인다. 그 때문에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짧은 머리를 요구한다. 군대나 옛날 교복 입던 시절의 중고등학교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종교적인 고행의 상징으로 삭발을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외모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생각된다. 머리털을 모든 번뇌의 씨앗이요, 속세의 찌꺼기로 보는 것이다. 불가에 귀의할 때 삭발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옛날부터 몸과 머리털(身體髮膚)’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는 관념이 강하게 이어져 내려왔다. 우리의 선조들이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고 고스란히 길렀다는 사실만 생각해 보더라도 머리는 함부로 자르는 것이 아니었다.

   갑오경장 이듬해인 1895, 일제의 사주를 받은 정부가 단발령을 내렸을 때 내 목을 잘랐으면 잘랐지 머리는 못 자른다.’고 결사적으로 버티었던 선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아도 머리에 대한 비장하기까지 한 애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니 불가사의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자르는 것과 목숨을 버리는 것이 어찌 나란히 필적할 수 있는지.

   필자가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중년부인이던 숙모가 읍내에서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해왔다가 집에서 쫓겨났다. ‘자른 머리를 다시 잇고 볶은(?) 것을 다시 펴기 전에는 집에 못 들어온다.’고 숙부가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때 숙모는 사나흘 동안이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문 밖에서 지내다가, 결국 읍내에 가서 파마머리를 다시 편 뒤에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서는 그와 비슷한 일이 더러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터져 나올 일이지만 불과 40년쯤 전의 이야기이다. 아마도 파마머리가 우리나라에 처음 상륙하던 때가 아닌가 싶다.

   무대를 오늘날로 옮겨 봐도 머리에 관한 강한 애착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속세를 떠날 때 삭발하는 것은 특수한 예에 속한다 하더라도, 머리를 자르는 것은 미용목적이 아닌 한, 심경의 변화를 대변한다는 견해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남자의 경우, 주로 군대에 입대할 때 타율적으로 머리를 깎이는 쓰라린 경험을 맞게 되는데, 머리를 깎이면 우선 기()가 꺾인다. 처음 입대할 때는 사복을 입고 더벅머리인 채로 군문에 들어서게 된다. 필자가 입대할 당시에는 자진해서 머리를 깎고 들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들은 며칠 동안 일정한 수속을 밟아 대한민국 국군의 군번을 받게 되는데, 군번을 받기전의 이 며칠 동안은 엄밀히 말해서 아직 군인 신분이 아니다. 이들을 특별히 장정(壯丁)이라 불렀다.

   필자가 서울근교의 예비사단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동료 전우 한 사람과 함께 신병 막사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어저께 입대한 듯한 장정들이 사복을 입은 채 군데군데 몇 명씩 막사 앞에 서 있었다. 그 때 같이 가던 동료전우가 한 곳을 보고 손짓을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어이, 신병. 이리 와봐!”

   어, 그런데 너댓 명 중에서 뛰어오는 신병은 단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그 뛰어온 신병은 머리가 빡빡 깎여져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더벅머리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군기가 쏙 빠진 이 신병(엄밀히 말하면 장정)들이 그때 우리에게 혼이 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아직 머리를 깎이지 않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 더벅머리는 왠지 군인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군인 신분이라는 것을 자타에게 인정받는 시점이 자신의 머리를 깎이는 순간이며, 머리를 깎이면 그 순간부터 기가 꺾인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다.

   이밖에도 자신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으로 삭발하는 경우도 있다. 정치인들이나 영화배우들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삭발하는 장면이 TV에 방영된 적도 있었고, 또 프로구단 감독이나 선수가 자기 팀의 연패(連敗) 성적 때문에 삭발을 하고 경기장에 나온 경우도 보곤 한다.

   또 고시공부를 하러 산사(山寺)에 들어갈 때 속세와의 인연을 끊겠다는 각오로 머리를 빡빡 깎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남자가 스스로 삭발하는 것은 자신의 단호한 의지표현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여자의 경우에는 미용 목적으로 머리를 조금씩 자르는 경우 외에는 특별히 머리를 잘라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어느 날 갑자기 긴 머리를 잘라버리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무언가 심적인 변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가 보석처럼 소중하고 아름다운 어린 소녀들이 자신의 머리에 형형색색으로 요란하게 물감을 입히고, 또 곱게 기르던 생머리에 부젓가락을 대게 하는 것은, 따분한 일상에서의 일탈의 시도라기보다는 하루속히 소녀시절과 결별을 고하고 한 여인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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