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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2. 6.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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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Citizen Kane)

 

최용현(수필가)

 

   요즘 젊은이들은 오손 웰스(1915~1985)를 잘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가 26세 때 각본을 쓰고 제작과 감독, 주연을 맡은 흑백영화 ‘시민 케인’(1941년)은 1997년에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걸작영화 1위로 선정되었고, 2007년에 재선정했을 때도 다시 1위에 올랐다.

   ‘시민 케인’은 한 신문기자가 언론재벌의 삶을 추적하는 이야기인데, 스릴 넘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좋아하는 일반인들은 좀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로튼 토마토 평점이 만점이니만큼 영화인들에게는 교과서나 참고서를 뛰어넘어, 캐면 캘수록 금맥이 나오는 노다지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약관의 나이에 라디오 드라마 감독과 내레이터로 큰 인기를 얻은 오손 웰스는 당시 신문왕으로 불리던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풍자하는 영화 ‘시민 케인’의 제작에 착수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허스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막으려 했지만, 오손 웰스는 RKO 라디오 픽처스와 자신이 세운 영화사인 머큐리 프로덕션의 합작으로 기어코 영화제작을 완성한다.

   그러자 허스트는 이 영화의 배급을 막기 위해 자신의 영향 하에 있는 옐로 페이퍼(yellow paper)를 총동원하여 이 영화를 깎아내렸다. 영화가 개봉되자, 이번에는 자신이 발행하는 신문들로 하여금 이 영화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허스트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1940년,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대저택 제나두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70세의 언론재벌 찰스 케인(오손 웰스 扮)은 ‘로즈버드(Rosebud, 장미꽃 봉오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둔다. 취재에 나선 톰슨 기자는 케인의 매니저인 번스틴과 친구인 니랜드(조셉 고든 扮), 두 번째 부인 수잔 알렉산더(도로시 커밍고어 扮), 그리고 제나두 저택의 집사를 차례로 만나 케인의 숨겨진 과거와 ‘로즈버드’의 의미를 밝혀나간다.

   1870년, 찰스 케인이 태어난다. 케인의 부모가 살던 집의 하숙생이 밀린 하숙비 대신 내놓은 광산증서가 노다지로 밝혀지면서 케인의 부모는 벼락부자가 된다. 25세가 된 케인은 뉴욕의 메이저신문사인 인콰이어러를 인수한다. 케인의 ‘정직한 뉴스만 전하겠다.’는 선언이 게재되고 각종 폭로기사들이 넘쳐나면서 인콰이어러는 발행부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1900년, 케인은 대통령의 질녀인 에밀리 노튼과 결혼하는데, 곧이어 아들 찰스가 태어난다. 30개가 넘는 신문사와 라디오 네트워크, 2개의 그룹을 관리하는 언론재벌이 된 케인은 미모의 성악가 수잔 알렉산더와 불륜에 빠진다. 그 무렵, 대권까지 꿈꾸며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케인은 특유의 유머감각과 달변으로 당선이 유력했으나 선거일 일주일 전에 터진 수잔과의 스캔들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낙선하고 만다.

   1916년, 에밀리와 이혼한 케인은 2주 후에 수잔과 재혼한다. 수잔의 활동을 지원하려고 시카고에 오페라하우스를 지어주었지만 실적은 늘 기대 이하였다. 1918년에는 전처 에밀리와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 후, 케인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플로리다에 박물관과 궁전을 합쳐놓은 것 같은 대저택 제나두를 짓고 그곳에서 생활한다. 그러자 공연을 그만 두고 제나두에서 무료하게 지내던 수잔마저 이혼을 선언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

   ‘로즈버드’에 얽힌 수수께끼는 케인이 숨진 후 제나두를 정리하면서 쓸모없는 가재도구를 불태울 때 ‘로즈버드’라고 쓰인 썰매가 발견되면서 풀린다. ‘로즈버드’는 케인이 어릴 때 살던 집에서 가져온 썰매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던 케인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쓸쓸히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화가 끝난다.

   ‘시민 케인’은 한 언론 재벌의 삶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과 미국 자본주의의 어두운 일면을 풍자하는 영화이다. 오손 웰스는 존 웨인이 주연한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1939년)를 무려 40번 이상 보면서 영화 연출의 기본적인 양식을 배웠으며, 이를 토대로 ‘시민 케인’을 만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RKO 라디오 픽처스는 혈기 넘치는 청년 오손 웰스에게 막대한 예산과 함께 제작과정에서의 여러 권한을 부여했으며, 심지어 최종 편집권까지 주었다. 탁월한 능력과 천재성을 지닌 오손 웰스가 창조한 찰스 케인이라는 인물이 당시의 언론재벌 허스트를 빗대어 만든 캐릭터라는 사실 때문에 호기심과 함께 상당한 기대감을 유발시키지 않았나 싶다.

   스토리 전달은 내레이션과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하였다. 대부분의 장면을 스튜디오나 세트장에서 촬영했는데, 미니어처를 적절히 활용하고 음향이나 조명은 혁신적인 기술을 과감하게 도입하였다. 모든 사물을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는 팬(pan) 포커스와 딥(deep) 포커스 기술을 사용하였고, 첫 부인 에밀리와의 결혼생활은 몽타주 기법으로 표현하는 등 오손 웰스만의 독보적인 미장센을 구축하였다.

   ‘시민 케인’은 아직도 세인들의 관심권 안에 있다. 영화 ‘시민 케인을 둘러싼 논쟁’(1996년)과 ‘RKO 281’(1999년)은 ‘시민 케인’의 제작과정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또, 2020년에 나온 게리 올드만과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연한 데이빗 핀처 감독의 ‘맹크(Mank)’는 오손 웰스와 함께 ‘시민 케인’의 각본을 쓴 허먼 J. 맹키위츠를 소재로 한 전기 영화로, 아카데미 촬영상과 미술상을 받았다.

   이 영화의 키워드이면서 잃어버린 퍼즐의 한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로즈버드’, 즉 썰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원하는 것을 모두 다 가지고 사는 듯했던 케인도 만년(晩年)에는 애정 결핍과 외로움에 괴로워하면서 썰매를 타던 어린 시절의 소박한 행복을 그리워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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