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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색 : 레드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2. 6. 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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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색 : 레드(Three Colors : Red)

 

최용현(수필가)

 

   프랑스 국기는 블루(靑) 화이트(白) 레드(紅)가 3등분되는 삼색기인데, 이 색들은 프랑스혁명의 3대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를 각각 상징하고 있다. 폴란드의 거장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은 이 세가지색을 모티브로 하여 연작시리즈를 연출하였다.

   첫 번째인 ‘블루’는 줄리엣 비노쉬(1993년), 두 번째인 ‘화이트’(1994년)는 줄리 델피를 여주인공으로 기용했고, 시리즈의 마무리인 ‘레드’(1994년)는 키에슬로브스키 자신이 연출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년)의 이렌느 야곱을 여주인공으로 발탁하였다. 90년대 카페 등의 인테리어에 ‘블루’와 ‘레드’의 포스터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박애의 색인 ‘레드’를 살펴보고자 한다. 카메오로 출연한 줄리엣 비노쉬와 줄리 델피의 모습은 마지막에 나온다.

   스위스의 제네바대학 학생이면서 패션모델인 발렌틴(이렌느 야곱 扮)은 영국에 있는 남자친구와 매일 밤 장거리전화를 한다. 남자친구는 통화를 할 때마다 정말 혼자 있었는지, 지금도 혼자 있는지 물어본다. 발렌틴은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의 과한 집착과 의심에는 적잖이 신경이 쓰인다.

   어느 날, 발렌틴은 패션쇼를 마치고 운전을 하면서 귀가하던 중 개를 치는 교통사고를 낸다. 개의 목에 걸린 인식표의 주소지로 찾아가 개의 주인인 노인(장 루이 트랭티냥 扮)에게 ‘개가 다쳤는데 병원에 데리고 갈까요?’ 하고 묻는데, 그는 ‘개가 어제 집을 나가서 안 들어왔다.’면서 마음대로 하라며 대수롭잖은 반응을 보인다.

   병원에 간 발렌틴은 개가 임신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치료 후에 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함께 산책을 하다가 개가 사라져버리자, 발렌틴은 개 주인을 찾아가보는데, 다행히 개가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노인은 무선기를 이용하여 이웃집 전화를 도청하고 있었다. 발렌틴은 ‘역겨워요. 사람은 누구나 사생활을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어요.’ 하고 말한다.

   발렌틴은 노인이 은퇴한 법관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놀란다. 노인은 ‘법정에 있을 때보다 세상 일이 더 잘 보여. 적어도 여기엔 진실이 있어.’ 하고 말한다. 발렌틴이 도청사실을 알리겠다고 하자 노인은 그러라고 말한다. 발렌틴은 이웃집에 찾아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남편의 전화가 도청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알려주려고 했으나, 그 집 딸이 아빠의 전화를 몰래 엿듣고 있는 것을 보고는 집을 잘못 찾아왔다고 말하고 그냥 나온다.

   문득 자신의 아버지가 계부(繼父)라는 사실을 작년에 알게 된 16살 남동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몰라도 되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렌틴도 알고 있었다.

   발렌틴의 옆모습이 담긴 붉은 바탕의 대형 브로마이드 껌 광고가 거리에 걸린다. 그 무렵, 은퇴한 판사가 이웃집의 전화를 도청했다는 신문기사가 난다. 발렌틴이 찾아갔을 때, 노인은 자신이 이웃과 경찰에 편지를 써서 알렸다면서 자신을 역겹다고 한 발렌틴이 신문기사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고 말한다. 발렌틴으로 인해 심경의 변화가 온 것 같았다. 이웃들은 노인의 집으로 돌을 던졌고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35년 전, 노인은 한 선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오판이었다. 그는 유죄였다. 후일, 노인은 그가 결혼해서 세 자녀, 손자와 화목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자신의 실수가 그의 인생을 구한 것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오만한 행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발렌틴은 점점 노인을 이해하게 된다.

   발렌틴의 이웃에 법대생 오귀스트(장 피에르 로릿 扮)가 살고 있었다. 발렌틴과 오귀스트는 자주 마주치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오귀스트의 애인은 노인이 도청했던 이웃 중 날씨정보를 제공해주는 여인이었다. 전화도청 문제로 법정에 갔을 때, 노인은 그 여인에게 딴 남자가 생긴 것을 보게 된다.

   오귀스트는 길을 걷다가 책을 떨어뜨렸는데, 우연히 펼쳐진 페이지의 내용을 읽었고, 용케도 그 부분이 시험에 나와서 법관시험에 합격한다. 오귀스트는 애인이 전화를 받지 않자, 벽을 타고 올라가 그녀의 방 안을 들여다보다가 기겁을 한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알몸으로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낙담한 오귀스트는 페리호를 타려고 표를 예매한다.

   발렌틴은 초청장을 보낸 노인과 패션쇼가 끝나고 나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 노인에게도 젊은 시절 사랑한 여자가 있었는데, 한 남자가 그녀를 낚아채갔다. 그녀가 사고로 죽은 후, 그 남자가 지은 건물이 부실공사로 무너져지면서 사상자가 발생하여 노인에게 재판이 맡겨졌다. 노인은 법대로 유죄를 선고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이 내린 판결에 회의를 느낀 그는 결국 조기퇴직을 했다고 한다.

   영국에 있는 애인을 만나러가는 발렌틴에게 노인은 페리호를 타라고 한다. 발렌틴이 돌아오면 개가 낳은 강아지 7마리 중에서 한 마리를 선물로 받기로 한다. 그런데, 발렌틴이 탄 페리호가 갑작스런 폭풍우로 전복되어 1,435명의 승선자 중 대부분이 실종되고 7명이 구조된다. 생존자 7명의 얼굴이 TV에 나오는데, 마지막에 스위스인 발렌틴과 오귀스트가 함께 나온 것이다. 안도하는 노인의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되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에서 발렌틴은 모든 일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자신을 의심하는 남자친구에게는 항변하기보다는 찾아가서 만나고자 했고, 우연한 교통사고로 만난 노인의 닫혀있던 마음도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서 열어놓는다. 또, 이웃으로 살 때는 서로 모르고 지내던 오귀스트를 우연히 페리호에서 만나 함께 살아남기도 한다.

   ‘레드’는 개인의 삶에서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쉽게 깨어지는지, 어떻게 우연 속에서 다시 이어지는지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박애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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