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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22. 5. 2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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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The Piano)

 

최용현(수필가)

 

   1993년에 제작된 ‘피아노(The Piano)’는 각본과 연출을 맡은 뉴질랜드의 여성감독 제인 캠피온을 하루아침에 유명인사로 만든 뉴질랜드와 호주, 프랑스의 합작영화이다. 전 세계에서 핫 이슈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개봉 당시 주인공 남녀의 전라(全裸) 노출이 큰 화제가 되면서 서울 관객 47만 5천명을 기록하며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청소년 관람불가이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홀리 헌터)과 여우조연상(안나 파킨), 각본상(제인 캠피온) 수상을 비롯하여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등 각종 영화제에서 총 68개의 상을 받았다. 벙어리로 나오는 홀리 헌터는 얼굴 표정과 눈빛, 손가락 하나까지 혼신의 연기를 펼쳐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19세기 말, 여섯 살 때부터 언어를 잃어버린 채 피아노를 연주하며 살아온 스코틀랜드 출신의 20대 미혼모 에이다(홀리 헌터 扮)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아홉 살 난 사생아 플로라(안나 파킨 扮)를 데리고 낯선 땅 뉴질랜드에 도착한다. 에이다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피아노와 딸 플로라뿐이다.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뉴질랜드 해변에 피아노 한 대와 다른 짐들, 그리고 두 모녀가 서있다. 원주민들과 함께 모녀를 데리러 온 남편 스튜어트(샘 닐 扮)는 피아노가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버려두고 다른 짐들만 챙겨서 집으로 간다.

   다음날, 남편의 친구인 원주민 베인즈(하비 케이틀 扮)와 함께 다시 온 그 해변에서 에이다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에 반한 베인즈는 피아노가 그녀에게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금방 알아본다. 베인즈는 스튜어트에게 80에이커의 땅을 주고 교환한 그 피아노를 원주민들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가져간다.

   스튜어트는 베인즈가 피아노 레슨을 받을 수 있게 에이다를 매일 그의 집으로 보내준다. 피아노 레슨보다 에이다에게 관심이 있는 베인즈는 ‘피아노를 되찾고 싶지 않소?’ 하면서 에이다에게 거래를 하자고 한다. 피아노를 칠 때 검은 건반을 누르는 횟수에 따라 베인즈가 하자는 대로 해주면 피아노를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베인즈는 처음에는 치마를 올려보라고 하고 다음날에는 윗옷을 벗어보라고 하더니 그 다음날에는 옷을 모두 벗고 함께 누워있자고 한다. 마침내 두 사람은 옷을 모두 벗고 한 몸이 된다. 그러자 베인즈는 ‘이 피아노는 이제 당신 거요.’ 하면서 피아노를 스튜어트의 집으로 보내준다. 그러나 이미 사랑의 포로가 된 에이다는 베인즈를 찾아가 애욕을 불태우는데, 마침 그 집 옆을 지나가던 스튜어트에게 들키고 만다.

   스튜어트는 에이다의 방문에 빗장을 건다. 그러자 에이다는 ‘사랑하는 베인즈, 내 마음은 당신을 향하고 있어요.’라고 새긴 나무막대를 베인즈에게 갖다 주라고 플로라를 시킨다. 그런데 플로라는 그것을 베인즈가 아닌 스튜어트에게 갖다 준다. 이것을 보고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 스튜어트는 에이다의 오른손 검지를 도끼로 자르고 자른 손가락을 플로라를 시켜 베인즈에게 갖다 준다. 또다시 그러면 손가락을 또 자르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에이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스튜어트는 총을 들고 베인즈를 찾아가 에이다와 플로라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라고 한다. 베인즈와 에이다가 피아노를 배에 싣고 떠나는데, 에이다는 피아노를 바다에 빠뜨려버리라고 한다. 베인즈의 만류도 소용이 없자, 뱃사공들은 피아노를 바다 속에 밀어 넣는다. 이때 피아노를 묶은 밧줄에 한쪽 발이 걸린 에이다도 바다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피아노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던 에이다는 발에 걸린 밧줄을 풀고 물 위로 올라온다.

   세월이 흐르고, 에이다는 뉴질랜드 남섬의 최북단 넬슨에 정착하여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에이다가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베인즈가 금속으로 된 손가락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에이다는 침묵 속에서 살았던 지난날과 작별하고 말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피아노’는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던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피아노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벙어리 미혼모가 결혼한 남편과 그의 친구 사이에서 벌이는 사랑과 질투를 치열하게 풀어낸 로맨스 영화이다. 애 하나 딸린 벙어리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을 그린 페미니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에이다는 피아노 대신 땅을 선택한 남편 스튜어트를 배척하고, 자신의 땅을 내어주면서 피아노를 선택한 남편의 친구 베인즈를 선택한다. 에이다의 불륜에 화가 난 남편이 도끼로 에이다의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것은 에이다의 불륜에 대한 응징이기도 하고, 동시에 에이다가 영원히 피아노를 칠 수 없도록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다.

   제인 캠피온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시각으로 성(性)을 통해서 자아를 찾아가는 에이다의 미묘한 감정선(感情線)을 좇아간다. 그 과정에서 피아노는 에이다의 희망의 끈이 되기도 하고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데, 결국 피아노는 에이다와 베인즈를 연결하는 사랑의 끈 역할을 한다.

   에이다가 피아노와 함께 바다 속에 끌려들어가는 순간 현생(現生)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을 찾아 물 밖으로 나오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피아노와 함께 바다에 침잠(沈潛)했던 에이다가 그 순간을 회상하는 독백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밤에는 바다 무덤 속의 내 피아노를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 위에 떠 있는 나 자신도 생각한다. 그 아래는 모든 게 너무도 고요하고 조용해서 나를 잠으로 이끈다. 그것은 기묘한 나의 자장가이다. 소리가 존재한 적이 없는 그런 고요가 있다. 깊고 깊은 바다 차가운 무덤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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