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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3. 3. 3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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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Places in the Heart)

 

최용현(수필가)

 

   영화인이 꿈꾸는 최고의 영예는 아카데미상 수상이다. 그리고 연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욕심을 내보는 것이 아카데미 남녀주연상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기라성 같은 대 배우들 중에서 아카데미상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배우는 의외로 상당히 많다.

   아카데미상 시상이 시작된 1929년부터 2023년까지 총 95회의 수상자료 중에서 여우주연상을 보면, 캐서린 헵번은 4회 수상했고,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3회 수상했다. 2회 수상한 배우는 총 12명인데, 이들 중에서 메릴 스트립은 17회 후보에 올라 2회 수상했다. 6회 후보에 오른 데보라 카는 한 번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마음의 고향(Places in the Heart)’은 대공황기에 가족과 땅을 지켜내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여성을 그려내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년)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로버트 벤톤이 감독을 맡으면서 각본까지 썼는데, 감독상은 받지 못하고 각본상을 받았다.

   여주인공 샐리 필드는 ‘노마레이의 꿈’(1979년)에 이어 5년 만에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포레스트 검프’(1994년)에서 포레스트의 어머니로 나오는 배우이다. 샐리 필드는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너무 기뻐서 흥분한 나머지 ‘여러분은 나를 좋아해요, 정말로 좋아해요(You like me, you really like me).’라고 했는데, 이 말은 한동안 대중문화계의 유행어가 되었다.

   미국 텍사스 주의 어느 농촌, 보안관인 남편과 함께 1남 1녀의 어머니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에드나(샐리 필드 扮)는 어느 날 흑인 소년의 난동을 진압하러 나갔던 남편이 그 소년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비보(悲報)를 듣게 된다. 졸지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은 에드나는 남편이 은행에서 받은 거액의 대출금까지 물려받아 빚 때문에 농장이 차압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때 떠돌이 흑인 청년 모제스(대니 글로버 扮)가 일자리를 구하러 찾아오는데, 에드나는 모제스와 함께 농장에 목화를 심어서 그 수확으로 은행 빚을 갚기로 계획을 세운다. 또 생활비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의자 수선 일을 하는 맹인청년 윌(존 말코비치 扮)을 집에 하숙시키기로 한다. 에드나는 매일 모제스와 함께 농장에 살다시피 하면서 목화밭을 일군다.

   어느 날,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폭풍우와 함께 몰려와서 온통 마을을 강타한다. 온 들판이 폭풍우에 휩싸이고 학교 건물과 마을의 집들이 강풍으로 무너지고 부서지지만, 에드나의 가족들은 모두 지하창고로 대피하여 화를 면했고, 목화밭도 다행히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

   한편, 장애인 특유의 콤플렉스 때문에 가끔씩 에드나의 속을 썩이던 윌이 어느 날 저녁 부엌으로 찾아와 부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면서 마음의 문을 연다. 에드나는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긴 머리는 묶어서 올렸고, 눈은 갈색이고…. 썩 미인은 아니지만 그런 대로 괜찮게 생겼어요.”

   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프랭크도 가끔 여동생을 괴롭히며 말썽을 피우곤 했으나, 차츰 철이 들어 엄마를 도와주기 시작한다. 모제스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목화가 무럭무럭 잘 자라자, 에드나는 매년 목화를 첫날 가장 많이 수확하는 사람에게 큰 상금을 주는 첫 수확왕에 도전하기로 한다. 

   드디어 첫 수확일의 아침이 밝았다. 에드나는 옆 마을 농장에 지지 않기 위해 일꾼 모제스를 비롯하여 어린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의 불륜행각으로 이혼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는 동생 마가렛 부부까지 동원하여 수확에 나선다. 맹인 하숙생 윌은 집을 지키며 자진해서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한다.

   머리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 손가락은 갈라지고 무릎과 허리는 감각이 없다. 모두 밤늦도록 강행군을 한 결과, 마침내 에드나는 관내 일등이라는 첫 수확 목표를 달성한다. 에드나의 첫 수확왕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을 때, 외롭게 혼자 앉아있는 에드나에게 열 살짜리 아들 프랭크가 다가와 춤 신청을 하는데, 모자(母子)가 함께 춤추는 장면은 찡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받으면서도 헌신적으로 에드나를 도와준 모제스는 그날 밤 이웃 농장 사람들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하고 당장 마을을 떠나라는 협박을 받는다. 흑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제스는 이 집을 떠나게 되는데, 에드나는 모제스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

   “백인과 흑인을 통틀어서 당신이 최고였어요. 아마 당신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마음의 고향’(1984년)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일하면서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어내는 억척스런 한 여인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핍박받는 흑인 문제와 장애자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접점을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할리우드의 폭력물이나 에로물의 자극적인 잔재미에 물든 사람에겐 조금 싱거운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또 스토리 전개가 고진감래(苦盡甘來)식의 도식적인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치밀하게 짜인 각본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짜임새 있는 연출은 그런 흠을 덮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거대한 회오리가 몰려오는 장면, 목화밭에 저녁노을이 물드는 장면 등의 영상미는 압권이다.

   이 영화는 에드나의 남편을 죽인 흑인 소년과 모제스를 폭행한 사람들 등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마을 교회에 모여서 성경 고린도전서의 저 유명한 구절을 읽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서로 시기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이 영화가 다룬 주제는 역경을 헤쳐 나가는 불굴의 정신이지만, 그보다 더 큰 메시지는 화해와 용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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