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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영화에세이

by 월산처사, 따오기 2018. 12. 2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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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최용현(수필가)

 

   아버지가 월북하는 바람에 사회에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깡패처럼 살아가던 인찬(설경구 )은 살인미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선고를 받아 수감된다. 어느 날 그 앞에 군복을 입은 한 장교가 나타나 나라를 위해서 칼을 잡을 수 있겠느냐?’고 제안하는데.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부둣가, 그곳에서 만난 상필(정재영 ) 31명이 함께 배를 탄다. 실미도에 도착한 이들 앞에, 북한에 스무 번이나 침투한 적이 있는 교육대장 최 준위(안성기 )가 나타나 평양에 침투하여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라고 일갈한다. 이들은 바로 악명 높은 조 중사(허준호 )의 통솔아래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된다.

   1968121,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려고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했던 북한 124군부대의 김신조를 비롯한 31명의 무장공비에 놀란 중앙정보부는 바로 특수부대를 창설한다. 19684월에 만들어졌다고 ‘684부대로 불리던 이 실미도북파특수부대는 의외로 공군 소속이었다.

   대부분 중범죄자 혹은 조직폭력배들로 구성된 이들은 임무를 완수하면 남은 형()의 취소는 물론 모든 전과기록을 말소하고 돈도 받기로 하는 등 정부로부터 새 삶을 보장 받는다. 이들은 말투에서부터 군가와 제식(制式) 동작 등 모든 군사훈련을 인민군 식으로 받는다. 이들 뒤에는 항상 실탄을 장전한 기간병들이 따라다닌다.

   이들은 구타와 기합, 발뒤꿈치로 날아드는 실탄 세례를 견디면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지옥훈련을 통해 3개월 만에 살인병기가 된다. 침투 중에 체포되면 자살해야 한다. 체포 시에 대비하여 벌겋게 달궈진 인두로 맨살을 지지는 끔찍한 고문훈련도 받는다. 처음에는 북한 124군부대처럼 31명으로 구성됐으나 훈련 중 사고로 7명이 사망하고 24명이 살아남는다.

   출범한지 4개월, 드디어 출동명령이 떨어진다. 이들은 3개의 보트에 나누어 타고 세찬 폭우를 뚫고 바닷길로 평양을 향해 출발한다. 그러나 갑자기 작전이 취소되는 바람에 이들은 다시 돌아오고 만다. 이후 출정할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새 3년이 흐른다.

   남북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고 국정지표가 평화통일로 바뀌면서 중앙정보부장이 교체되자, 구시대의 유물인 이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이들은 이미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라서 없애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일주일 안에 정리(?)하지 못하면 기간병을 포함하여 실미도의 전 부대원들을 사살한단다.

   고뇌하던 교육대장은 인찬을 불러 주전자에 물을 떠오라고 시킨다. 그리고 조 중사와 박 중사에게 이들을 모두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얘기한다. 인찬이 듣도록 배려한 것이다. 반발하는 조 중사를 육지로 출장 보내고, 내일 아침 기상과 동시에 박 중사의 책임 하에 기간병들이 이들을 신속히 처리하기로 방침을 세운다. 이들은 인찬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

   1971823일 새벽, 이들은 한발 먼저 기상하여 탄약고를 탈취, 기간병들에게 선제공격을 한다. 인찬과 맞닥뜨린 교육대장은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쏜다. 10여 분만에 박 중사를 포함한 기간병들을 모두 사살한 24명의 대원들은 배를 타고 인천 해안에 상륙한다. 이들은 곧바로 시내버스를 탈취하여 경인가도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이때 버스 안 라디오에서 뉴스 속보가 나온다.

   “인천 남구 독배부리 해안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20여명이 경인가도 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중화기로 무장한 공비들은 무고한 시민들을 해칠 가능성이 있으니.”

   이들은 자신들을 무장공비라고 지칭하는데 분개하며 검문소에서 저지하는 경찰관을 사살하고 계속 전진한다. 그러나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군경합동 진압군과 교전하던 대원들은 그날 오후 225분쯤 인질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후, 피 묻은 손으로 버스 창가에 자신들의 이름을 써놓고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한다.

   이 실미도 난동사건이 발생한지 3일 만에 당시 정래혁 국방장관과 김두만 공군참모총장이 옷을 벗는다. 살아남은 4명의 실미도 대원들은 7개월 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 사건은 잊힌 듯 했으나 국민의 정부 이후 군 특수임무와 관련된 첩보부대의 존재와 인권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실화를 영화화했기 때문일까? 강우석 감독이 만든 실미도2003년 개봉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우리나라 최초로 관객 천만 명을 돌파했다. 실미도 대원 31명은 설경구, 정재영, 강신일, 임원희, 강성진, 엄태웅 등 몇몇 배우들을 빼놓고는 대부분 오디션에 응시한 5천여 명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실제로 북에 침투시켜도 능히 임무를 완수할 정도로 빡센(?) 훈련을 받았다.

   크레인 2대와 발전기 등 촬영 장비를 실미도 산꼭대기로 옮길 때는 치누크 헬기의 도움을 받았다. 실미도 훈련장 외에도 거금을 들여 부산에 법정(法廷) 세트를, 전북 부안에 대방동 가도(街道) 세트를 지었다. 수중침투 장면은 지중해의 시칠리아 아래에 있는 섬 몰타에서, 겨울훈련 장면은 뉴질랜드에서 찍었다. 또 버스 질주장면과 달리는 버스 내부 상황을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 스피드’(1994)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특수버스 2대를 제작했다.

   버스에 인질로 잡혀 있던 민간인들은 이들은 분명히 청와대로 간다고 말했고, 인질인 우리들을 보호하려고 했으며, 버스 밖에 있는 진압군들이 먼저 총을 쐈다.’고 입을 모아 증언했다. 비교가 되지 않는가? 버스 안에 민간인 인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에 총을 쏜 진압군들, 반면에 인질들을 버스 밖으로 내보내고 자폭한 실미도 대원들.

   이들 대원들이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서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쳤더라면 아마 몇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함께 버스를 타고 청와대로 향했을까?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진실들,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들은 모두 이 세상에 없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막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조국의 부름에 목숨을 걸고 응답한 실미도의 기간병들과, 분단조국이 내몰았던 사지의 땅에서 자기자리를 찾기 위해 울부짖으며 죽어간 서른 한 명의 실미도 대원들의 영혼 앞에 이 영화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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