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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에세이 및 콩트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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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굴

 

최용현(수필가)

 

   연전에, 친척집 결혼식에 가려고 아내와 둘이서 승용차로 부산에 갔다. 오랜만에 애들을 떼어놓고 복잡한 서울을 탈출한 해방감에 좀 들떠 있었기도 했거니와, 토요일 이른 오전이라 차들이 별로 없었으므로 경부고속도로를 마음껏 신나게 달렸다. 그때는 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되지 않은 시간이라 1차선으로 계속 달려가다 천안쯤을 지날 무렵, 어떤 고속버스의 바로 뒤를 따르게 되었다.

   앞 시야가 막혀서 답답했다. 추월을 하려고 2차선으로 나왔다. 2차선에는 저만큼 앞에 컨테이너차가 달려가고 있었다. 1차선의 고속버스가 더 빨리 달리고 있었으므로 그 사이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내가 고속버스 옆에 나란히 달릴 때는 앞 컨테이너 차와는 아주 가까워졌다.

   고속버스 앞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 결단을 내려야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끼어 들어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무엇에 씌었는지 그날따라 겁 없이 호기를 부렸다. ‘에라 모르겠다, 들어가 보자.’ 상식적으로는 분명 무리였으나 깜박이 신호를 넣은 다음 컨테이너 차와 고속버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비집고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던 것 같다. 바로 뒤 버스가 아주 가까이 있었으니 절대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과속이어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차가 기우뚱했다. ‘아차, 죽는구나!’ 싶었으나 조상이 보살폈는지 차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일을 까맣게 잊은 채 또 두어 시간쯤 달렸다. 구미IC를 막 지났을 때이다. 앞서가던 차들이 줄줄이 밀려 서 있었다. 앞에서 사고가 났거나 아니면 공사구간이리라.

   차를 세우고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데, 뒤쪽에서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내 차 운전석 옆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담뱃불을 빌리러 오는구나 생각하며 창문을 내렸다.

   “아까 천안에서 고속버스 앞으로 끼어들었죠?”

   잔뜩 화난 얼굴로 따지듯 물었다. 아까 추월할 때의 그 고속버스 운전기사였다. 노기등등한 표정과는 달리 말투는 그렇게 거칠지 않았다.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 듯 했다.

   “그렇게 끼어드는 법이 어딨소?!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시오? 보아하니 아직 젊으신데 오래 살기 싫으시오?”

   죽으려고 환장하지 않았냐는 뜻이리라. 내가 무리하게 끼어들면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단다. 그 이후 줄곧 내 뒤를 따라 온 듯 했다. 내 차가 눈에 잘 띄는 빨간색이라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할 말이 없었다. 명백히 내가 잘못한 일이고, 이 고속도로를 매일 누비고 다녔을 프로 운전기사에게 걸렸으니 귀싸대기를 맞아도 어쩔 수 없는 터였다. 그런데 몇 마디 훈계만 듣고 끝났으니, 이 얼마나 운수대통 했는가.

   잔뜩 벼르고 왔다가 내 험상궂은 인상을 보고 기가 죽은 것 같았다. 험악한(?) 인상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상상해 보라. 이 얼굴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으니 굳이 험악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상대를 위압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죽으려고 작정한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무모한 짓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해 진다.

   ‘남자의 얼굴은 이력서, 여자의 얼굴은 청구서라는 말이 있다. 이력서라는 말은 살아온 과정이 얼굴에 나타난다는 의미로서, ‘사십을 넘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다. 청구서라는 말은 설마 화대(花代)를 얘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여자의 얼굴은 값으로 환산,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미색에 차이가 난다는 의미일 게다.

   고운 얼굴이나 추한 얼굴이나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면 마찬가지건만 두개골을 감싸는 그 피부 한 꺼풀의 차이는 참으로 지대하다. 여자의 경우엔 가히 일생을 좌우한다 할 만하고 남자의 경우도 결코 적은 비중이 아니다.

   사람의 얼굴은 부모에게서 피동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런데도 자기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니 그럴듯한 용모를 타고 나지 못한 사람은 아무래도 억울한 노릇이다. 얼굴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필자의 경우, 소도둑(?) 같은 얼굴 때문에 이익과 불이익이 교차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다. 한 번 갔던 곳에 다시 갔을 때 그곳 사람이 금방 나를 알아본다는 점, 간혹 운전을 하다 시비가 붙었을 때 앞에서처럼 상대를 위압 할 수 있다는 점 등은 이익을 보는 경우이다.

   그러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학생시절엔 여학생 사귀기가 무지무지하게 힘들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검문에 걸리기가 일쑤였다. 시외버스를 타거나 차를 몰고 검문소 옆을 지날 때면 다른 사람은 그냥 통과하는데 나는 매번 주민등록증을 보여줘야만 했다.

   한번은 학술대회 준비 때문에 아침 비행기로 통영에 갔다가 저녁에 일행 두 사람과 함께 사천공항에서 다시 귀경 비행기를 타려고 했을 때, 함께 갔던 일행 두 사람은 그냥 놔두고 유독 나만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게 아닌가. 기가 막혀서.

   그러나 근사한 용모를 타고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기죽을 건 없으리라. 마음속에 선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선한 얼굴이 되고 음흉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음흉한 얼굴이 된다고 한다. 그런 것 같다. 같은 어머니 얼굴이라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을 때는 자애로운 엄마의 얼굴이 되지만, 내가 투자한 회사의 증권시황을 보고 있을 때는 탐욕스런 얼굴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의 얼굴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변모하는 것이리라. 바탕이야 변하지 않겠지만. 일제강점기 때 활약했던 소설가 이기영(李箕永)의 작품 얼굴의 한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을까 한다.

   “사람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또 자기 자신의 얼굴이라는 그놈마저도 영 밤낮 같지가 않다. 어떤 때는 제법 미남이고, 어떤 때에는 무척 고상한 것 같아 저 자신도 반할 정도인데 어떤 때에는 심술과 욕심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 쥐어박고 싶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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