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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걸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3. 3. 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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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걸(Working Girl)

 

최용현(수필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주된 역할은 남성의 애정 파트너였다. 그것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 때문에 여배우는 청순함이나 육체적 아름다움 따위의, 남성의 관점에서 본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최근에 여성의 지위가 눈에 띄게 향상되면서 여배우의 역할도 많이 달라졌다. 

   ‘일하는 여성’이라는 의미의 ‘워킹 걸(Working Girl)’은 ‘졸업’(1967년)으로 유명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1988년에 연출한 영화로, 직장여성이 스스로의 실력으로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긴박감 있게 그려낸 로맨틱 드라마이다. 1989년 골든 글로브 작품상과 여우주연상(멜라니 그리피스), 여우조연상(시고니 위버), 음악상을 수상하였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음악상을 받았다.

   똑 부러지는 성격에 일솜씨도 야무진 서른 살 직장여성 테스(멜라니 그리피스 扮)는 뉴욕 증권가에서 성공한 주식전문 중개인이 되어 독립된 사무실을 갖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야간대학에 졸업한 학력이 문제인지 올해도 승진에 누락되어 합병인수부장인 동갑내기 캐서린(시고니 위버 扮)의 비서로 들어가게 된다.

   캐서린은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여성이다. 그녀는 테스에게 ‘기회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하면서 커피 심부름은 기본이고 회식을 할 때는 서빙 일을 시키고 스키장에 갈 때는 부츠까지 신기게 한다. 그래도 테스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언제든지 캐서린이 받아주겠다고 했다면서 기꺼워한다.

   테스가 트래스크 재벌의 라디오방송국 인수에 관한 획기적인 안(案)을 내자, 캐서린은 이 기획안을 자신의 프로젝트인 양 애인인 투자상담가 잭(해리슨 포드 扮)에게 비서 몰래 추진하도록 부탁한다. 그러던 중 캐서린이 스키장에 갔다가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입원하게 되자, 회사 일과 캐서린의 집안일을 모두 테스가 떠맡게 된다. 캐서린의 집에 가서 통화녹음을 듣던 테스는 자신이 낸 기획안을 캐서린이 몰래 추진해온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모종의 결심을 한 테스는 긴 머리를 중역들처럼 짧게 자른 후, 캐서린의 코코샤넬 드레스를 꺼내 입고 비싼 장신구까지 찾아 걸치고 비즈니스회의에 캐서린의 비서가 아닌 대리참석자 신분으로 참석한다. 이 과정에서 잭을 만나게 된 테스는 잭이 캐서린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은 함께 트래스크 회장에게 접근하여 이 프로젝트를 추진해나간다.

   프로젝트가 거의 성사될 무렵, 퇴원하여 돌아온 캐서린은 테스가 놓고 간 다이어리를 보고 테스 몰래 추진하던 프로젝트를 테스가 자기의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을 알아낸다. 캐서린은 비즈니스회의에 들어가 테스가 자신의 비서임을 폭로하면서 그 동안 테스가 추진했던 일들을 모두 자신의 실적으로 돌려놓는다. 테스는 회사에서 쫓겨난다.

   결국, 중간에 있는 잭의 상황 설명으로 정확한 진실을 알게 된 트래스크 회장은 캐서린을 해고시키고 테스를 중견간부로 발탁하면서 상황은 다시 반전된다. 마침내 테스는 비서를 거느리고 독립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꿈을 이루게 된다. 잭과 새 생활을 시작하면서 꿈과 사랑을 동시에 성취한 것이다. 첫 장면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장면에서도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주제음악 ‘Let The River Run’이 테스의 성공을 황홀한 감동으로 다가오게 한다.

   직장여성의 일과 암투, 사랑을 사실적이면서도 유쾌한 감각으로 그려낸 ‘워킹 걸’은 스토리가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살벌한 증권가를 배경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 있는 대사, 달달한 로맨스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특히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영화이다. 마지막 부분의 긴박감과 거듭되는 반전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뛰어난 연출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도드라진 부분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장면 하나, 승진에 실패하여 의기소침해 있던 테스는 남자동료 루츠로부터 새 직장 자리를 소개받고 만난 남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고 돌아온다. 자리에 앉은 테스는 ‘치사한 뚜쟁이 루츠, 왜소한 물건(?)의 소유자’라는 글씨를 증권 전광판에 커다랗게 입력시켜서 그런 남자를 자신에게 소개한 루츠를 망신시킨다.

   이것은 직장여성들이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음을 대변하는 장면으로, 여기서 테스가 통쾌하게 복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여성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영화의 오락적 재미도 추구하고 있다. 테스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양한 매체를 섭렵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를 얻고, 퇴근 후에는 학원과 세미나장을 오가며 끊임없이 의지를 불태우며 자신을 연마해온 결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주인공 멜라니 그리피스는 섹시 이미지가 강한 역할을 주로 해왔으나 이 영화에서는 직장여성으로 변신을 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20년 동안 잘 살다가 몇 년 전에 이혼한 그녀는 히치콕 감독의 ‘새’(1963년)에 나오는 금발미인 티피 헤드렌의 딸이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로 유명한 다코다 존슨의 어머니이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여전사 시고니 위버는 출세한 상류여성으로 나와 밉살스런 악역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대박으로 할리우드에서 막강한 티켓 파워를 지닌 해리슨 포드는 처음으로 로맨틱 드라마에 출연하여 특유의 능청스런 연기를 펼쳤다. 또, 테스의 단짝 친구로 나오는 조안 쿠삭은 시고니 위버와 함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을 받지는 못했다.

   이 밖에도 눈여겨 볼 배우들이 있다. 테스를 성희롱하는 남자는 케빈 스페이시이고, 테스의 바람둥이 남자친구는 알렉 볼드윈이다. 그리고 테스의 깜짝 생일파티에 등장하는 사람은 왕년의 인기 TV시리즈 ‘X파일’의 남자주인공 데이비드 듀코브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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