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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복권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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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복권

 

최용현(수필가)

 

                         여기는 뚝섬

                         지난 여름의 상황들이

                         벗어놓은 헌옷같이

                         포플러 가지에 걸려있다.

                         조랑말 꽁무니에 매달려

                         인생은 낙일(落日)에 기울어지고

                         ‘진달래’(: 담배이름)와 고구마로

                         한 끼를 때우고

                         복권을 사 본다.

                                       - 이설주의 경마장에서

 

   매 주마다 억대 부자 한 사람씩 탄생한다. 주택복권 1등 당첨금 5억 원. 매월 200만원을 받는 월급쟁이가 한 푼도 쓰지 않고 약 20년 동안, 그 중 100만원을 쓰고 100만원씩을 적립한다면 약 40년 동안 벌어야 하는 액수를 한 순간에 얻는 것이다. 가히 일확천금(一攫千金)이라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금액이라면 능히 한 소시민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으리라.

   복권(福券), 복을 주는 티켓. 그러나 당첨되어도 복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돈을 준다. ‘= 이라는 등식(等式)이 재미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다운 발상이다. 그 돈이 장차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건만.

   아무튼 1,000원이 일 주일 만에 5억 원이 된다는 것은 50만 배의 팽창이니 실로 엄청난 증식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그 확률이다. 한 조에 90만 장씩, 모두 6개조이니 총 540만 장이다. 그러므로 1등에 당첨될 확률은 자연 540만 분의 1이다.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면 이 확률이 결코 기대를 걸 만한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누구나 그 행운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에 묘미가 있는 것이다.

   복권이라는 말속에는 행운, , 횡재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복권을 영어로는 로터리 티켓(lottery ticket)이라고 하는데, lottery‘lot’운명’, ‘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운명은 필연(必然)과 통한다. 복권 당첨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아직 그 인과관계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있다. 용꿈이니 돼지꿈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그 인과관계의 변수를 찾아내기 위한 구실에 다름 아니다. 이 변수가 규명이 되면 우연이나 운명, 행운, 확률과 같은 어휘들은 저절로 사어(死語)가 될 것이다.

   복권제도에는 비난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비판론자들은 상상 속의 부()와 현실과의 갭을 요행에 의하여 좁혀보려는 욕구가 만연하게 된다고 비판한다. 이것이 한탕주의를 부채질하여 경제원칙을 파괴하고, 나아가 사행심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색을 하고 고개를 가로 저을 것까지는 없으리라. 당일에 결과가 나오는 경마장의 마권(馬券)이나, 문지르면 금방 결과가 나오는 즉석복권이라면 모르되, 복권을 사는 이유가 꼭 당첨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그저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복권 한 장을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고 만원버스 안에서 펴는 공상의 나래. 뭐 나쁠 게 없지 않은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복권은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삶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동시에 바보로 만드는 것이요, 진통제이자 지적(知的) 자극제이다. 겨우 읽고 쓸 줄 아는 노동자들도 복권에 관한 한 아무리 복잡한 계산도 할 수 있고, 또 자기 기억이 맞다고 우겨댈 수도 있다.’

   그렇다. 복권은 일주일의 효력을 가진 진통제이자 지적(知的) 자극제이다. 그러나 한꺼번에 수십 장을 사는 투기성 구입은 문제가 있다 하겠다. 또 점잖게 차려입은 신사들이 복권판매소 좌우에서 탐욕어린 눈동자를 굴리며 동전으로 즉석 복권을 쓱쓱 문지르는 꼴은 볼썽도 사납고 자라나는 아이들 교육에도 좋지 않다.

   우리가 복권을 사는 것은 한 주일의 꿈을 사는 것이요, 일 주일짜리 희망의 티켓을 사는 것이다. 구약성서와 함께 창세(創世)를 다룬 불후의 고전인 그리스 신화에 이런 얘기가 있다.

   신계(神界)의 영웅 프로메테우스가 천상(天上)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자, 최고의 신()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혹독한 형벌을 내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제우스는 다시 대장장이에게 명하여 흙으로 여자의 형상을 빚게 했다. 아름다운 여인이 빚어졌다. 바느질의 여신 아테네는 화려한 옷을 선물로 주었고,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간드러진 교태와 애가 타는 그리움을 선물로 주었다. 또 산업의 신 헤르메스는 염치를 모르는 교활한 심성을 선물로 주었다.

   드디어 인류 최초의 여자 판도라(Pandora)’가 탄생되었다. 판도라란 모든 선물을 합친 여자란 뜻이다. 제우스는 인간 세상의 모든 불행과 죄악을 싸서 넣어둔 상자를 판도라에게 주면서 인간 세상에 전하게 했다. 결코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의와 함께.

   그러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는 어느 날 기어코 그 상자의 뚜껑을 열고 말았다. 그 속에 들어있던 질병, 재난, 복수, 질투 등 인간사회의 각종 재앙과 해악들이 순식간에 밖으로 나와 흩어졌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급히 뚜껑을 닫았으나 나올 것은 이미 다 나오고 난 후였다. 단 하나 상자 밑바닥에 깔려있던 희망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간 세상에 온갖 질병과 재앙, 해악이 날뛰어도 희망만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한다.

   판도라의 상자, 인류의 업보, 그러고 보면 금단(禁斷)의 열매를 따먹은 것도 이브이고, 원죄의 불씨는 모든 여자에게서 비롯된 것 같다. 신은 여자를 창조할 때 올가미를 하나씩 준비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희망. 얼마나 가슴 뿌듯한 말인가. 가난한 샐러리맨도,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사는 노점의 필부(匹夫), 또 내일 모레 저 세상으로 갈 팔순의 노옹(老翁)도 나름대로의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럭저럭 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복권의 존재 가치는 영원히 지속 될 것이다. 단돈 1,000원으로 일주일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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