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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3. 3. 2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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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ast Exit to Brooklyn)

 

최용현(수필가)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ast Exit to Brooklyn)’는 브룩클린 출신의 허버트 셀비 주니어가 1964년에 발표한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독일 출신의 울리 에델 감독이 1989년에 만든 영화이다. 여기서 ‘비상구’는 고속도로의 ‘출구(exit)’를 오역(誤譯)한 것이지만, ‘비상구’의 어감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주인공들의 처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원작소설은 뉴욕의 우범지대인 브룩클린에서 벌어지는 매춘과 동성애, 집단강간 등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외설논쟁을 일으키며 영국 법원에서 출판금지조치가 내려졌다. 그러다가 영국 문단의 항의와 버트런드 러셀과 사뮈엘 베케트 등 명사들의 작가에 대한 지지발언으로 철회되었다.

   1952년, 한국전쟁 참전과 대규모 파업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뉴욕 브룩클린에 사는 성년 남자들의 대부분이 노동조합원인 한 금속공장에서 6개월째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에서 배급식량을 나눠주고 있으며, 노조의 선전부장인 해리(스티븐 랭 扮)는 앞장서서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

   미모의 창녀 트랄라(제니퍼 제이슨 리 扮)는 동네 패거리들과 역할분담을 하여 술 취한 남자의 머리를 빈병으로 내리치는 퍽치기를 하여 지갑을 털면서 살아가고 있다. 트랄라를 짝사랑하는 소년 스푸크는 오토바이 살 돈을 모으고 있고, 스푸크의 아버지는 스푸크의 누나를 임신시킨 토미를 찾아가 책임 추궁을 하고 있다.

   어느 날밤, 여느 때와 같이 트랄라가 술 취한 군인을 유혹하여 주차장 뒤로 가고 있다. 트랄라가 오랄 서비스를 하려고 할 때 패거리들이 다가와서 퍽치기를 해야 하는데, 그날은 패거리들이 뒤에서 낄낄거리며 구경만 했다. 화가 난 트랄라는 다른 술 취한 군인을 유혹하여 함께 택시를 타고 맨해튼으로 가버린다.

   맨해튼에 온 트랄라는 함께 온 군인이 술집 테이블에 엎드려서 잠이 들자, 훈련소를 갓 나온 스티브라는 이병을 만나 따라간다. 그는 진심으로 트랄라를 좋아하여 가슴이 작다고 푸념하는 트랄라에게 ‘서양에서 가장 예쁜 가슴’이라고 말하며 그녀가 가고 싶어 하는 곳에 데려가고 함께 쇼핑도 하고 외식도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3일뿐이다. 3일 후에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하러 떠나야 한다.

   한편, 아내와 어린 아이까지 있는 해리는 동네 패거리들과 어울려 호모 파티에 가는데, 거기서 눈이 맞아 따라간 레지나의 아파트에서 동침을 한다. 여장남자인 레지나와 사랑에 빠진 해리는 연일 노조의 공금으로 레지나가 좋아하는 샴페인과 음식을 사들고 레지나의 아파트를 찾아간다.

   파업 현장에서는 트럭들을 앞세운 구사대(求社隊)와 경찰들이 들이닥쳐 파업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진압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더니 나중에는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노조원들을 구타한다. 그날 밤에 노조위원장은 동네 패거리들에게 200달러를 주고 구사대 트럭들을 모두 불태우게 한다.

   스티브 이병은 3일 동안의 꿈같은 밀회를 끝내고 부두까지 따라온 트랄라에게 나중에 읽어보라며 편지를 쥐어주고 떠난다. 트랄라는 돈이 들어있는지 먼저 살펴보고 편지를 읽어보더니 바로 구겨버린다.

   트랄라는 동네 술집에서 싸구려위스키를 잔뜩 마시고 ‘서양에서 가장 예쁜 내 가슴을 보라.’고 소리치며 윗옷을 벗어젖힌다. 흥분한 수십 명의 남자들이 트랄라를 들쳐 메고 공터로 나가 줄을 서서 윤간(輪姦)을 시작한다. 눈 화장이 번져서 얼굴에 범벅이 된 트랄라의 몽롱한 의식 속에 스티브가 주고 간 편지가 떠오른다.

   “함께 보낸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거야. 내가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도해줘,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어. 너와 지낼 날들이 다시 오기를 꿈꾸면서. 사랑하는 스티브”

   한편, 사무실에 돌아온 해리는 공금을 횡령한 것이 발각되어 노조위원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다. 해리는 레지나를 찾아가지만, 해리에게 돈이 없다는 것을 안 레지나도 문전박대를 한다. 절망한 해리는 공터를 배회하다가 만난 이웃소년을 범하려다가 마을 남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고 절규한다.

   아기를 낳은 스푸크의 누나와 토미의 결혼식이 열리고, 피로연으로 이어진다. 신부와 아버지가 춤을 추면서 피로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노조위원장이 찾아와 회사 측과의 협상이 잘 타결되었다며 파업이 끝났음을 알린다.

   자신의 오토바이에 제일 먼저 트랄라를 태우는 것이 꿈인 스푸크는 매형이 된 토미가 타던 고물 오토바이를 선물 받고 트랄라를 찾아 나선다. 마을 공터에서 옷이 거의 다 벗겨진 채 죽은 듯이 누워있는 트랄라를 발견한 스푸크는 윗도리를 벗어서 트랄라의 몸을 가려주고 통곡한다. 눈을 뜬 트랄라는 ‘울지 마, 울지 마.’ 하면서 스푸크를 안아준다.

   월요일 아침, 브룩클린의 노동자들이 굳게 닫힌 금속공장의 문을 열고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출근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는 브룩클린에 사는 하층민들의 거칠고 암울한 삶을 실감나게 그려내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도로 한복판에서 기마(騎馬) 경찰대원들 앞에 앞장서서 보무당당 걸어가는 노랑머리 트랄라의 잔상(殘像)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을 것 같다.

   트랄라 역을 온몸으로 처절하게 열연한 당시 27세의 제니퍼 제이슨 리는 뉴욕비평가협회 및 보스턴영화평론가협회 등에서 주는 여러 연기상을 받으며 1990년대 미국 인디영화계의 신성으로 떠오른다. 트랄라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울려 퍼지는 마크 노플러의 ‘A Love Idea’의 OST 바이올린 선율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이 곡을 번안한 ‘벙어리 바이올린’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페이지의 이가은이 불렀는데, 애절한 가사와 음률 때문인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왜 그리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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