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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도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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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도

 

최용현(수필가)

 

   역사는 강자에 의하여 주도되고, 강자의 관점에서 써진다. 약자는 아무리 억울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역사는 언제나 강자 편에 서있고 약자에게는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14921012, 에스파냐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을 받은 이탈리아 항해사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함으로써 유럽인들의 개척정신과 자주적 기상은 한 분수령을 이루게 되었다.

   콜럼버스는 배를 타고 계속 서쪽으로 가면 동쪽의 끝인 인도에 다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육지는 인도도 아니고 아메리카 대륙도 아닌 쿠바 근해에 위치한 바하마 제도의 한 조그만 섬 산살바도르였다. 그는 이곳을 인도라고 생각했고 죽을 때까지도 그렇게 믿었다.

   어쨌거나 해도(海圖)에도 없는 먼 바다는 죽음의 바다요, 악마의 바다라고 생각하던 때임을 감안하면, 그의 업적은 고난에 찬 모험 끝에 얻은 빛나는 결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길이 후세에 기록될 이 쾌거를 깎아 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인류 최초의 발견이라고 공인하는 데는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발견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알려지지 않은 사물을 맨 먼저 찾아냄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1492년 이전에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 원주민(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럽인들로서는 분명 맨 먼저 찾아낸 것이었으나 이것을 발견으로 인정한다면 원주민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되고 만다. 당시의 원주민들이 세계사의 표면에 조금이라도 드러나 있었더라면 이 장거(壯擧)는 그 의미가 크게 무색해 졌으리라.

   이를 분하게 생각한 미국의 어느 인디언 대학생이 인디언으로서는 최초로 영국에 유학을 갔을 때, 런던 공항에 내려서면서 내가 영국을 발견했노라고 했다는데, 이 쾌거(?)는 당시의 신문 가십란을 장식했을 뿐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에 첫 깃발을 꽂으면서 이곳은 에스파냐의 새 영토임을 선언한다.’고 제일성(第一聲)을 발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강자의 침탈(侵奪)에 의한 굴욕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강자에 의한 전횡이랄까, 이런 류의 예는 우리 가까이에도 있다.

   십여 년 전, 백두산 천지(天池)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얘기가 중국발 기사로 몇 번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 괴물이라니. 그리고 천지에 괴물이 나타났다면 북한에서 먼저 떠들 텐데 어찌 중국발 기사로 보도되는가?”

   식자층 일부에서 괴물얘기는 허구이고 천지를 차지하려는, 즉 천지가 중국 땅이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널리 인식시키려는 지능적인 술수라고 지적하곤 했었다. 결국 천지의 반이 중국 국경선 안으로 들어가 버리지 않았는가. 우리 정부가 그걸 인정하건 안 하건.

   이와 비슷한 예가 또 한 가지 있다. 울릉도 남동쪽에 위치한 두 개의 화산섬 독도. 울릉도에 속해 있는 부속 섬으로서 풍파가 거세고 섬 전체가 거의 암석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동쪽 국경선을 이루고 있는 국방상의 요지요, 해양자원의 보고(寶庫)로서 어로활동에도 아주 요긴한 곳이다.

   일본 정부에서 심심찮게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간 일본 정부의 일련의 발언들은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외교적 제스처일 가능성이 높다. 후일 어느 때라도 기회가 오면 다시 문제제기를 하고, 그때 근거로 삼으려는 속셈이 깔려있다. 이것은 일본인들에게 아직도 강자근성 내지는 침략자 근성이 남아있다는 증거로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근거는 이러하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거의 집어삼킨 것이나 다름없었던 러일전쟁(1904) 직후, 일본을 한 고을의 고시(告示)로 독도를 임자 없는 섬이라며 죽도(竹島)로 명명(命名)하여 자기네 영토에 편입시켰다.

   1953, 우리 정부에서 독도를 우리영토에 포함시킨 평화선을 공포하자, 일본은 동년 4월부터 시작된 제2차 한일회담 때부터 상기 고시를 근거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 후 틈만 나면 관성처럼 어거지를 쓰고 있다. 요즘은 좀 잠잠하지만 그렇다고 독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제소를 해 놓았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동안 금지곡으로 묶였다가 해금(解禁)이 되었다. 그 노래의 가사를 적어 본다.

 

                                (1)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2)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일번지 동경 백삼십이 북위 삼십칠

                                     평균기온 십이도 강수량은 천삼백 독도는 우리 땅

                                (3)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해녀 대합실

                                     십칠만 평방미터 우물하나 분화구 독도는 우리 땅

                                (4) 노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 땅

                            (후렴) 지증왕 십삼 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페이지 셋째줄

                                     하와이는 미국 땅 대마도는 일본 땅 독도는 우리 땅

 

   보통 대중가요가 2절로 끝나는데 비해 4절까지 가사를 지은 것이나, 그 가사에 동원한 많은 자료들을 감안해 볼 때 작사자의 의기가 돋보이는 노래이다.

   국제법상 자연 섬이 한나라의 영토로 인정되려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무와 물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암초로 규정되어 영토권 주장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푸른독도가꾸기모임이라는 한 민간단체에서 독도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민간인 한 사람이 독도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영토 하나 변변히 지키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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