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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열이와 과일장수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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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열이와 과일장수

 

최용현(수필가)

 

   스위스의 한 중년 남자가 몇 년 동안 자기 자신의 일과를 분석, 기록하여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식사시간 등으로 세분하여 일생의 길이로 환산해 보았다.

   그 결과, 일하는 시간이 21, 잠자는 시간이 26, 식사하는 시간이 6, 사람을 기다리거나 만나는 시간이 5년 등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일생 동안에 우울하거나 짜증이 나있는 시간은 6년이나 되는데 비해 웃는 시간은 겨우 46일이었다고 한다.

   이 계산은 너무 주관적이고 각 항목의 구분이 어딘지 모르게 허술해 보여서 개연성(蓋然性)과 사실성(事實性)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계산을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웃고 지내는 시간이 너무 적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그나마 이러한 통계를 낸 사람이 서양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통계를 내었을 경우, 웃는 시간은 더욱 적을 게 뻔하다. 그래서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하여 밥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요즘엔 코미디언이나 개그맨들이 밥 먹고 살 정도가 아니라 대중의 우상으로까지 추앙 받는 세상이 되었다.

   가끔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본 서양 사람들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둘만 모여도 떠들고 웃어댔다. 남의 나라에서니까 주눅이 들어 웃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텐 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서양에 가면 그렇게 스스럼없이 떠들고 웃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별로 자신이 없다. ()의 동서(東西)에 이렇게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어느 유명한 코미디언이 TV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웃으려고 하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코미디를 보면서 별로 우습지 않은데도 스스럼없이 웃는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 너 한번 웃겨봐라. 잘 웃기나 못 웃기나 보자.’하고 버티고 있기 때문에 코미디 하기가 정말 힘들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사람은 웃을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수긍이 가는 얘기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미국에 가서 대성한 코미디언 자니윤 씨를 정말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외국말로 사람을 웃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인 데다, 잘 웃지 않는 나라에서 성장한 것을 감안한다면.

   오래 전에 TV에서 그가 더듬거리면서(?) 하던 개그 한 토막을 기억하고 있다.

   “여러분 노름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노름을 하면 결국 패가망신합니다. 내 친구 하나가 노름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 친구는 지금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이 의외의 얘기에 다소 소란스럽던 관중들이 물을 끼얹은 듯 일시에 조용해졌다. 그는 웃지 않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 친구는 원래 억만장자였습니다.”

   비로소 관중들의 폭소가 터졌다. 주위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런 뼈있는 재담(才談)을 멋있게 연출해 내는 걸 보면서, 나는 그가 정말 실력 있는 코미디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나는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우리나라 명사(名士)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웃는 모습이 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서양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볼 때는 비교가 되어서인지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웃지 않는 것과 또 대중이나 카메라 앞에서 웃는 모습이 어색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잘 드러나지 않도록 억제하는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잘 웃으면 경박하다는 핀잔을 받기 십상이고 잘 웃지 않으면 속이 깊다느니 어른스럽다느니 하고 칭찬을 듣게 되니 말이다.

   며칠 전 옆집에 사는 여섯 살 난 사내아이가 우리 집에 놀러왔을 때 주열아, 넌 커서 뭐가 될래?”하고 아내가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애는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과일장수요.”

   아내가 웃으면서 ?”하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한 번 씩- 웃으며 , 싱싱한 수박이 왔습니다. 토마토가 왔습니다. 무지무지하게 싸게 파는 수박이 왔습니다.’하고 소리를 지르는 게 좋아서란다. 차에다 과일이나 채소를 싣고 다니면서 확성기로 떠들어대는 과일장수가 그렇게 좋아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내가 그 이야기를 그 애 엄마에게 해주었다. 그러자 그 애 엄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다짜고짜 주열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윽박지르더란다. 싹수가 노랗다는 둥, 이사를 가야겠다는 둥 정색까지 하면서.

   오래 전에 나온 프랑스 영화 남과 여를 보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어린 아들 하나를 둔 홀아비와 딸 하나를 둔 과부와의 러브스토리가 프랑스 영화 특유의 아름다운 영상,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데,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식당에서 그 홀아비가 아들에게 묻는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소방관

   그 꼬마가 대뜸 대답한다.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제법 구체적인 복안(?)이 나온다.

   “대원은 총 36, 나까지 37, 장비는 고가 사다리가 두 대, 그리고.”

   그 꼬마의 아비가 빙그레 웃으며 열심히, 그리고 끝까지 듣고 있는 것도 우리네 엄마와는 달랐다.

   아이들이 아이들다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양 사람에 비해 웃는 시간이 적은 것이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미숙한 것은, 결국 이런 어린 시절에서부터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해답은 자명하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과일 장수나 소방관이 되겠다고 해도 끝까지 들어주자 웃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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