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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대기만성형 모사 '정욱'

삼국지 인물열전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4. 5. 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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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대기만성형 모사 ‘정욱’

 

최용현(수필가)

 

   중원의 한복판에 위치한 연주를 차지한 조조가 널리 인재를 구하고 있을 때, 조조의 장자방으로 불리는 순욱이 강직한 성품을 지닌 키가 크고 풍채가 좋은 현사(賢士) 한 사람을 추천했다.

   정욱(程昱), 자는 중덕(仲德). 연주 동군 출신의 다재다능한 재사(才士)로, 전에 연주자사 유대가 초빙했을 때는 응하지 않았으나, 조조가 찾아와서 간곡하게 도움을 요청하자 따라나선다. 그와 함께 젊은 천재로 불리던 곽가도 영입되면서 조조의 참모진은 비로소 체제가 갖춰진다.

   여포 토벌에 공을 세운 유비가 조조와 함께 허도로 들어왔을 때, 정욱은 조조에게 ‘유비의 관상을 보니 영웅의 기개가 있고 결코 남의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후일 뭇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면 큰 우환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유비를 빨리 제거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조조는 ‘한 사람을 죽여서 천하의 인심을 잃을 수는 없소.’ 하면서 유비를 죽이지 않는다. 결국 유비는 원술을 친다는 핑계로 조조에게 군사를 빌려서 도망치고 만다.

   정욱의 활약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조조가 관도전투에서 필생의 적수인 원소의 70만 대군이 먹을 군량을 기습작전으로 모두 불태우고 승리하자, 원소는 다시 4개 주에서 23만 대군을 끌어 모아 창정으로 공격해온다. 이때 정욱은 아군을 하상(河上)으로 물린 뒤 열 갈래로 군사를 매복시켜 원소군을 유인하는 십면매복(十面埋伏) 전략을 조조에게 제시한다. 하상 뒤쪽은 강물이 두르고 있어서 물러날 길이 없기 때문에 죽기로 싸우게 되는 배수진(背水陣)을 치자는 것이다.

   조조는 정욱의 계책대로 군사를 좌우 각 5대로 나눈다. 하후돈과 하후연, 장료, 이전, 악진을 좌군에, 조홍과 장합, 서황, 우금, 고람을 우군에 배치한다. 조조는 자신이 속한 중군의 선봉장인 허저를 앞세워 공격을 감행하고 좌우 각 부대가 차례차례 원소군을 공략하여 원소의 둘째아들 원희와 생질 고간에게 화살을 맞히는 등 큰 전과를 올리며 승리한다.

   이 창정전투에서 패한 원소는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가까스로 기력을 회복한 원소는 다시 군사를 모아 관도로 침공하다가 참패하자 또다시 피를 토하며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만다. 결국 조조는 하북 4개주를 차지하고 있던 원소를 제압하고 그의 아들들과 조카를 차례로 격파하여 강북을 제패하고, 다시 칼끝을 유비가 있는 형주로 돌리게 된다.

   두 번째, 조조군의 장수 조인이 번성에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형주의 신야를 지키고 있던 유비군의 새 군사(軍師) 서서(徐庶)는 그동안 훈련한 진법(陣法)을 구사하여 조인의 대군을 단숨에 패퇴시키고 번성을 빼앗아버린다. 깜짝 놀란 조조가 서서를 제거할 궁리를 하고 있을 때, 정욱이 나서서 이렇게 말한다.

   “서서는 효성이 지극하기 때문에 홀로 사는 그의 노모를 허도로 데려와서 극진히 대접하면서 아들이 오도록 편지를 쓰게 하면 서서가 이리로 올 것입니다.”

   조조는 정욱의 계책대로 서서의 노모를 모셔와 극진히 대접하지만, 노모는 아들에게 편지를 쓰기는커녕 조조를 역적이라며 꾸짖는다. 조조가 치를 떨며 노파를 죽이려고 하자, 정욱은 ‘자기를 죽여 달라고 일부러 그러는 것입니다. 노모가 죽게 되면 서서는 결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한다. 조조는 그 말을 옳게 여기고 노모를 정욱에게 맡긴다.

   정욱은 노파를 모셔 와서 거처를 마련해주고 수시로 찾아가 문안을 드리고, 직접 찾아가지 못할 때는 서신과 함께 음식과 옷을 보내며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정욱이 워낙 정성을 다하니 노파도 감복하여 정욱에게 고맙다는 서신을 보내왔다. 정욱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욱은 노파의 필체를 흉내 내어 ‘나는 지금 조조에게 잡혀있는데 언제 죽을지 알 수가 없구나. 네가 이리로 와야만 내가 풀려날 것 같으니 속히 와다오.’ 하고 쓴 서신을 만들어 서서에게 전달한다.

  서서가 보니 분명히 어머니의 필체였다. 서서는 울면서 밤을 지새우다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유비를 찾아가 편지를 보여준다. 유비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앞이 캄캄했으나 모자(母子)의 정을 끊을 수가 없어서 서서를 보내주기로 한다. 서서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하고 허도로 말을 달려간다.

   조조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서서는 노모를 찾아가 어머니의 서신을 받고 달려왔다고 말한다. 그러자 노모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더니 ‘어찌 편지 한 통의 진위도 가릴 줄 모른단 말이냐? 옳은 주인을 만나고도 어두운 곳으로 오다니. 아, 자식을 잘못 키워서 조상 뵈올 면목이 없구나.’ 하고 내당으로 들어가더니 대들보에 목을 매어 죽고 만다.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던 서서는 이후 조조를 위해서는 어떠한 계책도 내지 않는다. 결국 정욱은 서서를 허도로 오게 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한다.

   세 번째,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게 참패하여 패잔병들과 함께 허도로 돌아가던 중 화용도에서 삼국지 최고의 무사인 관우의 군사와 맞닥뜨리면서 꼼짝 없이 죽게 된 처지에 이르렀을 때, 함께 있던 정욱은 조조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관우는 강한 상대에게는 싸움을 걸지만 약한 자에게는 모질지 못합니다. 또 은혜와 원수를 갚는데 분명하고 신의를 중히 여깁니다. 지난날 승상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 적이 있으니 이제 몸소 나서서 그를 달래면 이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정욱의 조언대로 관우 앞에 나서서 ‘관공, 그간 잘 있었소?’ 하면서 지금 자기가 극도의 어려움에 처해있으니 옛정을 봐서라도 살 길을 열어달라고 사정을 한다. 결국 정에 약한 관우는 전에 조조에게 입은 은혜와 현재 조조군의 패잔병들이 처한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차마 조조를 죽이지 못하고 그냥 놓아주고 만다.

   조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승승장구하던 두 모사 순욱과 곽가가 중간에 죽임을 당하거나 젊은 나이에 병사(病死)하는데 비해, 대기만성형 모사인 정욱은 끝까지 살아남아 다방면에서 지략을 펼치며 조조를 보필한다. 조조가 죽고 그의 아들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정욱은 안향후로 봉해져 안락하게 지내다가 당시로서는 천수를 누렸다고 할 나이인 79세에 세상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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