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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노래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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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노래

 

최용현(수필가)

 

   솜뭉치처럼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메마른 대지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태양, 온 산을 뒤덮은 초록의 물결. 개울물에 종이배라도 띄워보고 싶은 찬란한 봄이다. 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4월이 되면 학창시절에 즐겨 부르던 노래, 박목월의 시()에 김순애가 곡을 붙인 4월의 노래가 떠오른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

 

   봄을 가장 먼저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은 시인이 아닌가 싶다. 시인 치고 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웬만한 시집만 들춰봐도 봄을 노래한 시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봄 중에는 4월을 노래한 시가 유난히 많다. 아마도 3월의 봄은 너무 감질나서 가슴에 잘 와 닿지가 않고, 5월의 봄은 너무 무르익어서 더러 짜증을 내게 하는데 비해 4월의 봄은 감질나지도 무르익지도 않아서 시심(詩心)을 잘 자극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류시인 노천명에게도 4월의 노래라는 유명한 시가 있지만, ‘4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엘리어트(T.S.Eliot)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이리라.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이게 하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대지가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봄, 나날이 변모해 가는 봄의 꿈틀거림이 시인의 눈에는 잔인하게, 또 추억과 욕망을 뒤섞이게 하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안개의 나라 영국의 봄은 하루 동안에 사계(四季)가 모두 나타나서 어지럽다고 하지 않는가. 변덕이 심하여 사람들을 골려대는 봄은 시인에게도 잔인한 계절로 각인된 모양이다.

   모든 것이 소생하는 봄, 그것은 때로 고통의 반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 봄은 한 시대를 부대끼다 사라진 것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고, 그리고 또다시 죽게 만드는가. 어찌하여, 무슨 심술로, 조물주는 그렇게 생로병사를 거듭거듭 반복케 하는가.

   봄이라는 말의 어원이 보다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봄은 새롭게 볼 것이 많은, 보는 계절이라는 의미이리라. 이 설에 따른다면 우리말의 봄은 다소 정적(靜的)이고 여성적인 어감을 갖는다. 봄바람 봄비 봄나들이 봄나물 봄처녀. 봄이 붙는 말에는 그윽한 향내와 함께 은근한 설렘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서양의 봄, Spring솟아오르다’ ‘도약하다는 뜻으로 활력 도약 탄력 생기 생동감 등 동적(動的)이고 남성적인 어감을 갖는다. ()과 서(西)의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얼었던 대지가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봄, 봄은 만물이 새롭게 생동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있던 땅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움츠렸던 나뭇가지에도 망울이 맺힌다. 언덕배기에 거추장스럽게 걸려있던 나무넝쿨에서도 어김없이 노란 개나리가 피어나고, 아파트 베란다의 버려 둔 화분에서도 거짓말처럼 싹이 돋는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저 아무렇지도 않은 땅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빛깔의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저 땅속에는 얼마나 많은 형형색색의 물감이 숨어있단 말인가.

   봄에는 누구나 시인이 되는가 보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이름 없는 산골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진달래꽃 무리에서, 교외선 철길가의 노란 개나리에서, 열차 안 차창을 통해서 보이는 시골 아낙의 나물바구니에서 진한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또 양지쪽 담 벽에 서서 따스한 양광(陽光)을 받으며 신기루처럼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는 어린 시절의 꿈,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그 꿈을 더듬어 공상의 날개를 펼쳐보는 것도 봄이 가져다주는 감회요 낭만이 아니겠는가.

   지나간 겨울이 아무리 혹독한 시련의 나날이었다 하더라도 봄의 따뜻한 입김은 그때의 아픈 상흔(傷痕)들을 아물게 하고 다시 희망과 갱생의 내일을 기대하게 해준다. 젊음을 되찾는 것을 회춘(回春)이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봄이 가져다주는 이런 감회는 두꺼운 옷을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는 정도로 봄을 받아들이는, 콘크리트 숲에서 사는 도시민들에게는 너무 낯 설은 감상이요 사치스런 낭만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봄의 축복이 어찌 시인들만의 것이며 산골만의 것이랴. 도시의 주택가에서 이웃집 담 너머로 싱그러운 라일락 향내와 함께 하얀 목련꽃 봉오리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며칠 전, 새로 이사한 친구 집에 가족동반 집들이를 갔다가 밤늦게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함께 집 앞 골목길을 걷던 작은 딸아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아빠, 저기 달 좀 봐!”

   아, 외등이 켜져 있는 이층집 지붕위로 저만치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달이었다. 그리고 그 이층집 담 너머에는 달빛을 받은 하얀 목련꽃 봉오리가 이제 막 터질 듯이 고혹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달빛에 물든 목련꽃을 바라보다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찌 아이의 눈엔 달이 보이는데 이 밤길을 수없이 걸었던 내 눈에는 달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그때 문득 하루에 한 번쯤은 하늘을 바라보자.’,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 수필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굳게 다짐을 했다.

   그래, 아무리 바쁘고 고달픈 나날일 지라도 하루에 한 번쯤은 꼭 하늘을 바라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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