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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벨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3. 3. 2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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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벨(Memphis Belle)

 

최용현(수필가)

 

   ‘멤피스 벨(Memphis Belle)’은 아날로그시대 최고의 명작 ‘벤허’(1959년)를 감독한 윌리엄 와일러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선보인 다큐영화 ‘멤피스 벨: 플라잉 포트리스이야기’(1944년)를 각색하여 만든 영화이다. 그의 딸 캐서린 와일러가 제작에 참여하였고, 화제작 ‘스캔들’(1989년)로 감독에 데뷔한 영국 출신의 마이클 카튼 존스가 1990년에 연출하여 윌리엄 와일러에게 헌정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이르던 1943년, 영국에 기지를 둔 연합군의 공군기는 연일 출격하여 독일군과 싸웠다. 격추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공군기도 많았다. 10회 출격하여 귀환할 확률은 50%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25회 출격하여 임무를 완수하면 대원들을 모두 명예롭게 제대하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제91비행단 소속의 B-17 폭격기 ‘멤피스 벨’은 총 24회 출격하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제 한 번만 더 출격하여 귀환하면 대원들은 모두 영웅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멤피스 벨’의 대원은 모두 10명이고, 18세부터 22세까지의 소년병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의 마지막 임무는 독일 본토의 브레멘 군수공장 폭파이다. 독일군의 촘촘한 대공 포화를 뚫고 폭격해야 하는 아주 위험한 임무이다.

   출격일 전날 밤, 대원들은 모두 부대에서 마련한 파티에 참석하여 술을 마시거나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멤피스 벨’의 후미사수(해리 코닉 주니어 )는 파티에서 ‘대니 보이’를 부르고, 기장 데니스(매튜 모딘 )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밖으로 나와 기체 옆면에 빨간 수영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그려져 있는 ‘멤피스 벨’을 살펴본다.

   1943년 5월 17일, ‘멤피스 벨’은 드디어 마지막 출격에 나선다. 독일국경에 가까워지자, 적기(敵機)들이 나타나 숨 막히는 공중전이 벌어지고 아군의 선두기가 적탄에 맞아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추락한다. 연이어 바로 옆 폭격기도 두 동강이 나면서 낙하하고, 이제 ‘멤피스 벨’이 선두에 나서게 된다.

   독일 상공에 들어서자, 호위하던 아군 전투기는 돌아가고 적의 대공포화가 사방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가운데 ‘멤피스 벨’은 드디어 목표지점의 상공에 도달한다. 그러나 악천후 때문에 기체 아래에는 구름만 보일 뿐 목표물이 보이지 않는다. 대원들은 아무데나 폭탄을 떨어뜨리고 돌아가자고 하는데, 데니스는 ‘우리가 목표물을 폭파하지 못하면 누군가 여기에 또 와야 한다.’며 목표물 찾기를 고집한다.

   브레멘 상공을 선회하면서 독일 전투기들과 격전을 치르는 동안 구름이 걷히면서 마침내 목표물인 군수공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멤피스 벨’은 목표물에 정확히 폭탄을 투하하고 귀환 길에 들어선다. 갑자기 오른쪽 날개에 불이 붙고, 무전사 대니(에릭 스톨츠 )는 총탄에 맞아 쓰러진다. 데니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급강하 비행을 하여 날개에 붙은 불을 끈다. 정신을 잃은 대니는 폭격수 벨(빌리 제인 )의 응급처치로 다시 눈을 뜬다.

   엔진 하나가 고장이 난다. ‘멤피스 벨’은 결국 한 개의 엔진만으로 겨우 출발기지 가까이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착륙바퀴 하나가 나오지 않는다. 급히 수동으로 바퀴를 꺼내면서 착륙을 시도한다. 전 부대원들이 밖으로 나와서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두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순간, 동체가 한번 튕기지만 무사히 착륙에 성공한다. 10명의 대원들이 중상을 입은 대니를 들 것에 싣고 활주로 잔디에 내려선다. 전 부대원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대니 보이’가 울려 퍼진다.

   첫 장면에서 ‘멤피스 벨’ 대원들이 활주로 잔디 위에서 자유분방하게 공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듯이, 마지막 장면에서도 ‘멤피스 벨’ 대원들이 활주로에 내려서서 잔디에 키스하면서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고 있다.

   영화 ‘멤피스 벨’은 화끈하게 물량공세를 펼치는 할리우드 전쟁영화와는 달리 눈부신 창공에서 펼치는 공중전을 뛰어난 영상으로 재현하여 명품 항공전쟁영화의 반열에 올라섰다. 제작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똑같은 공군기지 세트를 만들고, B-17 폭격기는 미국 2대, 프랑스 2대, 영국 1대 등 전 세계에 남아있는 5대를 모두 입수하여 실감나는 공중전 영상을 창출해냈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1대는 촬영 중에 추락하여 전소되었고, ‘멤피스 벨’은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공군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답게 ‘멤피스 벨’ 내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시시각각으로 보여주면서, 소년병들이 두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화면 속에 담고 있다. 출격 전야와 당일 이틀 동안의 ‘멤피스 벨’ 대원들의 불안 심리와 인간적인 고뇌, 전우애에 초점을 맞춰 전투 이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화면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멤피스 벨’은 직업군인이 아닌 소년병들을 주인공으로 대거 등장시켜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반전(反戰) 영화이다. 어린 배우들을 그 시대의 군인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대원들을 모두 영국군에 의뢰하여 혹독한 특수훈련을 받게 했다. 그 결과, 촬영이 끝날 무렵에는 모두 전우애로 똘똘 뭉친 훌륭한 전사(戰士)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따로 없으며 여성출연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마이클 카튼 존스 감독은 전쟁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한 개인에 대한 영웅주의에서 탈피하기 위해 주인공을 따로 내세우지 않고 ‘멤피스 벨’ 대원들을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꼭 한 번 보라고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막이 가슴을 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25만 대의 전투기가 유럽전선에 출격했고, 20만 명의 젊은이가 하늘에서 숨졌습니다. 국적을 초월하여 하늘에서 숨진 젊은이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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