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다짐
최용현(수필가)
서울의 어느 어두운 뒷거리에서
이 밤 내 조그만 그림자 위에 눈이 내린다.
눈은 정다운 옛이야기
남몰래 호젓한 소리를 내고
좁은 길에 흩어져
아스피린 분말(粉末)이 되어 곱게 빛나고
나타샤 같은 계집애가 우산을 쓰고
그 위를 지나간다.
눈은 추억의 날개 때묻은 꽃다발
고독한 도시의 이마를 적시고
공원의 동상 위에
동무의 하숙집 지붕 위에
캬스파처럼 서러운 등불 위에
밤새 쌓인다.
숨가쁘게 달아나는 한해를 돌아보며, 새로 시작하는 한 해를 따뜻한 가슴으로 꾸려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골라 본 김광균 시인의 「눈 오는 밤의 시」이다.
나는 늘 이맘때쯤이면 꿈을 꾼다. 그 꿈이 결국 허망한 것임을 번번이 겪어 알면서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꿈을 꿀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특권이요,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고 또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이 자연의 은혜와 가치를 우리는 가끔 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는다. 겨울이 오고 해가 바뀔 때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눈. 눈이 와야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눈, 우윳빛 뽀얀 백옥의 성찬(盛饌). 지상의 온갖 허물은 지우는 마술의 제복(制服). 이 광활한 우주, 무한한 시간 속에서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이 기막힌 인연을 함께 음미하면서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주는 광장. 완구점 진열대 같은 빌딩의 숲, 그 속에서 아귀다툼을 벌이며 금(金) 앞에, 권(權)의 위력 앞에 적당히 비굴해지는 인간들에게 한 해 동안 온갖 세파의 때를 씻게 하여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자연의 은전(恩典).
며칠 전, 눈 오는 밤에 나는 아무 목적지도 없이 자동차를 끌고 나와. 광명사거리를 지나 변두리 시골길을 향했다. 시흥 쪽으로 향하는 과림저수지 옆길을 따라 무작정 차를 몰면서,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하염없이 내려앉는 하얀 눈꽃을 보면서 나는 한동안 공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적당한 감상(感傷)은 건강에도 좋다는데, 백설의 마력을 빌어 잠시 상념의 세계로 가보자.
오래 전에 보았던 불후의 명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그 끝이 없는 시베리아의 설원(雪原)을 상기해 보는 것은 어떤가. 온통 눈으로 뒤덮인 하얀 지평선과 시꺼먼 연기를 뿜으면서 칙칙 거리며 다가오던 검은 증기기관차의 대비(對比). 그리고 차창에 비치던, 땅과 지붕이 온통 하나의 은백색 선으로 덮여있던 철로변의 집들이 주는 그 불가사의한 정적(靜寂). 그 속에서 선남선녀들이 연출해내는 아름다운 사랑과 시(詩), 그리고 주제음악 ‘Somewhere my love’의 감미로운 선율….
불행하게도 그러한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젊은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정을 쏟았던 여러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첫눈이 오는 거리를 뽀드득거리며 함께 걷던 사람을, 함께 걷던 그 거리가 떠오르면 더욱 좋을 게다.
그래도 떠오르는 영상(映像)이 없다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그 옛날 초등학교 때의 예쁘장하던 짝꿍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거무데데한 2인용 나무책상 중간에다 38선을 그어 놓고, 넘어오는 것은 서로 가지기로 협정(?)을 맺고는 짓궂게 울렸던 그 애의 이름도 생각해 보자.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에서 잠시 하던 일 멈추고 창 너머로 이 눈을 바라보고 있을…. 그리고 아무쪼록 그 가정에도 축복이 이 눈처럼 소복이 쌓이도록 기원해 주자.
지상의 어느 누구도 시간과 싸워 이길 사람은 없다. 어느 누구 사형수 아닌 사람이 있는가. 이 엄숙한 진리 앞에는 선하고 악한 사람,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그리고 지위의 고하나 건강의 여하에 관계없이 그 어떤 사람, 그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새벽의 여명과 함께 찾아온 하얀 눈처럼 백지로 시작한 생의 도화지에다, 우리는 인간들이 부질없이 쌓아올린 물량의 다과(多寡)로 너무 쉽게 우열을 가리고 석차를 매기지는 않는가. 인생의 출발점은 이 눈처럼 백지이고, 인생이란 이 백지 위의 발자국일진대. 이 백지가 다 채워지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렇게 채워진 도화지는 하늘에 제출되어서야 마침내 최종 승부가 가려지는 것이거늘….
아무리 황금만능풍조가 횡행하고 사회 곳곳이 병들어 있다고 해도, 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임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위도 잊은 채 주택가 골목골목에서 뛰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한, 학교 도서관에서 혹은 독서실에서 밤늦도록 책을 읽고 있는 젊은 학생들이 있는 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맡은 바 소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국가 공복과 산업 전사들이 있는 한 결코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다. 팔순의 노옹(老翁)에게도 나름대로 희망이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자, 이제 백설이 준 꿈에서 깨어나자. 괴테의 시구처럼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 ‘사랑’과 ‘꽃’ ‘이슬’과 ‘청춘’이 모두 그러하듯이 백설의 감흥도 결코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냥 감상에 젖어 있을 수는 없다.
백설이 다시 얼음으로 변하여 감상에 취한 우리들의 걸음걸이를 비틀거리게 하기 전에, 우리는 다시 조용히 상념의 날개를 접고 빗자루를 들고 거리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다시 신선하고 여유로운 감흥으로 하얀 눈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주어진 삶에 충실하자. 우리 인간은 오직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만이 아닌,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옳은 삶이 되는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라도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나마 세상의 온갖 허물을 지워주고, 모든 탐욕이 부질없음을 일깨워주곤 하는 눈이야말로 바로 우리들의 스승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