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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와 정운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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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마(靑馬)와 정운(丁芸)

 

최용현(수필가)

 

   나는 가슴 한 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못다 태운 정염(情炎)의 잿가루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악수하고 헤어진 지난날의 아픔들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허공에 날려 보낸 젊은 날의 꿈들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믿습니다. 나는 길을 가다가 머리를 곱게 묶은 예쁜 소녀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설렙니다. 사랑했던 한 여자의 이름을 떠올릴 때에도 가슴이 설렙니다. 이런 설렘을 나는 좋아합니다. 이 설렘이 멎는 날 내 인생도 끝장일 거라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오늘은 새 해를 맞은 상큼한 설렘으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하나를 떠올립니다. 먼저 청마(靑馬) 유치환의 그리움이란 제목의 시() 하나를 옮겨 적어 봅니다.

 

         먼 풀밭에 엎대져 누우면

         나는 땅위에 떨어진

         한 개 장갑

 

         하늘의 빛 사다리를 타고

         사뭇 오르내리는

         황홀히 눈부신 것

         바람결 모습에도……

         풀잎 목소리에도……

 

         아, 무수히

         무수히 있고

         보듬을 순 없는 천지!

 

         먼 풀밭에 엎대져 누우면

          나는

           땅에 떨어진 한 개 장갑

 

   생명과 혼()의 시인, 의지(意志)의 시인인 청마에게도 이런 여리고 고운 시가 있었습니다. 이 시를 보면서, 나는 그와 평생 동안 애틋한 교분을 나눈 시조시인 정운(丁芸) 이영도 여사를 떠올립니다. 늘 머리를 땋아 올려서 한복을 즐겨 입은, 학처럼 우아한 기품을 지닌 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청마가 일생을 걸고 사랑한 정운에게 보냈던 5천통에 달하는 편지들은, 그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타계(1967)한 후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책으로 엮어져 아직도 사랑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각각 가정을 가진 두 문인의 이 전설 같은 로맨스는 청마가 서른아홉 살 때부터 타계할 때까지 20년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처음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아마 두 사람이 통영여중에 함께 재직하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청마는 국어선생님, 정운은 가사선생님이었다고 하네요. 그때 음악선생님은 저 유명한 윤이상 씨라고 하니 당시 통영여중 학생들은 복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가눌 수 없는 정열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안으로 몸부림쳐 온 청마의 영혼은, 결국 허무의 의지로 형상화되어 그가 종생(終生)토록 노도(怒濤)와 같은 시를 쓰게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의 시 중에서 그리움이란 제목이 붙어 있는 시가 3편이나 있는데(어쩜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목마름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의 시 그리움을 한 편 더 소개해 봅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정운이 청마의 애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시대가 우리들의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의 세대였던 만큼 가정을 가진 여자로서 그 애틋한 마음 졸임을 상상해 볼뿐입니다.

   청마의 연인답게 뜨거운 연모(戀慕)의 정을 안으로 감추고 요조숙녀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것이 청마로 하여금 생애의 목마름으로 애끓게 했을 것임은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청마가 가고 난 후, 홀로 남은 정운이 쓴 ()이라는 시를 봅니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정운의 그리움은 청마 사후에 더욱 깊어진 듯합니다. 나는 정운이 세상을 뜨기 직전인 19763월에, 그녀가 어느 일간 신문에 발표한 진달래라는 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일거라 생각합니다. 사거(死去)한 청마에 대한 연모의 정이 절절(節節)이 느껴지는 것은 필자의 과민함 탓일까요? 한 번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내 목숨의 불씨

        여밀수록 맺히는 아픔

        연연히 타는 정은

        연등으로 밝혀들고

        점점이 봄을 흔들며

        이 강산을 사르는가

 

        가꾸는 손길 없어도

        내 가슴은 너의 옥토

        세월이 어두올수록

        밝혀 뜨는 언약이여

 

        한 무덕 칠성이 내리듯

        아 투명히도 아리는 희구

        애증도 차마 못 지우는

        인연의 짙은 혈맥

        대답 없는 이름만이

        낭자히 떨어진 고개

 

        석문밖 북녘 하늘을

        꽃샘만이 설렌다

 

   청마가 간 지 9년 후, 정운도 이 시를 발표하고 그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나는 청마와 정운이 쌓아 올린 이 불후의 금자탑(金子塔)을 금세기 최고의 로맨스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왜 시인이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청마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연애편지를 자꾸 써 보십시오. 그러면 저절로 시인이 될 것입니다.”

   새해에, 청마가 걸었던 고독의 길, 사랑의 길을 다시 한 번 새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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